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가 말하는 것이 나라의 세금은 '눈먼돈'이라고 한다. 세금으로 하는 사업에서는 그 지출을 승인하는 국회의원도, 집행하는 공무원도 그다지 책임의식이 없다. 내 돈으로 사는 거라면 볼펜 하나, 콩나물 천원어치도 값과 효율을 따져보며 사는데, 나라 세금으로 사는 거라면 절약도 필요없고 효율적인 사업방법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많이 타내서 많이 쓰면 그걸로 만족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국가예산이 효율적으로 분배되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는 예산이 없어 제대로 도로보수를 못하는데, 반대로 어떤 곳에서는 남아도는 예산을 쓰기위해 연말이면 멀쩡한 도로를 뜯어내고 다시 그 위에 포장공사를 한다.

얼마전 이통사 가운데 SK텔레콤에서 무료로 공개했던 자사 와이파이망을 가입자 상대의 유료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원래는 경쟁사는 KT를 압박하면서 무료화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정작 KT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반대로 SKT의 와이파이망이 어느정도 깔리면서 그냥 유료로 전환하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뭐, 여기까지는 기업의 경영전략이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보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름 정보화 선진국을 외치며 인터넷 인프라가 물과 공기나 같이 공공재라고 강조하던 정부와 지자체의 입장이 난처해졌다.이통사의 와이파이망이 모두 유료로 전환되고 나면 정작 외국인을 비롯해, 3G가 없는 노트북 사용자는? 와이파이망 하나를 이용하기 위해 비싼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등에 앉아서 정작 필요하지도 않는 음료를 주문해야만 급한 이용을 할 수 있을 판이다. 이래서야 인터넷 강국을 외치는 대한민국의 체면과 국격, 국가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결국 지자체가 나섰다. 서울시가 아예 공공 와이파이망을 서울시 전역에 깔아놓겠노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출처)

서울시는 15일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의 민간 이동통신3사와 협력해 서울 전역에 무료 와이파이(Wi-Fi) 1만개소를 구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서울시와 자치구는 CCTV와 교통신호기 등을 연결하는 자가통신망의 일부 여유 대역을 이동통신사에 임대하고, 이동통신사는 시민 접근이 쉬운 근린공원, 교차로, 상가도로변 등 주요지점에 1만430개 무료 와이파이존을 설치ㆍ운영할 계획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시내 전체 근린공원 382곳 중 363곳에서, 교통신호제어기가 있는 교차로와 횡단보도 등 교통요지는 모든 지역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 이번 MOU 체결로 이동통신 3사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무료 와이파이 1만개소 설치에 올해부터 5년간 총 477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민은 통신비도 절약하고, 와이파이 음영지역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IT첨단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 통신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해 각종 재난ㆍ재해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통신사에서 설치한 무선공유기(AP)를 공동이용할 경우, 시에서 개발예정인 긴급통화, 공공안전 등의 서비스를 서울 전역으로 확산해 각종 재난재해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체계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와 이동통신 3사는 1544개소의 공공ㆍ문화ㆍ시민생활공간과 지하철 1~9호선의 모든 차량, 버스, 택시 등 수송률이 높은 교통수단에도 상용 와이파이 존을 올해 안에 설치하기로 했다.



이 뉴스만으로는 좋은 소식이다. 나 역시 일찌기 무료 와이파이망은 일종의 공공 인프라로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원칙적으로 나는 이런 서울시의 조치를 환영하며 지지한다.

서울시의 무료 와이파이 설치, 효율적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다. 서울시는 통신 3사와 손을 잡고 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런데 통신 3사는 이미 기존 자사고객만을 위한 와이파이망을 깔아놓고 있다. 그 와이파이망은 그대로 놔두고 다시 또 서울시의 돈을 투자받아 새로운 와이파이망을 같은 자리에 깔아놓는다? 이건 그저 돈 낭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통사에게 서울시가 사용료를 대신 주고 깔아놓는 망을 그냥 무료로 개방하라고 하는 편이 났다.

그럼에도 만일 이걸 일일이 새로 설치한다면 그건 와이파이 기기 판매업자와 설치업자만 좋아할 예산낭비일 뿐이다. 저 뉴스의 표현이 좀 모호하지만 새로 구축하겠다는 말은 결국 새로 장치를 설치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기사 안에 '통신사에서 설치한 무선공유기를 공동이용한다면' 이라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이통 3사가 각자 설치해서 한 장소에 중복되는 무선공유기들부터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와이파이망은 같은 주파수 대역을 쓰기 때문에 한 장소에 설비가 많이 있으면 오히려 수신률이 저하된다. 전파가 서로 간섭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심한 부분이 있다. 기사 가운데 '수송율이 높은 교통수단에도 상용 와이파이 존을' 이란 부분은 또 뭔가? 무료 와이파이 망을 운용하고 자랑하기로 했다면 그 교통수단에도 무료 와이파이존을 설치하기로 해야 하지 않는가?

위의 논리대로라면 공공 재난, 재해 대비도 할 수 있는 와이파이인데 지하철 등의 교통수단안에서는 무료가 아니라 상용 와이파이라니? 그럼 지하철 안에서 재난을 만났을 때 돈 없어 상용 와이파이를 못쓰는 사람이나 외국인 등은 그냥 재난을 당해 죽으란 말인가? 앞뒤가 안맞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477억원이나 쓰기로 자랑하고 있으니 예산의 쓰임새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제발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고 쓰면서 동시에 스스로 그 예산의 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공원에서 무료 와이파이가 된다고 좋아하다가 막상 버스나 지하철에는 돈낸 사람만 되는 와이파이망을 보면서 이게 내가 낸 자자체 세금으로 낸 결과라고 알게 되면 그게 서울시의 위대한 업적으로 보겠는가? 세금으로 만들어 재해 때 피난하라고 알리는 와이파이 앱마저 지하철에서는 돈 안냈으니 동작하지 않는다면 그게 참으로 '공정한 사회' 일까?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분명 그 취지가 훌륭하고 방침 자체는 지지한다. 그러나 좀더 같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공정하게 집행했으면 한다. 자칫 좋은 취지에 걸맞지 않는 졸속행정과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추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