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원시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분업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이 품위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의식주를 조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통과 통신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문화생활도 즐겨야 하고 오락거리도 있어야 한다. 분업화는 이런 과정을 각각의 직업을 통해 역할로 나누고 그 대가로 서로 돈을 지불함으로 이루어진다.


아, 서두가 너무 딱딱했나? 보통 서두는 재미있게 시작하고 싶지만 오늘 다뤄야 할 주제가 좀 심각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가 있다. 이젠 전부 유출되어 버려 전세계인의 공공재산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에 이어서 대한민국 휴대전화 가입자의 위치정보가 마구 유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처)
 
국내 1·2위 이동통신업체 SK텔레콤(대표 하성민)과 KT(대표 이석채) 양사는 개인정보 관리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린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협력업체에서 한 것이라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8일 SK텔레콤과 KT 가입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인적사항을 조회할 수 있는 불법 프로그램을 개발한 SK텔레콤·KT 협력업체 직원 서모씨(36) 등 5명과 정보를 조회한 심부름센터 관계자 7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모씨 등은 업무용으로 이동통신사 가입자의 인적사항과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후 이를 악용해 인증절차 없이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불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경찰조사결과 서씨 등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여 동안 조회된 휴대전화 가입자들의 인적사항과 위치정보는 약 19만8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는 경찰에서 범행사실을 통보하기 전까지 정보가 유출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이를 알게 된 후에도 사과보다는 면피용 해명에 급급했다. 사과 역시 한 마디도 없었다.

송모씨(22)는"내 위치정보가 유출된 것도 모자라 거래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며 "이동통신사가 자신들의 과실을 협력업체로 책임을 돌리면 면피가 되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운영위원 김재철 변호사는 ""가입자들은 SK텔레콤과 KT를 신뢰해서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협력사를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하더라도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SK텔레콤과 KT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가입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유관기관이) 이동통신사 개인정보 관리 시스템에 대한 정밀진단과 감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고도의 정보화와 더불어 편리한 서비스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마트폰의 위치정보를 이용한 서비스이다. 그런데 이 서비스는 편리함도 주지만 위험성도 준다. 개개인의 위치정보가 보다 자세하고 빠르게 확보되기에 사생활 침해를 비롯해서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 또한 마케팅에 결정적인 정보이기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정보를 이동통신사에 제공하고 서비스를 받는 건 단순히 서비스의 혜택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크고 조직적인 회사인 이동통신사가 그만큼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시스템을 갖추고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그걸 신뢰해서다. 생각해보자. 어제 막 생긴 자본금 백만원 정도의 영세통신사가 있어서 소비자에게 '우릴 믿고 위치정보를 넘기세요.' 라고 말하면 과연 몇 명이나 그걸 허락할 것인가?


얼마전 KT와 삼성 사이에 스마트티비를 놓고 망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때 통신사인 KT의 논리는 삼성이 개발한 스마트티비의 앱이 과도하게 트래픽을 유발하고도 그에 따른 망관리 책임과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과다 트래픽으로 인한 인터넷망 마비인 '블랙아웃'이란 단어까지 거론했다. 뒤집어보면 KT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항상 망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마트폰 위치정보, 누가 보호해야 할까?

그 논리를 여기에 대입해보자. 소비자는 이동통신사인 SKT와 KT의 망관리와 보안능력을 믿고는 비싼 휴대폰 요금을 내고 있다. 통화 한 통 안해도 부과되는 기본료에 아마도 그런 비용이 전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뉴스같이 허술하게 개인의 위치정보를 관리해서 유출시킨다면 대체 이런 비싼 요금은 왜 받는 것인가? 그냥 이동통신사는 그저 통화만 되게 해주면 역할이 끝난 것일까?


위의 뉴스에서 이동통신사는 말한다. 협력사가 한 것이라서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이다. 정말로 한숨이 나오는 소리다. 그렇다면 대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멍청하게 이동통신사의 약속을 믿고 위치정보를 제공한 이용자 책임인가? SKT와 KT는 지금 소비자에게 '우리를 믿지 마세요!' 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가?

서두에서 나는 현대사회의 분업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렇다. 현대 한국의 소비자인 우리는 각기 생업에 바쁘다. 그러기에 이동통신사가 보안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를 책임져 줄 것이란 점을 믿고 서비스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뉴스에 나온 답변에 의하면 이동통신사는 우리의 소중한 위치정보에 대한 보안을 책임지지 못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각자 퇴근후에 몽둥이를 들고 우리 위치정보를 위협하는 무리들을 때려잡아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무슨 미국만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인가? 대체 이동통신사가 보호하지 못하는 스마트폰 위치정보는 누가 보호해야 한단 말인가?

부디 이동통신사의 저 대답이 한국을 분업화조차 안된 원시사회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길 바란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복면을 쓰고 타이즈를 입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뛰어다닐 여유가 없다. 우리는 이통사에 매달 지불할 비싼 월 정액이용료를 벌기에도 이미 지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