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에서는 흔히 바람직하다, 옳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공정하다(fair)란 표현을 쓴다. 일찍이 로마법이 발달한 문화에 뿌리는 둔 이 나라에서는 공정하면 누구든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냉정한 의미의 '공정하다'는 것보다는 주관적 의미가 섞인 표현을 쓰는 아시아권과는 좀 다르다.



애플과 구글이 언론 컨텐츠 시장을 두고 치열한 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다. '더 데일리'를 유료 서비스하며 언론 수익모델을 열어가는 애플의 수익비중을 두고 좀더 많은 몫을 요구하는 메이저 언론의 불만도 있다. 그 가운데 구글이 보다 저렴한 이용료를 제시하며 애플과 경쟁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뉴스를 보자.(출처)

"구글, '원패스'로 애플과의 경쟁에 불씨를 당겼다." (월스트리트저널)
"구글, 애플보다 저렴한 수수료로 콘텐츠 업체에게 구애하다." (파이낸셜타임스)

애플과 구글이 이번에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 시장에서 맞붙었다. 구글은 16일(현지시간) 온라인 콘텐츠 구독 서비스인 '원패스(One Pass)'를 공개했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통한 콘텐츠 정기 구독 서비스를 발표한지 하루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구글의 도전장은 애플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애플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구독 서비스의 판매 금액 가운데 10%만 수수료로 받겠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애플이 제시한 30%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다.

유리한 조건은 수수료 뿐만이 아니다. 구글은 개인정보에 있어서도 콘텐츠 제공업자들에게 더욱 폭넓은 접근권을 허용했다. 구글은 콘텐츠를 구독하는 독자들의 이름, 이메일 주소 등을 제공업체들이 관리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로써 콘텐츠 업체들은 가입자들의 정보를 중요한 마케팅 자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애플은 고객이 동의하지 않는 한 콘텐츠 업체가 가입자 정보를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애플의 높은 수수료와 회원 정보 차단에 반발했던 콘텐츠 업체들은 구글 서비스 등장에 환영했다. 콘텐츠 업체들은 원패스를 통해 구글 웹사이트와 안드로이드 앱에서 자신들이 정한 조건과 가격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애플과의 계약 해지를 검토했던 온라인 음악사이트 랩소디는 구글의 원패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소식을 두고 나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고찰이 이뤄지길 바랬다. 그러나 국내 뉴스 사이트나 IT블로그들은 단지 구글이 애플의 뒤통수를 쳤다는 재미있는 비유 이상의 어떤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IT평론가로서 내 관점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1) 이것은 애플과 구글의 근본적인 수익모델의 대결이다. 애플이 언론쪽으로 잘될까봐 두려워 구글이 희생을 무릅쓰고 출혈경쟁을 하는 게 아니다. 애플과 구글은 마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차이만큼이나 시장을 보는 관점과 회사의 입장이 다르다.

2) 애플은 기본적으로 항상 아이튠스로부터 성공했던 수익모델을 연장해서 가지고 가려고 한다. 아이애드도 그렇고 아이북스와 아이티비도 그렇다. 이번 언론 컨텐츠에서도 70:30이라는 비율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려 한다.


아이튠스에서 처음에는 이 비율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아티스트 들이 불평했다. 또한 애플이 컨텐츠 가격을 자꾸만 싸게 유도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아이팟을 사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불법복사가 줄어들며 수익이 투명하게 생기면서 불만은 사라졌다. 애플이 그만한 관리와 통합적 광고를 해준다는 것에 30프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계만 그럴뿐 미국의 콧대높은 방송계는 이 비율이 적다고 생각해 아이티비에 잘 동참하지 않았다. 출판계도 아이북스에 미온적이며 전자신문과 잡지로 대표되는 컨텐츠 업체들은 더욱 불만이 많다. 그럼에도 애플은 애플의 통합적 프리미엄과 관리가 따라주기에 30프로는 결코 많은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애플은 굳이 말하면 닌텐도 게임기와 비슷한 수익모델을 베이스로 한다. 하드웨어의 중심을 만들어주고 가치를 유지시켜주는 메인으로서 자기역할을 하는 대신, 그만한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3) 구글은 다르다. 구글은 하드웨어를 제조하지 않을 뿐더러 자기는 메인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구글은 단지 도와주는 서포터일 뿐이다. 구글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구글과 연결되어서 광고를 보고 광고를 해주는 것이다. 트래픽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구글의 수익모델은 당연히 일정한 퍼센트를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없다. 대신 관리도 해주지 않고, 가치를 유지시켜주기 위한 투자도 하지 않는다.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만 마련해주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다른 업체들이 해야 한다. 구글의 요구조건은 오로지 구글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길을 마련해주고 구글 광고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글의 수익모델이다.

따라서 구글은 안드로이드에서도 자기는 한 푼도 가지지 않았다. 운영체제를 만들어주면서도 안드로이드 마켓의 30프로는 이통사에게 주도록 했다. 구글은 하드웨어를 누가 만들어 어떻게 유통시키든 광고만 끌어올 수 있으면 족하다.

애플과 구글의 언론수익모델, 누가 공정한가?

자, 이제 이런 논점을 잘 알았으면 비교해보자. 관리가 따라주는 애플의 수익모델과 단지 광고만 볼 수 있으면 되니 보다 많은 몫을 언론사에 줄 수 있는 구글 가운데 누가 공정한가? 애플이 쓸데없는 착취를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구글이 동업자 의식도 없이 함부로 가격파괴(?)에 나서고 있는 걸까?

일부에서는 구글쪽으로 언론사들이 호응이 몰리니 애플이 다시 비율을 낮추든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천만에. 내 생각에는 그럴 리가 없다. 이건 한 블럭 떨어진 동네 할인마트의 가격경쟁이 아니다. 한쪽이 오늘 돼지고기 가격을 절반으로 내렸다고 해서 다른 마트가 그 절반보다 낮춰서 주부들을 끌어모아야 하는 시장이 아니란 뜻이다.



1) 애플은 나머지 언론사가 호응하든 안하든 처음에 계약한 더 데일리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와 함께 갈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 플랫폼의 완성도와 열광적인 호응도를 보여주며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30프로가 아까워서 저 옆쪽의 진흙탕 시장에 당신의 소중한 컨텐츠를 내놓겠소? 하고 말이다.

2) 구글은 애플이 그러든 말든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더 많은 언론사들을 확보해서 대세가 되려고 할 것이다. 광고 플랫폼으로서 대세가 되면 그 자체도 단가가 오르고 수익을 크게 확보할 수 있다. 구글은 애플이 제약을 걸었던 조건에 불만이 있는 언론사를 파트너로 확보하기 위해서 보다 완화된 조건을 내세울 게 뻔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더 공정할 지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얼핏 애플이 좀 욕심을 부린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은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만일 이대로 구글이 많은 업체들을 흡수하고 나름 잘 운영해 나간다면 애플의 수익모델이 공정하지 못한 것이 된다.
하지만 구글의 관리해주지 않는 플랫폼에서 언론들이 호환성 부족과 여러 난관이 시달리게 되면 될 수록, 애플의 고급스러운 플랫폼과 그 안에서의 정돈된 모습이 매력있게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게되면 애플이 훨씬 책임있고 공정한 조건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뼈 있는 농담 하나를 해보자. 영미권에서 쓰는 공정하다는 표현은 노골적으로 보면 '나에게 유리하다.' 라는 말일 경우가 많다. 전혀 말도 안되는 조건의 노예계약 수준이라도, 내가 엄청나게 유리한 불평등조약 같은 것도 체결하고 나면 '공정한 계약이다.' 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과연 전세계 언론에게 있어 어떤 것이 더 공정한 수익모델일까. 처음에 언급한 말과 위의 표현을 기초로 천천히 깊이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