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장 즐겨보던 방송은 지상파가 아니었다. KBS가 한창 사극으로 유혹하고, MBC가 드라마로 인기를 모으고, SBS가 오락프로그램으로 시청율이 좋을 때도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니 바로 나에게는 ‘게임채널’ 이 주 시청채널이었다.

스타크래프트란 전국민 게임의 영향 때문이었다. 스스로 즐기는 것도 재미있지만 고수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는 것도 더욱 재미있는 이 게임은 이후 한국 게임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에는 전국의 게임방마다 작은 이벤트로 상금이 걸린 대회가 생기고, 점차 커다란 행사에서도 생겨났다.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여는 대회말고도 인터넷 사이트나 방송사에서 여는 대회도 있었으며 지역방송인 경인방송에서는 아침에 정기적인 대회를 방송해주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발전해서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임리그, 게임만 24시간 방송하는 케이블방송 인 ‘게임채널’을 가능하게 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을 비롯해 폭풍저그 홍진호, 혁명가 김태용 등등 기라성같은 스타가 나왔을 때이니 당연히 나에겐 지상파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사를 가게 되고 케이블에 대한 관심이 뜸해진 요즘 잠시 잊고 있었던 나에게 매우 안타까운 뉴스가 들려왔다. (출처)



MBC 자회사인 MBC 플러스미디어는 온게임넷과 함께 게임채널의 양대산맥 중에 하나인 MBC게임을 음악채널로 변경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업계와 내부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MBC게임은 이미 정리절차를 밟고 있으며,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방송통신위원회 쪽에 채널변경 승인신청을 낼 것으로 전해졌다.

MBC게임의 폐지 이유는 경기 침체가 게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됐고, 향후 시장 전망도 부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프로게임 리그협찬 급감과 저작권 다툼, 시청률 저하 등의 문제가 단기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데다 올해 말 준지상파 성격의 종합편성채널 4개가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면 광고수익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경영적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반면, 음악채널에 대해서는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등의 성공사례처럼 채널경쟁력이 높고 K팝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높은 부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MBC게임 폐국을 반대하는 게임마니아들의 반대여론이다. MBC 미디어플러스 게시판 등에는 채널폐지를 반대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고, 일부 게임전문 인터넷모임 등에서는 반대운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MBC 미디어플러스 쪽에서 입장표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이유다.

내가 게임을 즐겨 보았을 때 양대 방송사는 온게임넷과 MBC게임채널이었다. 이 두 개 채널에서 하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비롯해 각종 게임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어 한국 프로게임계를 후원해주었다.



외국에서는 항상 이런 한국을 신기하게, 혹은 부럽게 생각했다. 마치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처럼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외국의 프로게이머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외국 방송이 다른 일로 취재를 오다가도 한국의 게임방송을 보면 그걸 반드시 취재하곤 했다. 그들에게는 한국이 미래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침체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 그 가운데 한 축이 없어지는 셈이니 이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다.

한국의 게임채널, 재도약할 방법은 없는가?

어차피 인생의 곡선처럼 모든 일에는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다. 스타크래프트에만 의지에 왔던 체질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의 게임방송이 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 한국게임계에 지대한 영향력과 잠재력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뉴스를 계기로 해서 한국게임이 위축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게임채널에서 방송되는 컨텐츠를 다양화하라. 한국 게임채널의 지나친 스타크래프트 의존은 그간 항상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걸 해결하려고 다른 게임 방송을 했을 때 시청율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 게임방송 = 스타크래프트 방송 으로 이어지는 이것을 탈피해야 한다.

방법은 오히려 간단할 수도 있다. 위에서 성공의 요소로 꼽히는 슈퍼스타K를 보자.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며, 인간미와 뒷 이야기를 최대한 살려낸 연출과 편집으로 성공했다. 앞에서 노래부르는 무대만이 아닌 전체를 이야기거리로 만든 것이다.

게임채널에서 방송되었던 스타 아닌 게임이 실패한 이유는 그저 게임만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게임을 구경하는 재미로만 따지면 어차피 스타크래프트를 능가할 게임을 찾기 어렵다. 당연히 나머지 게임은 안보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시청자들은 스토리에 목마르다. 게이머에게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여해서 방송하는 것이 해답이다. 그것은 리니지나 아이온이든, 카트라이더나 고스톱을 방송하더라도 관계없이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된다. 근래에 인기를 끄는 스마트폰 소셜 게임이라도 해도 적용된다.


게임방송의 성공요소는 ‘게임’보다는 오히려 ‘방송’에 있다. 이 점을 잊지 않고 게임을 좋은 컨텐츠로 포장해서 방송할 수 있다면 한국의 게임채널은 오히려 한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스마트폰 앱 게임리그가 생긴 것은 이런 긍정적 발전이다.

우선 나부터 한동안 잊었던 게임방송을 다시 봐야겠다. 아직도 임요환이 게이머로서 활동하는 것처럼, 나도 다시 옛날의 열혈 시청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한국 게임방송이 발전할 수 있다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