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옛날 SK텔레콤의 선전에 이런 게 있었다. 그윽한 정취의 산사에 머물던 한석규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명상하는 스님과 사찰을 보면서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고 멘트가 나왔던 것 같다.
언뜻 보면 어디든 터져야 하는 이동통신사에서 핸드폰을 꺼놓으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마치 신용카드사가 카드 긁지 말라는 투의 자기모순적 선전문구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은 상당히 맞는 말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기술에 맞춰 다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변하면서 피치 못할 부작용이 생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는 공연문화와 각종 예식문화에 변화를 주었고, 지하철 안이나 각종 모임의 에티켓까지 따로 만들었다. 그만큼 기술에 따라 사람의 의식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보다 편하게 하지만, 편하게 한 만큼 다시 부담과 일을 준다. 옛날에 휴대폰이 없을 때는 집과 직장에서 벗어나면 연락이 안되기에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휴대폰이 생긴 이후 어디서든 벨 소리 하나로 직장과 집은 사람을 다시 불러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 역시 마찬가지다. 손 안에서 간단히 쇼핑과 영화표 예매, 꽃배달을 시킬 수 있다고 좋아하는 한편으로는 휴가를 가있다가도 상사가 급한 일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메일로 보내온 엑셀과 워드, 파워포인트 자료를 급히 스마트폰으로 처리해야 하는 안쓰러운 일도 생긴다.

한편으로 언제든 심심하지 않게 나와 남을 이어주는 트위터, 페이스북에 열광하지만, 사실 그만큼 자기만의 시간, 사색에 잠기거나 독서를 하고, 남을 관찰하고, 여행경치를 즐길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면에서 통신의 발달은 점점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야후뉴스)



스웨덴 모바일 기업 TeliaSonera의 자회사 NCell은 오늘 에베레스트 해발 5,200미터 부근에 있는 Gorakshep 마을에 3G 기지국을 건설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지국의 전파는 해발 8,848미터인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닿을 수 있다. NCell 네팔 지부의 Pasi Koistinen은 오늘 "우리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 영상통화를 하므로써 가장 높은 곳에서 한 영상통화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기존에는 에베레스트에서 전화를 하려면 중국 차이나모바일이 제공하는 비싸고 통화만 되는 위성 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3G 망을 이용해 통화뿐만 아니라 영상통화, 인터넷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것을 드디어 기술이 이뤄낸 쾌거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제 에베레스트에 오르면서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해 심심해 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가 일부러 세계 최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의 정상까지 가서 굳이 저렴한 인터넷을 즐겨야 할까?



긴급연락용이나 통신용이 아니다. 공익적인 목적도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미 마련된 위성 전화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제공하는 인터넷은 결국 트위터라든가, 페이스북, 사적인 영상통화 목적 정도로 쓰일 것이다. 그런데 굳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고 싶다면 왜 에베레스트까지 오는가?
그냥 편하게 자기 집에 앉아서 혹은 동네 뒷산에라도 오르면 되지 않을까? 먼 네팔의 험한 산까지 와서 고산지대에서 저산소의 공포를 이겨가며 산에 올라서는 굳이 트위터로 뭔가를 해야하는가? 아니면 연인이나 친구에게 인터넷으로 <나! 에베레스트 올랐다! 봐라!> 라고 자랑해야 할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목적일까?


뭐든지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어떤 고유한 정취나 분위기를 전부 뒤집어 엎는 식으로 움직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야 아니지만 네팔 사람 가운데는 히말라야 산맥과 에베레스트를 신이 사는 곳으로 인식해서 경건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굳이 그 사람들에게 그런 신성한 산을 올라가서 경치를 보거나 산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할까?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라서는 힐러리가 오른 그 등정의 역사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부터 연결하면서 쉴새없이 트위터와 영상통화에 몰두하는 모습은 참으로 어색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누가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올라서는 천지연의 광경이나 산 아래 광경은 관심도 없고 <자! 어서 불판깔고 고기나 구워먹자! 노래도 한 곡 하고!> 하는 식으로 논다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면 되겠다.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고, 아마도 스웨덴의 저 통신회사 역시 고객들의 수요가 있으니 저런 서비스를 제공했을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의 발달이란 시대의 흐름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저럴 때는 앞에서 언급한 한석규의 옛날 이통사 광고처럼 일부러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또다른 세상을 만나면 안될까? 자연과 산을 진정으로 감상하고 즐기면 안될까? 산에 왔으면 산을 보는 게 보다 풍부한 인생경험이 될 것이다.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인터넷 말고 말이다. 정보화 시대에도 때로는 정보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단말기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넘치는 데이터의 연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아날로그적인 휴식과 경험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