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스스로가 매우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이 뭐라고 하든, 중요한 결정은 확고하게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판단력이란 극히 부정확하고, 그 순간의 상황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설문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라면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만일 라면업체 사람이 마케팅을 위해 조사하려고 한다면 그 조사문항은 '라면은 본래 한끼 식사로 충분하고도 영양많은 음식입니다. 얼큰한 국물맛과 쫄기한 면발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지요. 자, 당신은 라면을 좋아하십니까?' 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미리 충분히 좋은 이미지를 준 다음 묻게 되면 당연히 호감을 가진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만일 같은 조사를 라면과 경쟁관계에 있는 햇반업체 사람이 한다고 치자. 그럼 조사문항은 '근래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고, 칼로리가 너무 높은 음식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특히 인스탄트 음식을 많이 먹으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라면을 좋아하십니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러면 라면을 좋아한다는 응답률이 급속히 떨어진다. 결국 사람의 판단력이란 그렇게까지 확고하지 않기에 심리학 기법을 응용한 광고나, 통계적인 허점을 노린 설문조사가 판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오늘의 주제로 가보자. 요즘 크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업체가 PC방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 업체를 인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처)

대형 게임업체들이 게임 개발사가 아닌 PC방 관리 프로그램업체를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지난해 CJ E & M 게임즈(당시 CJ인터넷)가 업계 1위 미디어웹아이를 사들인 데 이어 이달 13일엔 네오위즈게임즈가 업계 2위인 에이씨티소프트를 품에 안았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 때문이다. 유선 온라인 게임업체의 경우 국내 매출에서 PC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달한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처럼 정액제 서비스를 하면서 고사양 PC를 요구하는 게임들은 이 비율이 훨씬 높다. 업계 관계자는 "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월정액,부분 유료화 등 이용자들의 소비 성향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며 "컴퓨터 시작 화면 등에 게임 광고,게임 아이콘을 탑재할 수 있어 게임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측면이 많다고 한다.

게임업체가 게임이란 물건의 생산자라면 PC방은 소매점이다. 그리고 관리 프로그램은 유통라인이다. 게임업체는 그 유통라인을 자기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사 내용처럼 마케팅때문이다. 아무리 티비나 잡지, 인터넷을 통해 수십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어도 막상 PC방에서 선택되지 못하면 소용없다. 광고의 홍수속에서 금방 잊혀지는 매체 광고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게임을 하러 들어오는 사용자가 필수로 제일 먼저 접하는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무엇일까? 이렇게 되면 더이상 이것은 공정한 광고나 홍보가 아니다. 기사 안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대형 게임사들의 PC방 사업 진출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디어웹아이(50%)와 에이씨티소프트(30%)의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80%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두 업체가 PC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PC방 이용자들을 자사 게임으로만 유인하는 등 독과점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체의 PC방 관리업체 운영, 공정할까?



차라리 충성도가 강한 MMORPG 게임은 영향이 덜하다. 캐쥬얼 게임인 카트라이더, 고스톱 게임 등등은 그날의 선택이 어떻게 갈 지 모른다. 맨 앞에서 내가 말한 대로 서두에 무엇인가 보여주고 말해주면 사용자의 선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A회사가 경쟁사인 B회사의 주력상품인 고스톱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도박에 대한 안좋은 인상을 주는 문구와 영상을 먼저 보여줌으로서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다. 반대로 자사의 주력 게임인 야구에게 대해 긍정적인 영상과 뉴스를 먼저 보여줘서 선택을 이끌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나름 공정성(?)을 지켜야할 PC방 자체가 특정 게임을 선전해주는 치열한 경쟁장소가 되어 버린다. 중립성을 잃어버린 채 관리 프로그램이 유도하는 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최종 소매점이 진열방식을 이용해 특정 상품으로 유도하게 되면 시장질서가 왜곡되어 버린다. 좋은 게임이 세상에 나와 성공해볼 기회를 잃게 된다. 반대로 재미없고 비싼 게임이 퇴출되지 않고 남는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게 되고, 시장 기능이 왜곡된다. 생산자가 유통까지 장악하게 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게임업체가 직접 PC방 관리업체를 운영할 때, 자사 게임과 경쟁 게임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취할 리가 없다. 정히 공정하게 할 의도라면 굳이 관리업체를 인수하지도 않았다. 인수 자체가 이미 경쟁을 처음부터 자기편에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의지다.

그런 면에서 게임업체의 PC방 관리업체 운영은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불공정한 운영은 소비자에게는 위험하다. 만일 자기 회사 게임만을 밀어주면서 타 업체를 배척하는 분위기로 간다면 소비자로서 자주적인 판단을 저해당할 수 있는 매우 큰 손해다. 앞으로 소비자의 지속적인 관찰과 정부의 감시가 필요하다.

P.S :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군요. 모두 우산 잘 챙기시고 비와 바람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