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국에서는 '쿵푸팬더2'를 보지 말자는 주장이 있었다. 고유한 중국문화인 쿵푸를 가지고 외국에서 상업화한 작품이니 중국의 국익을 침범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양식있는 중국 네티즌들은 코웃음쳤다. 쿵푸팬더 같은 재미있고도 중국문화가 녹아든컨텐츠를 만들지 못한 중국문화계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당당히 경쟁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이런 거부운동이나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별로 심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의 일이기도 하지만, 취미생활에 불과한 영화라 그다지 내 생활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전, 또다른 경험을 겪게 되었다.



지난 6월 23일, 나는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정보문화포럼에 토론 패널로서 참석하게 되었다. 미리 주제문도 준비하고 나름 착실회 준비한 토론이었다. 백분토론 같은 분위기도 났던 이번 토론에서는 소셜미디어를 주제로 저명하신 분들과 나란히 앉아 의견을 주고 받는 진지한 기회를 가졌다. 먼저 관련 기사를 소개한다. (출처)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와 한국정보화진흥원 (NIA·원장 김성태)이 6월 23일 뉴미디어 소통혁명의 실태와 병리적 문제를 진단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행복한 디지털세상을 위한 정보문화포럼’을 개최했다.

서울 무교동 한국정보화진흥원 대강당에서 열린 ‘행복한 디지털세상을 위한 정보문화포럼’은 최근 인터넷 일탈행위와 정보화 역기능 증가에 따른 건전한 정보 활용 문화 조성이 현안으로 대두됨에 따라 일반국민(네티즌), 기업, 공공 및 정부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통해 성숙한 정보문화 조성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종합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2부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숙한 참여·소통문화’라는 주제로 서우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SNS에서 소통되는 정보의 양식이 공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과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상, 정부가 SNS를 이용해 국민과 잘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으며 강학주 eStoryLab 소장은 소셜시대 N세대의 성장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참여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토론을 이어나갔다.

또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소셜테이너, 소셜코디네이터, 소셜디자인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언급했으며 안병도 ‘니자드의 공상제작소’ 운영자는 소셜미디어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함성한 ‘세상의 창, 생각의 틀’ 운영자는 타블로와 임태훈 선수를 예로 들어 SNS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으며 정원모 소셜서비스연구회장(NIA 국가DB사업부 책임)은 트위터의 의사소통 구조와 한국적 특성, 법적 관점에서 바라본 SNS 소통혁명,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형성과 정치참여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관련분야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도 참석해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으며 성숙한 정보문화 조성을 위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생산적인 의사소통과 활용을 위한 지혜를 모색하는 장이 마련돼 의미를 더했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의 명암이라는 주제였다. 나는 일단 발달하는 기술에 대해 뒤늦은 규제는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개개인이 인터넷에서 가지는 권리와 의무 등 민주주의 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화두는 이 뒤에 있었던 방청객의 질문에서 나왔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Q: 발표를 들어보니 소셜미디어가 시대의 유행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예시로 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모두가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외국 서비스이자 기술이다. 트위터만 해도 서버에 그 정보가 저장된다고 들었는데 이런 외국 서버는 한국의 법이 권한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서비스를 한국 정부가 앞장 서서 권하고 쓰는 데 문제의식은 없는가? 정보주권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이었고, 우리가 고민해봐야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기술적, 법률적 대답이 몇 가지 나왔다. 그리고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기술적 난점에 촛점을 맞춘 대답을 했다.

아이폰과 MS윈도, 국산화가 과연 가능할까?

원론적으로 볼 때 방청객의 질문은 백번타당하다. 우리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산기술을 써야한다. 수십년전, 컴퓨터를 조작하기 위한 운영체제도 MS-DOS 를 대체할 국산기술로서 K-DOS라는 게 있었다. 별다른 차이도 없고 불편한 점이 좀 있어 널리 이용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도 진정으로 앞선 첨단기술 가운데 기꺼이 한국 것이 나와서 널리 쓸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의 기술수준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과 서비스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위치기반 서비스의 원천인 GPS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쏘아올린 위성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술이다. 유럽이든 일본이든 이것에 목을 매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유럽에서 독자위성을 통해 동일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GPS를 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든, 좋아하지 않는 나라이든 윈도를 쓸 수 밖에 없다. 오피스든 게임이든 윈도 기반 위에서 실행되는 것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만일 MS가 윈도에 사용자 몰래 정보를 빼가는 기술적 장치를 설치해도 그걸 알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체기술이 될 수 있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도 결국 미국기술이다. 리눅스는 약간이나마 났지만 점유율이 너무 낮다.

아이폰은 또 어떨까? 얼마전 아이폰에서 사용자의 1년치 위치정보를 단말기에 저장한다고 논란이 되었다. 잡스의 다소 건방진 대답도 있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우려에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아이폰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신해서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안드로이드 역시 미국 기술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위에서 예시한 여러 기술들이 과연 국산화가 가능하기나 할 지 회의감이 든다.

(사진출처: 인가젯)

결국 '정보주권'이란 다소 거창한 명분을 가진 시선에서 보자면, 우리는 현재 외국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그나마 카카오톡이나 몇몇 서비스가 국산기술로서 선전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막연하게 모든 것을 배척하면서 살 수도 없다. 다만 문제점을 인식하고 천천히 부작용에 대한 대안과 개선점을 논의하는 건 필요하다.


한국의 정보주권이란 처음에 예를 든 쿵푸팬더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거부한다는 건 어리석다. 다만 시간이 흘러 국내업체가 비슷한 품질과 성능을 가진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경쟁하게 되었을 때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외국도 우리에게 더 좋은 서비스로 다가온다. 이미 MS워드와 아래한글의 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