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 여기서 관점이란 옳고 그른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이해하는 논리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사람이란 신이 스스로의 형상을 본떠 숨결을 넣어만든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진화론에서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영장류에서 진화되어 갈라져 나온 한 갈래의 생명체다.
생물학으로 들어가보면 아마도 수많은 세포와 조직으로 구성된 동물이고, 분자생물학으로 가보면 탄소와 산소 등으로 형성된 유기물이다. 이 가운데 어떤 것도 특별히 틀린 해석은 없다. 보는 관점만 다를 뿐이다.




전자책 또는 E-BOOK이란 하나의 출판형태와 산업을 둘러싸고 많은 미디어와 언론이 주장하는 말들에는 가지각색의 관점이 있다. 저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과 이익에 따라서,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의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책은 단 하나지만 그것이 파생하는 영향에 대해서 수많은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는 이유도 이런 관점의 다양성에 있다.

대표적인 전자책을 보는 관점 몇 가지를 보자.




1) 기존 종이책이 매체만 바꿔서 나오는 형태일 뿐이라 생각하는 견해가 있다. 주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기존 출판계에 강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장하는 관점이다. 이들에 따르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결국은 글자를 읽고 메시지를 얻으려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새삼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 기대할 필요는 없다.

2) 전자책이 획기적인 환경보호와 산업효율성 향상을 가져온다고 믿는 견해가 있다. 이들은 전자책이 무게도 없고, 물리적인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오늘날 나무에서 추출하는 펄프의 대부분은 책이나 잡지용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가 베어질 때마다 지구의 허파가 줄어들고, 온실가스가 높아진다.

또한 종이 위에 잉크로 인쇄하는 데 다시 전기와 연료가 소모되는 데 이것 역시 온실가스와 자원낭비를 가져온다.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배달하는 데도 교통수단의 연료비가 든다. 이것을 인터넷으로 대체하게 되면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다. 물론 전자책도 전기가 소모되기에 그 전기가 다시 화석연료에서 얻어진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비교해 보면 종이책과 전자책 양쪽에 드는 전기 및 연료 비중은 당연히 전자책이 적게 든다.

3) 전자책을 기존에 권력을 쥐었던 출판사와 서점 등 유통 권력의 붕괴와 변화를 유도하는 새로운 물결로 보기도 한다. 우리가 책을 사면 실제로 필요해서 가치를 지불하고 사는 건 온전한 책의 내용이다. 매력적인 표지라든가, 질 좋은 종이 등은 단지 그 내용을 운반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존 종이책은 다 읽고 나서 내용을 숙지하고 나면 그 무게와 부피로 인해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일단 이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관점이 빠져있다. 바로 전자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저마다 공급자의 관점에서 볼 뿐이라는 것이다.

4) 독자의 관점에서 보는 전자책은 수많은 즐거운 가능성이 내재된 깜짝상자와도 같다. 획기적으로 값이 싸진 책을 아주 편하게 볼 수 있다. 기존 책과 다른 비디오와 오디오를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책을 상상할 수 도 있다. 나아가서 어릴 때 상상했던 일들- 책 속의 인물이 튀어나와서 직접 나에게 말을 걸고 함께 모험을 떠나는 마법 같은 책을 기대할 수 있다.




전자책, 어떤 관점에서 보는 게 좋을까.

모든 것을 단지 산업발전과 이익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관점도, 환경보호나 자원절약 같은 강박적인 사회주의적 관점도 분명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건 너무도 메마른 분석이다. 우리 생활을 변화시키는 몇몇 기술들은 그 근본이 사람의 꿈에서 나왔다. 마찬가지로 전자책을 보고 그 변화를 일으켜야 할 우리 감성이 너무 메마른 것이 아닐까.

아직 게임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자라나서일까. 나는 어릴 때 책을 읽으며 여러 상상을 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라든가, 책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 실제 체험할 수 있는 마법 책 같은 것 말이다. 책과 책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사람이 책을 도구가 아닌 친구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꿈꿨다. 이런 꿈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해저 2만리나,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모험을 다룬 소설이 관련기술로 실현되었듯이, 전자책 역시 그 발전과정에는 인간의 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전자책을 보다 순수하게 '책으로 꾸는 꿈의 실현' 이란 관점에서 보고 발전시켜 줄 것을 원한다. 그것이 보다 감성적인 독자들을 위한 최고의 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