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영화로부터 시작됐다. 뻔한 스토리에 천문학적 제작비라는 헐리우드 영화 한편이었다.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큰소리치며 출발한 '아바타'라는 영화는 그저 한번 흥행하고 끝나지 않았다. 관련된 모든 업계에 충격을 주며 3D 영상이라는 잊혀졌던 과제를 다시 던져주었다.

솔직히 우리 눈의 착각을 이용한 3D 영상이라는 건 그렇게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필통이나 책받침에 붙은 물건은 왼쪽에서 보는 것과 오른쪽에서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영상이 보였다. 기본적인 시차방벽을 이용한 장난감이다. 또한 붉은 색과 파란색 셀로판지를 붙인 종이안경을 통해 보았던 이상한 사진은 확 튀어나와 보였기에 매우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것은 기본적인 편광원리를 이용한 입체영상이다.



엘지전자와 삼성전자가 사활을 걸고 차세대 가전제품의 주도권을 두고 노리는 건 3D TV 시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가 있으며 그것들이 각각 장단점이 뚜렷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전히 우월적인 상황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삼성과 엘지가 서로 해외기관과 전문가를 동원한 기술논쟁을 벌였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설전도 벌인 끝에 고소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보통 두 회사가 이런 격한 대립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볼때 얼마나 첨예한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13일 LG전자에서는 'LG 시네마 3D 모니터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입체영상에 관해서 자사의 기술력과 자사 방식의 우월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3D 영화관 하나를 빌린 이 장소에서는 하나의 콘텐츠를 3D 모니터와 3D영화관이라는 2가지 디스플레이로 동시에 관람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했다. 이같은 방식은 듀얼 사용은 세계 최초로 시도된 방식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컴퓨터용 3D 모니터와 함께, 티비 기능이 내장된 모니터가 발매 예정상품으로 소개되었다. 컴퓨터, 영화관, 티비를 아우르는 세가지 영역을 한꺼번에 묶어서 통합적으로 3D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배치였다. 프리젠테이션에 사용된 소녀시대 뮤직비디오의 자신있는 모습처럼 나름 이 분야에서는 절대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핵심을 말해보자. 과연 이런 LG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삼성과 치열한 기술논쟁을 벌이고 있는 3D TV 방식 경쟁의 핵심이슈를 쉽게 분석해보자.



LG전자, 3D 시장을 노리는 승부수는?

1) 삼성의 방식은 셔터글라스(SG)방식이다. 기계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안경에 내장된 액정을 셔터처럼 이용해서 아주 빠르게 깜빡거리며 한쪽 눈을 가리고 한쪽 눈을 노출시킨다. 한편으로 스크린에서는 그 속도에 맞춰 한쪽 눈에 보여줄 영상을 먼저 보여주고, 다시 다른쪽 눈에 보여줄 영상을 표시한다. 즉 두 영상을 시간차로 끊어서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사실 많은 단점이 있다. 안경에 기계적 장치가 들어가므로 무겁고, 제작비가 많이 든다. 여러 사람이 보게 될 경우 안경값도 부담된다. 깜빡거림이 있으므로 눈이 좀더 쉽게 피곤해지며 좌우의 각도에 따라서는 입체감이 생기지 않거나 아예 화면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휘도의 손실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또한 상쇄시킬 만한 장점도 있으니 바로 높은 해상도다. 기본적으로 한번에 온전한 하나의 영상을 뿌려주므로 선예도가 높고 세밀한 화면을 볼 수 있다.

2) LG의 방식은 편광필터(FPR) 방식이다. 이 방식은 안경 앞에 특정 파장의 빛만 통과시키는 필터를 겹쳐놓는다. 오른쪽과 왼쪽의 필터가 각기 다른 파장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한번에 두 영상을 모두 표시하되, 파장을 다르게 한다. 즉 한 화면의 영상을 안경을 통해 공간적으로 두 개로 나눠서 각기 다른 눈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영화 아바타에서도 쓴 방식으로서 안경이 아주 가볍고 제작비용이 싸다. 화면을 시간으로 끊지 않으므로 깜빡임도 없다. 좌우로 어느정도 각도를 주어도 입체감이 유지된다. 필터를 통하므로 다소 영상이 어둡게 보이긴 하지만 최초부터 밝기를 강하게 쏘아주면 이 결점도 거의 없앨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삼성이 채택한 기계식의 장점인 해상도가 이번엔 엘지가 채택한 필터방식의 단점이 된다. 하나의 영상을 나누는 것이므로 기본적인 해상도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은 유일한 약점이지만 동시에 매우 결정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애당초 셔터 글라스 방식은 어떤 업체도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는 프리젠테이션 화면부터 3D로 제작해서 발표하는 등 엘지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사실 정말로 미래에 승리할 기술은 무안경 방식이겠지만 아직은 그 중간 단계로서 두 방식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엘지가 던지는 승부수는 바로 대중화를 먼저 시킨다는 것이다.

삼성 방식은 얼마든지 돈을 낼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다른 약점을 다 감수하고라도 최고화질의 입체 영상을 보고 싶다면 단기적으로는 최고의 방식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해외 영상전문가인 조케인이 말했을 정도라면 확실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앞선다고 반드시 그것이 시장에서도 이기는 건 아니다. 소니가 비디오표준 전쟁에서 베타 방식으로 가지고도 VHS의 빠른 보급에 패했던 역사가 있다. 엘지 방식의 장점은 가격을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안경은 본래 편광필터 하나뿐이므로 싸다. 거기다 스크린과 화상처리 엔진의 가격도 많이 저렴하게 만들수 있게 된 듯 싶다.


올 하반기에 출시될 티비 겸용 3D 모니터는 자동으로 2D화면을 3D로 변환하는 엔진을 내장하고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엘지가 보인 승부수는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안경으로 영화와 모니터, 티비 화면까지 다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저렴한 가격으로 빨리 시장에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지 제품이 실질적으로 시장의 표준이 되어버리면 승리한다는 계산이다. 좋은 생각이다.

아쉬운 점도 약간 있긴 하다. 생산비의 문제때문인지 모니터 제품에는 TN패널 제품만 있었다. 아이패드에도 들어간다고 자랑하던 엘지 디스플레이의 S-IPS 패널 탑재 제품은 일본 시장에 먼저 내놓는 것이 아무래도 비싸지는 가격 때문인 듯 싶다.(출처)

LG는 편광식 시네마 3D 울트라슬림 나노 풀 LED TV들을 발표했다. 3D 모델들은 32 인치, 42 인치, 47 인치 등으로 USB 하드 드라이브 녹화, 튜너 내장, IPS 패널을 제공한다. 2D 모델들은 47 인치와 55 인치 등으로, 8.8mm 두께, 1080p 해상도, 튜너 내장, USB 하드 드라이브 녹화를 제공한다.이 제품은 이달 말 일본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어쨌든 LG전자가 오랫만에 자신만만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이 참 재미있는 자리였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어떤 전략으로 반격에 나설 지 흥미롭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