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다른 입장에서 남을 바라본다. 내가 가진 것은 너무도 보잘 것 없고, 남이 가진 것은 매우 대단해보인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옛 속담은 현대에도 똑같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그렇다. 가난한 집안의 주인공은 "그놈의 돈!" 하면서 재벌 2세를 부러워한다. 반대로 재벌 2세는 재산을 둘러싸고 벌이는 콩가루 집안과 부족한 부모의 사랑을 말하면서 "이  죽일 놈의 돈!" 이라고 울부짖는다. 이런 게 바로 세상이다.

일반화를 통해 현재 IT기업에서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 바로 한국 네티즌들이 너무도 주목하는 애플과 삼성이란 두 기업이다.



약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애플은 최고의 창조적인 기업이다. 브랜드 가치도 뛰어나고 제품의 창의성과 성능도 나무랄 데가 없다. 순이익률이 40프로에 달할 정도로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들은 다투어 제품을 산다. AS정책이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아무런 문제도 안된다. 심지어 결함이 좀 의심되는 제품이 나와도 소비자가 옹호해준다.

반대로 삼성은 현재 최고의 양산 부품, 양산 제품 기업이다. 창조적이라는 말은 듣지 못해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말이나 효율적이고 도전적이라는 말은 듣는다. AS가 훌륭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적어도 자본과 장치집약적인 산업에서 현재 삼성을 당할 기업을 거의 없어 보인다. 잠재적인 경쟁업체인 중국조차도 삼성의 저력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 현재 애플이 전세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애플만이란 점이다. 애플이 미국기업이지만 그로인해 미국식 기업모델 전체가 다시 주목받지는 못한다. 그냥 애플과 스티브 잡스만 배우자고 할 뿐이다.

반대로 삼성은 한국식 모델의 선두주자가 되고 있다. 삼성은 한국식 기업모델이 만들어낸 기적의 성공모델로 불린다. 굳이 말하면 엘지도 비슷한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런 점만 보면 우리는 어깨를 펴고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듯 하다. 하긴 오바마도 연신 한국의 교육제도와 기업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판이니 말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어떤 힘이 실제로 이런 기업들을 제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국민일보)

세계 LCD 업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TV용 패널 가격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는 지난달 380달러였던 발광다이오드(LED) TV용 40∼42인치 LCD 패널 가격이 357달러로 6.1% 낮아졌다고 9일 밝혔다. 올 초(470달러)에 비해선 24%나 떨어진 수준이다. TV용 패널 가격은 8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46인치 패널 값은 지난달 370달러에서 358달러로 3.2%, 32인치 패널은 162달러에서 159달러로 1.9% 떨어졌다.

가격 하락은 실적 부진으로 직결된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 LCD 부문 영업이익은 5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줄었으며, LG디스플레이는 73% 급감한 1821억원에 그쳤다. 증권업계에선 두 회사의 4분기 실적이 3분기보다도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TV용 패널과 달리 모니터와 노트북PC용 패널 가격이 소폭 반등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시황이 바닥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 이달 들어 17, 19인치 모니터 패널과 15.6인치 노트북 패널 값은 지난달에 비해 2%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선진시장의 수요 회복이 관건이겠지만 중형 패널의 가격 반등이 대형 패널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소식은 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다. 반도체가 그랬고, 지금은 패널이 그렇다. 한국이나 일본업체가 주도권을 잡은 부품 분야에서는 늘 이렇다.



아이패드와 아이폰4를 뜯어본 국내언론이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비록 애플이 디자인했지만 그 안은 대부분 한국 부품이 채우고 있다고 말이다. 일본업체를 몰아냈으니 우리가 자랑스럽다는 뜻이다. 마치 우리가 없으면 못만들기라도 했을 거란 의미 같다.

나는 음모이론 같은 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세계 경제에 현재 어떤 인위적인 권력체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은 실질적인 권력을 잃어버린 선진국이 막 떠오르는 신흥공업국에 대해 남아있는 권력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세계 IT의 구성품은 정확히 분할되어 있다. 운영체제와 핵심 CPU설계, 디자인은 미국의 몫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양대 운영체제를 만들어 독점 공급한다. CPU는 역시 미국업체인 인텔이 독주하는 가운데 AMD란 미국업체가 경쟁한다. 모바일에 들어가는 APU역시 영국의 ARM이 라이센스를 준다. 애플 제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영국출신 디자이너 집단이 디자인한다. 그리고 단지 생산만을 폭스콘이 중국에서 생산한다.

그 밖의 부품은 한국과 일본, 대만이 차지하고 있다. 램, 디스플레이 패널, 낸드플래시와 주문 생산형 칩, 콘덴서 등은 말이다. 이런 제품은 더이상 미국이 생산을 포기했다.



희안한 일이 있다.

1) 미국이 완전히 포기한 분야의 부품은 늘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한다. 만일 폭락을 견디다 못해 업체끼리 가격을 조절하면 담합이란 명분으로 미국은 막대한 과징금을 매긴다. 너희들끼리 제 살을 깎아먹든 뭐하든 어차피 미국업체가 없으니 알아서 최대한 싼 값에 가져다 바치란 뜻이다. 덤핑 판정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램이 특히 그렇다.
 
2) 미국과 한국 회사 등이 경쟁하고 있는 분야의 부품은 늘 덤핑판정에 떨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낸드프래시 메모리 같은 분야다. 지나치게 싼 값에 시장에 물건을 팔면 당장 미국 업체가 덤핑으로 고소하고 그러면 막대한 부가관세가 매겨지든가 상대업체와 합의하고 배상금을 물며 고소를 취하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경쟁을 할 수 없는 미국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3) 미국 업체끼리만 경쟁하는 분야는 덤핑판정도 담합판정도 없다. 인텔이 아무리 비싼 가격에 신형 칩을 팔든, AMD가 그에 맞춰 적당한 수준에서만 칩 가격을 인하하든 상관도 안한다. 미국 입장에서 신흥개발국에 싼 값에 물건을 공급해야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신흥공업국이 감히 미국의 운영체제 업체나 칩 업체를 담합이나 독점으로 고소해서 배상금을 물려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IT게임의 법칙이다. 우리가 핍박받는다 말하는 애플조차도 사실은 이런 미국 정부의 헤게모니와 기득권을 업고 싸우는 업체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애플이 삼성에 견제받는다, SKT에 견제받는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나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한국 이란 찻잔 속의 태풍이라면, 세계적인 룰은 이렇듯 한국 업체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룰에서 움직이고 있다.

애플과 삼성, 두 기업의 구조적 고민은?


애플의 치명적 약점은 아무리 해도 삼성같은 기민한 생산과 철저한 부품관리 역량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일껏 좋은 디자인과 설계를 해놓아도 애플에게는 직영 공장이 없다. 멀리 떨어진 중국 공장에 아무리 노력을 들여도 한계가 있다. 단지 흰색 칠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라는 탄식까지 듣는 화이트 아이폰4의 발매연기나, 아이패드 패널 부족 사태 등을 보자. 애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삼성 같은 전문 제조기업의 역량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다.

단적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때 미국에 공장을 짓고 엄청난 대우를 해주며 미국 근로자를 고용했다. 그리고 첨단 로봇과 자동화 공정으로 컴퓨터를 생산했다. 그러나 나중에 파트너사인 일본 캐논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공장의 불량률은 일본과 한국공장보다 더 높았다. 충격을 받은 투자자 로스 페로는 공장을 한국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잡스는 듣지 않았다. 의견충돌 끝에 페로는 넥스트 이사를 사퇴했고 주식을 처분했다. 그리고 하드웨어 업체로서의 넥스트는 끝내 망했다.

삼성의 치명적 약점은 신흥공업국의 이익률을 견제하는 거대한 흐름에 있다. 지난해 삼성은 반도체에서 엄청난 치킨게임을 해서 끝내 승리했다. 인피니언이 무너졌고 엘피다과 대만업체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삼성은 메모리를 거의 독점하고 가격을 유지하며 많은 순이익을 보고 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다시 반도체 가격의 하락이 올 게 뻔하다.



반도체로 손실을 보고 있을 때 삼성을 떠받들어준 부품이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그러나 이 패널 역시 점점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삼성과 엘지가 치열한 경쟁 끝에 이겨도 그 승리의 열매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전반적인 제품 가격 하락이 온다. 애플 제품 가격이 별로 하락하지도 않고 오히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가격을 올려 받는 것과는 매우 대조된다.

만일 전세계에 애플같은 브랜드 파워, 창조력과 삼성 같은 생산, 품질 관리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업이 나타난다면? 아마도 세계정복이 너무도 손쉬울 것 같다. 그러나 신조차도 그런 기업이 무서운지 아직 그런 엄친아 같은 기업은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애플도 삼성도 나름의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그래서 또 경쟁이 재미있어 지는 지도 모른다. 과연 애플과 삼성 가운데 어느쪽이 먼저 자기의 구조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