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가 너무나 뚜렷한 일이 있다. 부작용이 너무도 뚜렷하게 예상되는 일이 있다. 어떤 물건에 휘발유를 끼얹은 다음, 불붙인 라이터를 거기다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불꽃만 기다리고 있는 휘발유는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불붙인 라이터만 우연히 떨어뜨렸을 뿐 물건을 태울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면 책임이 없어질까?



여성가족부가 추진하고 통과시킨 게임셧다운제에 대해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었다.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내세운 이 법이 사실은 게임 그 자체에 적대적인 학부모들의 일방적인 견해만 반영된 데다가, 외국 게임 회사들에게는 돈 안되는 일부 서비스를 접거나 제한할 핑계만 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돈이 되면서도 외국에 서버를 둔 게임으로 옮겨갈 뿐이란 우려도 많았다.

그리고 마치 불씨만 기다리던 휘발유처럼 법 시행에 맞춰 예상했던 부작용이 나왔다. 바로 블리자드가 일부 배틀넷 서비스 자체를 제한해 버린 것이다. (출처)



10월 21일(현지시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다음 달부터 한국서 시행하는 셧다운제를 준수하기 위해 구버전 배틀넷의 야간 이용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대다수 네티즌들은 셧다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셧다운제는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로 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청소년들의 각종 게임 모방범죄가 발생하면서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현재 블리자드가 운영 중인 배틀넷은 구버전과 차세대 배틀넷 두 종류가 있는데 구버전 시스템은 어떤 이용자가 셧다운제 대상 연령인지 파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 '워크래프트3'와 같은 블리자드 인기 게임을 성인도 밤에 이용하지 못할 전망이다.

 

PC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PC방 장사를 하라는 건가 하지 말라는 건가"라며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로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한 트위터러는 "셧다운제 때문에 이용자 줄어들다가 서버를 닫게 되는 게임이 많아지겠다"며 "이건 마치 80년대 이전의 통금과 같은 발상이다"고 비판했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오는 사람들은 아예 취미 생활도 하지 말라는 소린가"라며 "나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의견도 있었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다는 말이 있다. 사실 블리자드 입장에서 위의 게임은 이미 패키지 게임을 팔대로 다 팔았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배틀넷 유지부담만 남은 것들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해보자. 결국 블라자드는 게임 셧다운제를 핑계로 한국에서 돈 안되는 배틀넷 서비스 일부를 자연스럽게 줄여버릴 기회를 잡았고 실천에 옮길 예정이다.

그러면 결정적이고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이들 게임을 당당히 즐기는 성인들이다. 돈주고 사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자격이 있는 게이머들이다. 이들은 한국정부- 그 가운데서도 여성가족부의 정책 덕분에 정당한 권리를 앉아서 침해 당했다. 

미국 같으면 바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일어날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권리 침해나 경제적 손해에 정신적 손해까지 보상하라며 민사소송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는 한국이다.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



게임 셧다운제, 어른의 권리도 무시하는가?

헌법상 정부의 존재의미는 무엇일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미성년자를 보호하려는 취지가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또한 정당한 성인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된다. 불법 음란 게임도 아니고, 도박 게임도 아닌 정상적인 게임을 권리를 가진 어른이 서비스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는 뒷짐지고 있어서야 정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여성가족부에게 과연 게임에 대한 존중의식이 있기나 했는지 묻고 싶다. 게임을 아예 사탄이나 야차처럼 여긴다면 휘발유를 붓고 불태운다고 해도 아마 옳은 일을 했다고 믿을 것이다. 게임을 하고 싶다고 외치는 성인들이야 철없는 찌질이들일 테고, 게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쓰잘데기 없이 애들 공부방해하는 유해매체물을 만드는 사람일 테니까. 무슨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초기에 강조한 닌텐도 게임기-일명 명텐도가 만들어질 리도 없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 핀란드의 앱게임 ‘앵그리버드’와 같은 대박게임이 나올 리도 없다. 그나마 있는 ‘아이온’ 이나 ‘카트라이더‘ 도 더 잘 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해줄 리도 없다. 한마디로 게임산업 전체를 정부의 어느 누구도 보호하거나, 변호해주지 않는 가운데 공격만 당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래. 다 이해해보자. 여성가족부야 원래 그런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다른 정부 부처는 뭘하고 있었을까? 권리침해 우려를 든 법무부든, 경제피해를 예상한 경제부처든, 게임의 긍정적 면을 아는 지식경제부든 어느 한 부처라도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해서 막아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른으로서의 권리를 하나 잃었다. 


권리란 건 빼앗기기는 쉬워도 다시 찾기란 너무 어렵다. IT산업의 혁신을 말하고 게임업계의 미래를 논하려는 내 입장에서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 훗날 이 게임셧다운제가 세계적으로 한국이 취한 어리석은 IT정책 가운데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