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있다. 유럽의 복지제도를 논의할 때 쓰는 말인데 한마디로 평생 따라다닌다는 의미다. 그런데 복지는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고 치고 우리를 정말 평생 따라다니는 국가제도가 있다면 아마도 '세금'일 것이다.

 

고대 로마가 사람들의 오줌에 세금을 매겨 재정을 튼튼하게 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조차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라고 대답하며 냈던 세금의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 내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세금은 우리가 원시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이상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세금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디에 세금이 매겨지는 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때때로 국가권력은 특정부분에 세금을 매기거나 매기지 않음으로서 관련 분야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나 기업에 국가가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잘해봐라!' 라는 뜻이다. 반대로 갑자기 어떤 곳에 집중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뜻은 '너 뭔가 잘못했어!' 라는 의미다.


뉴스에 갑자기 세금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넷과 통신을 논하는 회의에서 어쩌면 인터넷에 세금을 매기는 문제를 논의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출처)


다음달 3일부터 14일까지 두바이에서 ITU가 주최하는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가 열린다. 1988년 이후 처음이다. 이 회의에서는 현재의 ‘국제전기통신규칙(ITRs: 한글/영문)’을 개정하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논의는 ‘비공개’다. 이번 회의에서는 ITU에 명문화된 인터넷 규제 권한을 새롭게 부여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주요 의제는 국제 전화요금 정산체계, 네트워크 및 정보보호, 인터넷 트래픽 관리 등이다. 현행 국제전기통신규칙은 1988년 제정됐다. 유선전화가 통신의 거의 전부였던 시절에 만들어진 셈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변화된 통신환경에 맞춰 규칙을 개정하자는 게 이번 WCIT의 취지다. 

 


의제로 제기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구체적 우려도 나온다. 캐나다 칼리톤대학교의 드와인 윈섹 교수는 “몇몇 나라들은 인터넷 트래픽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나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을 비롯한 국가에서처럼 각국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제하는 ‘국내용 인터넷(웹3.0)’을 만드는데 (세금으로 거둔 돈을) 쓰자는 것”이라며 “망중립성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라고 우려했다. 

 

구글도 글로벌 캠페인 페이지를 개설하고, 전 세계 네티즌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구글은 “몇몇 정부들은 12월에 열릴 비공개 회의를 인터넷에 대한 검열과 규제 확대를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한다”며 “인터넷을 자유롭고 열린 곳으로 유지하기 위한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WCIT에 참석할 예정이다. 


종종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은 '자유' 나 '해방'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기존의 낡은 기술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던 각국의 법이 미처 신기술을 통제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틈사이에서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그것이 기술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만일 인터넷이 처음부터 국가 사이에 완벽한 통제가 이뤄지고 제도적으로 규제되는 가운데 운영되었다면 어떨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자유로운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각국이 인터넷을 보다 자유롭게 놓아둘 것을 유도하는 편이다. 



인터넷 상거래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말자는 제안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컴퓨터 관련 핵심칩 등에는 국가간 관세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에는 어떤 세금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라도 있다. 누군가는 자스민 혁명은 인터넷과 SNS가 이룬 새로운 혁명이라며 칭송하지만, 어떤 정부는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한다.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없었기에 국가체제가 무너진 위협적인 사례로 보는 것이다.


어째서 인터넷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가?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정말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현대의 어떤 국가도 드러내놓고 인터넷을 물리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이미 인터넷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누군가 국가로부터 인터넷을 차단당했다면 정치적 탄압과 동일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그런 상황은 왜 만들어졌을까?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인터넷을 자유롭게 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터넷은 정치적 자유를 넘어 경제적 자유로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 비싼 국제전화를 대체하는 인터넷 전화와 무료통화 기술이 보급되고 있다. 각국의 이동통신사들은 망중립성을 놓고 소비자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개발된 새로운 기술이 낡은 기업의 수익모델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각국 정부의 법률적 통제를 넘고 있는 인터넷 기술까지 겹친다. 그러자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인터넷에 과세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을 억제하고 자의로 통제할 권력을 국가가 가지겠다는 의미이다. 이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인터넷에 세금을 매기게 된다면 누가 이익을 보게 될까를 생각해보자. 단순한 인터넷 이용자가 이익을 볼까? 아니다. 특정 항목에 마음대로 세율을 정하고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정부, 특정한 통신망과 트래픽을 차단하고 그 사이에서 기술발전을 조절할 수 있는 기업이 이익을 본다. 전부 힘있는 자들이다.


세금이 매겨지는 인터넷은 더이상 자유도 해방도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유선전화에 대고 더이상 어떤 새로운 기술과 혁신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인터넷도 그런 곳이 될 것이다. 이런 점을 각국 정부가 알고 있을까? 그들은 그저 통제가 쉬워지고 세금수입이 올라간다는 점만 생각할 것이다. 어째서 인터넷에 세금을 매겨야 할까? 그것은 누군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