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자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특히 내가 가끔 만나는 출판계 사람들과 작가들은 저마다 전자책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 지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점점 진보한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소리가 먼 곳에서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때는 단지 소리만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소리만으로는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했다. 움직이는 영상이란 요소가 하나 추가된 것만으로 사람들의 취향과 유행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상상력은 줄어들었지만 그 자리에 카메라가 만드는 화려한 영상미라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영상이 오히려 방해만 되며 진정한 감동은 소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목소리는 결국 도태되었다. 사람들은 미디어가 바뀌면 그에 맞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면 주류에서 밀려나거나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나는 지난번 포스팅인 <아이패드로 인한 변화, 전자책 시대의 전략은?> 에서 전자책 시대를 맞아 출판계가 단순한 출간과 유통의 특권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주목했다. 그래서 적극적인 홍보와 프로모션을 통해 전자책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빼놓은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새로운 전자책 시대를 맞아 출판사 그 자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점이다. 그 점을 전부 쓰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지고 주제가 흐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전자책 시대가 와서 작가가 1인출간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의 전자책이란 것이 그저 종이책과 같이 하얀 바탕에 검은 색 잉크로 찍힌 인쇄물을 화면으로 옮긴 것 뿐이라는 가정에서만 성립되는 일이다.

작가는 그저 좋은 글을 쓰는 데만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 단순히 텍스트 파일을 자동 프로그램으로 컨버전하는 것뿐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레이아웃을 잡고 편집해서 보기 좋은 책을 만드는 기술은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초기 단계에서 원고의 방향이나 타겟을 잡는 기획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출판사가 하던 이런 역할을 작가 혼자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나 역시 본격적인 전자출판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이나 쿼크 엑스프레스를 써보려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냥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텍스트가 제대로 정렬된 글로서 책이 되기까지는 역시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자책에 들어서면 이런 과정에 더 많은 복잡한 요소가 추가된다. 바로 전자책이란 미디어 환경이 정적인 종이책과 결정적으로 다른 특성 때문이다. 나는 일부러 전자책과 전자잡지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재의 판매량이나 제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래에는 종이책을 그대로 옮긴 전자책은 점점 쇠퇴하고 전자잡지와 같은 인터액티브한 전자책이 주류가 될 것이라 예측하기 때문이다. 



과연 종이책과 전자책은 어떤 특성이 다를까?

1. 전자책은 화면 속 데이터가 움직인다.
종이책이 그림이라면, 전자책은 텔레비전이다. 그림과 글자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다. 동영상처럼 끊임없이 움직일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 한 두 장면을 전환할 수도 있다.

2. 전자책은 사용자의 입력에 반응한다.
종이책은 독자가 손으로 만지든, 책장을 넘기든 어떤 입력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정적인 매체다. 하지만 전자책은 입력장치를 갖추면 독자의 입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키보드를 통해, 터치스크린을 통해, 마이크나 기타 입력수단을 통해서 다양한 입력을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도록 할 수 있다.

3. 전자책은 컴퓨터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기능에 따라 구분해서 전자책, 혹은 e북리더란 표현을 쓰지만 그 내부는 소형 컴퓨터와 마찬가지 구조다. CPU가 있고 RAM이 있으며 저장장치도 있다. 통상적인 모바일 컴퓨터의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는 게 전자책 단말기다. 따라서 이 기능을 전자책에 적용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진보된 책의 개념을 만들 수 있다.

4. 통신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전자책은 모바일 기기의 특성처럼 무선랜이나 3G등의 데이터 통신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의 이동이나 교환이 자유롭다.

전자책 시대를 맞는 데도 이런 요소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그냥 종이책을 옮긴 형태로 만드는 건 말하자면 텔레비전 시대를 맞았는데 화면은 안 나오고 라디오처럼 계속 소리만 내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통할 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형태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보다 전자책답게 나아갈 미래는 무엇일까? 나는 감히 그것을 찾기 위해 컴퓨터 게임을 주목한다.



전자책의 미래, 컴퓨터 게임에서 찾아보자.

아이북스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패드에서 가장 인기리에 팔리는 와이어드란 잡지는 그저 종이잡지를 스캔해서 옮겨놓은 방식이 아니다. 독자가 사진을 만지면 사진이 움직이고, 인터뷰 영상에서는 목소리가 직접 흘러나온다. 전문용어를 클릭하면 해당단어를 해설해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종이책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잘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초창기에 불과하다.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전자책은 그 자체가 모바일 컴퓨터이며 훌륭한 콘솔이다. 그렇다면 전자책 역시 그에 맞게 보다 다양한 미디어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즉 전자책은 얼핏 보기에는 종이책 형태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만 독자가 반응을 원하는 순간 바로 반응해서 더 많은 즐거움과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 소설 속에서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의 도시>라고 나올 했을 경우, 그냥 책장을 넘기면 종이책처럼 넘어간다. 하지만 만일 그 단어를 클릭하면 팝업 형식으로 그림이나 사진이 뜬다. 그리고 그 사진을 클릭하면 비가 내리며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2. 주인공은 나직이 비밀의 주문을 외운다. “열려라, 참깨.” 여기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독자가 직접 마이크에 대고 똑같이 “열려라, 참깨.” 라고 말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3. 스핑크스가 질문을 한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이 질문에 독자가 빨리 대답을 입력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정상이 아닌 전혀 다른 배드 엔딩으로 넘어간다. 영화 <나비효과>처럼 독자의 행동과 말이 소설 내용 자체를 바꿔버린다.

4.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에도 통신을 통해 내용이 새로 갱신되기도 하고, 새로운 챕터가 작가에 의해 추가되기도 한다. 오류수정도 이뤄지며, 다른 독자의 감상평이나 조언도 실시간으로 책 위에 표시되어 참고할 수 있다.



대충 내가 상상해본 것만 해도 정말 다양한 전자책의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는가? 이런 것은 모두 게임에서 구현되고 있는 기능 가운데 하나다. 전자책은 앞으로 그 기획과 편성을 이미 앞서나가고 있는 컴퓨터 게임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게임을 넘는 어떤 형식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한때 유행했던 비주얼 노벨도 좋은 예다.

이런 모든 것은 작가 혼자서 할 수 없다. 앞으로 좋은 전자책은 점점 게임처럼 스탭을 구성해서 기획하고 디자인해서 내놓는 집단 예술이 될 것이다. 출판사와 작가의 협력과 보다 진보한 발상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과연 전자책의 이런 흐름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앞으로 흥미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P.S : 티스토리에서 IT 평론가 니자드 베스트 블로거 인터뷰를 했습니다. 관심있으신분은 클릭 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