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일을 도와서 잘되게 하는 건 매우 어렵다. 반면에 똑같은 일을 방해하고 규제해서 안되게 만드는 건 너무도 쉽다. 돌을 모아서 탑을 쌓는 건 어렵지만, 그 탑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이폰으로 국내 통신시장이 제대로 활성화되고, 안드로이드폰으로 인해 많은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확산될 때만 해도 우리는 모두 기뻐했다. 소비자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에 열광했고, 이통사는 비싼 스마트폰과 정액제 서비스를 팔 수 있어 좋았다. 기업은 보다 쉽게 정보에 접근하는 수단을 반겼고, 정부는 세금수입이 늘어나기에 같이 기뻐했다. 

모든 이해당사자가 얼싸안고 좋아하면서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과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앱을 개발해서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는 개발자,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본 소비자들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이 서비스는 세상을 한단계 바꿔버렸다. 심지어는 이런 서비스를 통해 결정적인 선거결과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이게 문제였다. 한때 어깨동무하고 기뻐하던 정부가 별안간 떨어져나온 것이다. 쟈스민 혁명으로 대표되듯 이런 서비스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폭발력을 가질 지 실감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강한 영향력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항상 같다.
규제. 그렇다. 어떤 핑계와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행정적으로 규제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스마트기기 애플리케이션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심의를 추진한다. 박만 방통심의위원장이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이 방침과 아울러 10월 말 조직 개편에서 종합편성채널과 함께 앱 심의 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9월 6일 발표한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 한다. KISDI는 앱이 ‘방송’이고 편성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앱 장터가 ‘채널’이고, 개별 앱은 ‘프로그램’, 또 장터 안에서 앱을 배열하는 게 편성 행위라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한달 전에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었다. 그 자리의 주제 역시 SNS였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자리였다. 정부가 앞서서 부작용을 먼저 이야기해보자고 하는 그 목적이 너무도 뻔했다. 규제를 하고 싶으니 누군가 먼저 ‘바람잡이’를 해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참석한 패널 가운데 부정적인 면을 제대로 이야기한 사람은 한두사람에 불과했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패널들은 부정적인 면이 약간 있을 지 몰라도 이건 자정능력에 맡겨야 하며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 날의 토론은 규제란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곧이어 한달 후 이런 뉴스가 나왔다. 이번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란 연구소를 앞세웠다. 민간인의 자율적인 발의를 원했다가 제대로 되지 않자 이번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책연구소를 동원한 것이다. 저기서 쓰인 논리는 차지하고 그 방법 자체가 참으로 한심하다. 실제로 SNS와 앱을 만들고 쓰는 사람을 제쳐두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연구원이 탁상에서 해석만 자의적으로 해서 규제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방통위 심의대상이 되어야 할까?

정히 규제를 하고 싶다면 국회를 거쳐서 관련입법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언론에 대한 자유를 규제하는 절차로서 국무회의를 거치고 발안을 해서 국회에서 다수결로 처리된다면 차라리 해당 국회의원이 책임을 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규제만 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될 것이다. 만일 이 규제가 크게 문제가 되어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치자. 규제 근거를 세운 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기관이 시켜서 그랬으니 아무 책임없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에 따라 해석이 그렇게 나왔으니 했을 뿐이라고 회피할 것이다. 서로가 책임을 미루면서 대신 규제권리는 칼같이 차지할 것이다.

애당초 스마트폰에서 이뤄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로서 프라이버시적인 성격이 강하다. 앱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방송의 틀 안에 넣기에는 스마트폰이란 공간은 티비나 라디오같은 매스미디어가 아니다. 개인이 혼자 쓰는 단말기다. 이런 곳에 규제를 들이댄다는 건 사생활에 대한 침해와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도 될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방송이라 규정하고 쉽게 개입하려는 행동이 참으로 안타깝다.



스마트폰은 적어도 입법 하나 없이 행정해석 하나로 간단히 방통위가 심의할 수 있는 그런 매체가 아니다. SNS와 앱 역시 마찬가지로 개인의 결정권과 언론의 자유가 적용되는 서비스다.

본래 공무원들은 규제를 좋아한다. 그것도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규제를 좋아한다. 그래야 자기들이 누구는 허락하고 누구는 금지하는 가운데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나아가서 무엇이든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통제되지 않는 미디어를 제일 두려워한다. 이 두가지가 맞물린 가운데 이젠 개인의 스마트폰 속 서비스에까지 정부의 권력이 손을 대려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적어도 나는 내 스마트폰에 무엇을 쓰고 쓰지 않을 지에 대해 일일이 정부와 공무원의 눈치를 보는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심각한 문제와 부작용을 일으킬 때, 막상 저 결정을 내린 공무원과 정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을게 뻔하니까 말이다.



정히 규제를 하겠다면 좋다. 정당한 국회절차를 거쳐 책임질 사람을 뽑아놓고 하라. 그래야만 나중에 피해자가 나왔을 때 고소할 상대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우리는 네이트온 사태처럼 2천만명이 넘는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되고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한심한 사태와 비슷한 사태를 또 한번 맞이할 것이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SNS와 앱을 만들고 지원해서 세계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한국 외에 외국회사에는 통하지도 않을 규제부터 하겠다는 방통위가 너무도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