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공통점이 있다. 정책이 잘못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걸 막아낸 것은 혜택받던 상류층이 아니란 점이다. 피와 땀을 흘리며 싸운 것은 국가에서 잘해주지 않은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언제나 탄압받았을 뿐, 한번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권력의 편에서 아첨하던 사람들이 끝내 잘먹고 살았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국가를 위해 장렬히 희생하는 우국지사가 되기 싫다. 한순간이라도 한국에서 내가 너무 잘먹고 살았다면 모를까,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한 상류층은 되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요즘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 이득도 인기도 얻지 못할 이슈를 목놓아 외쳐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설마 IT평론가로 와서 이런 애국자가 되어야할 지 몰랐다. ‘독립운동 하면 삼대가 망한다.’라고 부르짖던 어느 국가유공자 자손의 이야기가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한동안 잊혀졌던 인터넷종량제가 다시 논의될 모양이다. 여기서 인터넷종량제란 스마트폰용 무선인터넷망이 아닌, 우리가 지금 쓰는 유선인터넷망을 포함한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서 정액제를 없내고 쓴 만큼 요금을 내는 종량제로 바꾸자는 말이다. 온라인게임을 하든, IPTV를 보든 유튜브 동영상을 보든 상관없이 말이다.


원래 이 인터넷 종량제는 예전에 한번 주장되었다가 네티즌의 격렬한 반대속에 조용히 사라졌다. 그래서 완전히 폐기된 줄 알았지만 어느새 LTE 서비스를 만들고 휴대폰 무제한 요금제 폐지를 논의하면서 다시 전면적으로 수면위에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며칠전 이 문제에 대해 한겨레신문의 컬럼기고 요청을 받았다. 내 의견은 당연히 종량제 반대였고 보낸 칼럼은 찬반 양론에서 반대측 주장으로 실렸다. (출처)



최근 에스케이(SK)텔레콤이 차세대 이동통신서비스(LTE)를 사용한 스마트폰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터넷 사용 요금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통신업자들은 지금과 같이 데이터 사용량이 반영되지 않는 정액제에서는 전체적인 망 증설 비용을 데이터 사용량이 적은 사용자들이 떠안는 만큼, 사용한 만큼 비용을 내는 종량제 도입을 늦출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통신비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정액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두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본다.

인터넷 종량제는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요금 부담이 새로운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보급과 확산을 억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있다가도, 인터넷을 통한 고급 교육 서비스를 받다가도, 첨단 원격의료 시스템을 이용하다가도 요금을 의식하게 되면 이용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격차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 
- 안병도 정보기술(IT) 평론가



물론 자유로운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창의성 발현의 토대가 자원 이용의 자유로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낸다는 공식엔 그래서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고민할 때, 경제적이며 창의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문제는 사회적 생산성과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정제된 이용환경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있진 않을까.
-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현행 인터넷 종량제에서 힘있는 주류층은 종량제를 지지하고 있다. 이통사와 인터넷사업자 들이 대표적이다. 이에비해 반대쪽에 선 사람은 그저 일반 네티즌 일부와 온라인게임 회사, 온라인에 기반을 둔 중소벤처기업 정도다. 어느 쪽에 서야만 보다 이익인지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침묵하거나 반대로 말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위에서 종량제 찬성을 말한 교수는 순전히 학술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보였을 것이다. 그분을 몰아붙이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논의를 뒤에서 계속 부채질하며 부활시키려는 세력의 힘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또다시 인터넷 종량제, 끝내 실시하려는가?

우국지사는 아니지만 나는 불이익을 각오하고 외치고자 한다. 또다시 인터넷종량제 논의를 재개하려는 쪽에서 경고하고자 한다. 내가 IT평론가로서 조금의 힘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그 힘에 상당하는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1. 한국에는 리니지와 아이온으로 유명한 온라인 게임업체 NC와 카트라이더로 유명한 넥슨이 있다. 각종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쓰며 IP티비와 각종 인터넷 콘솔 게임기 보급도 잘 되어 있다. 만일 캐나다의 어떤 가구처럼 갑자기 15만원이 넘게 나온 인터넷 요금에 놀란 사람들이 인터넷 데이터 소비를 줄이게 되었을 때, IT산업 전체가 발전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인터넷종량제는 결국 통신망 사업자만 좋을 뿐 다른 IT업계 모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흥하고 있는 산업을 죽이기는 쉽지만 다시 살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자꾸만 인터넷 종량제를 끌고 나오는 것이 끝내 강행하겠다는 뜻 같아서 불안하다.


2. 인터넷망과 관련된 신기술이 자꾸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지금보다 열배, 혹은 백배 빠른 새로운 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이 자꾸 생기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만큼 인터넷을 써주기 때문이다. 종량제 때문에 있는 망도 트래픽 여유가 남아도는 상황이라면 더 빠르고 쾌적한 장비가 나올 필요도 없고 그걸 돈들여 채택할 이유도 없다. 반면에 당장은 장비설치비가 힘겹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장비가격도 급속도로 내려간다. 통신업체의 우는 소리에 소비자가 일일이 공감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3. 결국은 소비자가 단결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결국 다수의 백성들이 나라를 지켜낸 역사가 대부분이다. 힘있는 사람들의 정책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탄압과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뭉쳐서 막아내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저 편안하게 해외업체의 IT동향을 이야기하며 독설을 늘어놓고 싶다. 요즘 스마트폰 앱 검열을 꺼내고 인터넷 종량제를 끌어내는 그들에게 외치고 싶다. 제발 나를 팔자에도 없는 우국지사로 만들지 말아달라. 나는 그저 IT평론가이자 소설가로 살고 싶다.



나는 아직 그저 블로그 하나를 의지해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IT 음유시인에 불과하다. 이 노래를 듣고 동감할지, 무시할 지는 듣는 모두의 자유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이 실시되었을 때 그 피해는 힘없는 소비자가 가장 먼저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