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작게나마 주식투자를 해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주식투자 프로그램 조작하는 법도 잘 몰라서 실수로 원하지 않는 시점에서 팬택 주식을 사버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해서는 이익평균선이니 차트보는 법까지 익혀갔다.



이 주식투자 시스템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상식이라고 하는 주가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익평균선에 따라 기업 주가의 전체 상승세와 하강세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양봉과 음봉을 비롯한 주가의 출렁임을 통해 예측하는 분석이 많다. 본래 주가란 기업 자체의 가치와 이익전망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데 너무도 많은 요소가 개입하다보니 사람들은 그런 진실된 요소보다는 통계적 수치를 더 믿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존재한다. 그런 통계수치에 따라 예상되는 전망조차 투자자들이 알고 있다보니 전망과 결과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올라야 할 때 확 내리고, 내려야 할 때 오르는 기현상이 오는 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즉 사람들이 누구나 예상하는 전망은 그대로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가 장치집약적 산업이라고 말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은 어떨까? 삼성과 엘지등 한국업체가 선두에 선  이 분야는 이전에 선두였던 일본 업체와 뒤늦게 시작해서 무섭게 따라오던 대만 업체 가 벌이는 삼파전의 양상이었다. 



이 분야는 치킨게임이라고 하는 격심한 가격경쟁 지표에 따라 움직인다. 3년 정도 엄청난 호황이 와서 높은 가격에 승자가 된 기업들이 엄청난 이익을 차지한다. 그러면 그 이익을 노리고 뛰어든 후발업체가 공격적인 투자를 해서 생산량을 늘린다. 하지만 곧 불황이 3년 정도 와서 후발업체를 포함한 모두를 덮친다. 가격은 낮아지고 적자가 누적되는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대부분 사업을 접거나 축소한다. 그러면 다시 호황이 3년 동안 시작된다. 


한동안 극심한 치킨게임을 벌였던 디스플레이 시장의 윤곽이 정해졌다. 승자는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다. 경쟁자 일본과 대만은 업계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출처)



2년 이상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전세계 디스플레이업계가 지난 3분기를 기점으로 한국과 비한국계 디스플레이업체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3분기 전세계 주요 디스플레이업체 가운데 흑자를 낸 기업은 한국의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뿐이었다. 일본과 타이완에 포진한 유수의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 가운데 한국기업을 제외하고 흑자를 낸 글로벌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 1일 샤프를 마지막으로 국내외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3분기 실적이 모두 발표된 가운데 한국 업체들의 '나홀로' 선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분기 LG디스플레이가 8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양사가 모두 흑자 시대에 접어들었고 매출 신장도 눈에 띈다.


이 같은 한국 디스플레이의 독주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양사 모두 고부가가치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수익성 강화를 시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세계 디스플레이 1,2위를 다투는 선발기업의 기술력, 애플이란 우량  수요처 확보(LG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최대 공급자인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수요처 확보(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이 같은 적자기조는 지난 2년 간 이어졌다. 이를 먼저 반전시킨 것은 삼성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분기 업계 최초로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3분기 연속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분기에는 1조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3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 문턱을 다시 넘어섰다.


한국 업체들은 위기 상황을 맞아 수익성이 낮은 패널 제품군을 과감히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면서 수익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TV, 모니터, 노트북, 모바일 등 전 제품군에 걸쳐 차별화 제품 비중이 확대됐고 적극적인 수익성 위주의 생산라인 운영도 영향을 미쳤다.


사실과 분석이 잘 어우러진 이 기사 원문은 상당히 읽을 가치가 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전부 읽어보길 바란다. 그래도 굳이 요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극심한 침체기에 한국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자국 제품에 공급해서 안정된 수요를 확보했다. 그렇지 못한 일본과 대만은 엄청난 적자를 보고 사업철수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승자가 된 한국 디스플레이, 남은 과제는?


그렇다면 이렇게 이겼으니 이제 끝일까? 한국 업체는 남은 기간의 호황을 준비하며 느긋하게 앉아있으면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앞에서 말한 주식투자에서 지표와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디스플레이 등의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산업이 3년 불황에 3년 호황이 온다는 상식 정도는 누구든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해당 국가의 투자를 끌어내든, 국가를 초월해서 기업간 합작을 하든 3년 불황 후에도 투자를 하며 뛰어든다. 그러니 예상되던 호황기가 오지 않거나 이익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문제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디스플레이 기술이 안정된 가운데 소비자가 확고하게 차별성을 느끼고 비싼 값을 감수할 만큼의 기술격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CCFL 백라이트 방식에서 LED방식으로 전환하긴 했어도 별로 큰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또한 TN과 IPS, VA 방식 사이의 기술격차도 별로 크지 않다. 한마디로 특정 방식을 기술이 없어서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의미다.



반대의 경우로 현재 미국의 인텔과 AMD만이 뛰고 있는 X86 CPU시장을 들 수 있다. 이 시장 역시 많은 이익이 보장되는 곳이다. 그러나 고도의 설계기술과 코드에 대한 특허권, 미세공정 기술이 전부 있어야만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오랜 시간을 쌓아온 신뢰까지 겹쳐 일본이나 한국이 이 시장에는 아예 뛰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지배자인 인텔은 안정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에게 남은 과제는 바로 이러한 기술적 방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많은 돈과 약간의 기술만 첨가하면 언제든 다시 판돈을 들고 참가할 수 있는 도박판 같은 업계구조를 근본부터 재편성해야 한다. 



삼성이 독점하다시피하는 AMOLED시장이 비슷한 예가 될 수 있다. 아예 시장에서 경쟁하려는 상대가 없으면 유리하다. 여기에 인텔 칩처럼 대치할 수 있는 비슷한 성능의 다른 제품조차 거의 없다면 완벽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발전이 나와서 한국이 튼튼한 승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