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내키지 않는데도 희극을 연출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반드시 자기 의지가 아니어도 말이다. 실제로는 비극에 가깝지만 하하 웃으면서 얼버무려야 하는 건 비단 개그 프로그램 속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닌 것이다.

최근 제품에서든 법정에서든 매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애플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 애플은 거의 모든 일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굳이 애플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일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래저래 인기인(?)은 피곤한 법이다.



요새 애플과 전세계 법정에서 특허권을 다투며 판매금지소송을 하고 있는 삼성의 경우에는 어떨까? 최근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뉴스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출처)

애플과 전방위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특허권을 공유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른바 '반(反) 애플'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8일 크로스-라이센스, 즉 각자가 보유한 특허를 서로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앞으로 개발되는 제품들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특허침해에 대한 부담없이 안드로이드폰과 윈도폰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크로스-라이센스 합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문제가 됐던 특허는 안드로이드에 사용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메일 전송 관련 통신기술이다. 합의 내용의 핵심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삼성전자로부터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해 로열티를 받기로 한 것이다.

로열티는 스마트폰 1대를 판매할 때마다 4~5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삼성전자가 올해 6천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할 예정이어서 연간 2억4천만~3억달러의 특허료를 MS에 지불할 것으로 보인다.


거창하게 타이틀은 삼성과 MS의 반애플 연합전선이라고 표시했지만 막상 내용을 들어가보면 의아하다.
정말로 연합전선을 형성했다는 정도로 임팩트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있는 건 그저 삼성이 MS의 안드로이드폰 로열티 요구를 수락해서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는 것 뿐이다. 한쪽이 그저 일방적으로 돈을 내기로 한 합의가 무슨 연합이고 반애플 전선인가?  실상 이 뉴스가 바로 우리 인생이 보여주는 웃기는 희극이다. 좀 차근차근 분석해보자.

1 . 마이크로소프트는 안드로이드 진영을 견제하고 자사의 윈도폰 보급을 위해 특허권을 무기로 위협하고 있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독점하면서 만들어온 그 특허는 상당해서 가볍게 무시하기는 힘들다.

2 . 본래 MS는 구글을 직접 고소해야하지만 구글은 무료에다가 오픈소스로 배포할 뿐이라 손해산정 등이 애매하다. 따라서 비교적 만만하고 쉬운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구글은 이들을 법적으로 지켜주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 따라서 업체는 각자 스스로를 지켜야 할 상황이다.



3 . 특허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특허를 침범했느냐보다, 상대는 그럼 얼마나 내 특허를 쓰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서로가 특허를 비교적 비슷하게 침범하고 있다면 결과는 거의 예외없이 크로스라이센스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본래 삼성과 엘지는 든든하다. 통신관련해서 핵심특허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삼성과 엘지의 특허를 피해나가기 어렵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MS는 운영체제 전문회사고 윈도폰을 비롯한 휴대폰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MS가 삼성에 산정할 피해액은 많지만, 삼성이 MS에 요구할 피해액은 거의 없다. 크로스라이센스가 가능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삼성이 운영체제쪽에서 기술력이 있어 MS를 압박할 능력은 없다. 그러다보니 일방적으로 삼성이 돈을 주는 형식으로 합의가 되어 버렸다.

4 . 물론 MS도 약간 아쉬운 건 있다. 바로 단말기다. 노키아 외에 자사의 윈도폰이나 태블릿을 고품질로 만들어 유통시켜줄 하드웨어 회사가 필요하다. 삼성의 능력이 아쉽긴 한 것이다. 결국 MS는 삼성에 대해 안드로이드폰에서 다소 낮은 로열티만 받는 대신 자사 하드웨어 제작을 요구했고 그걸 삼성이 받아들인 것이 바로 이번의 합의다. 그걸 가지고 지금 언론에서는 ‘반애플 전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삼성과 MS, 과연 반애플 연합전선일까?

이건 전혀 반애플 전선이 아니다. 애플과 법정다툼을 벌이는 삼성의 뒤쪽에서 돈을 노리고 MS가 치고 들어왔다. 지금 이 시기에 동시에 싸우고 싶지 않은 삼성이 조기합의했을 뿐이다. 삼성 입장에서 보면 운영체제쪽에 가진 무기가 하나도 없어 손을 들어버린 굴욕일 뿐이다. 

어쨌든 기업입장에서 아무리 현실이 그렇더라도 발표는 악수하며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다고 자평해야 한다. MS입장에서도 돈을 받고 하드웨어 제조도 약속받은 마당에 상대 기업에게 굴욕까지 줄 필요는 없으니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 라고 하는 것이다. 삼성에서 보자면 뒤에서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앞에서는 ‘그래요. 우리는 반애플 전선을 결성한 겁니다. 절대로 내가 일방적으로 굴복한 게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굳이 삼성을 놀리거나 비난할 건 없다. 사실 경우만 다를 뿐 우리 개인도 각자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나가지 않는가? 상사에게 사직을 강하게 권유받아 사표를 내고서도 ‘제가 그냥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겁니다.’ 라고 말하거나 애인에게 차이고도 ‘사실 이전부터 별로 맘에 안들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누가 가혹하게 비난할 수 있을까? 그게 모두 인생이 만드는 희극 아닌 희극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