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듣는 말 가운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은 어느 분야에만 통용되는 매우 날카로운 진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보를 다루는 IT에서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한 가지 정보를 가지고 어떤 일을 판단하는 것보다는 두 가지, 세 가지 관련 정보를 통합해서 판단하면 더 많은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는 언뜻 관련이 별로 없어 보이는 뉴스조차도 기묘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있다.

얼마전 나는 재미있는 뉴스를 보았다. 바로 한국의 주력상품인 삼성 메모리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처: 애플 인사이더) 대략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값 하락세를 예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DRAM은 오래전부터 일종의 경제지표이자 환율과 마찬가지로 변동성을 지닌 재화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세계최대 반도체 생산회사인 삼성의 예측은 매우 중요한 보고다.


삼성측에 따르면 올들어 PC 판매가 기대치보다 낮게 진행되면서 DRAM 재고가 쌓이고 있다. 그런데 메모리는 IT제품 모두에 쓰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체적인 IT업계 불황을 의미한다. 특히 삼성측은 "소비자들이 DRAM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타블렛 컴퓨터로의 이동이 커지면서 반도체수요와 함께 피씨 부품 수요가 줄고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원래 PC제품들은 많은 메모리를 요구한다. 이제 2기가는 기본이고 좀 여유가 있으면 4기가바이트를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넷북만 해도 1기가는 기본으로 탑재한다. 그런데 가벼운 인터넷과 게임, 동영상 감상을 위해 넷북 대신 아이패드를 사면서 최저 1기가는 필요하던 메모리가 256메가로 줄어버렸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언론에서야 이런 기사를 접하면 <삼성, 메모리 수출에 경고등 켜졌다.>, <반도체 다시 불황기로?> 등으로 수출 산업 자체에 초점을 둔 기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좀 다르다.


미국언론은 스티브 잡스가 PC를 오래전 자동차산업에서의 트럭에 비유하면서 <모든차가 트럭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트럭이 도태되고 승용차가 주류를 형성했다>고 언급한 것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정말로 잡스의 예언처럼 넷북을 지나 노트북 시장까지를 아이패드를 비롯한 타블렛과 모바일 기기가 흡수하는 조짐이 아닌지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또 하나의 재미있는 뉴스가 보였다. (출처: 엘렉트로니스타)

Acer CEO Stan Shih는 수요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애플 제품들은 치료를 받아야 할 변종 바이러스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운 것으로 알려졌다. Shih는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인 하드웨어에 대한 고집은 유행을 유발하지만 iPad이나 iPhone 같은 기기들은 단기적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처음에는 성공하지만, 자연적으로 진화하는 경쟁에 의해 결국 패배하게 되고, 애플 효과는 면역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비슷한 예로 맥의 경우를 들었다. 윈도우 같은 오픈 플랫폼을 지원하는 것이 경쟁사들로 하여금 애플보다 더 크게 만들었고, 비슷한 결과가 VHS 대 소니 고유의 베타맥스에서 나타났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Shih는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통합시킨 모델은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cer 같은 타이완 회사들은 과도하게 하드웨어에만 집중했고, 소프트웨어에는 충분하게 집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의 문화"가 터이완 기업들에게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국 PC 제작사들이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회사들은 타이완 회사들보다 더 큰 이익을 거두고 있어서,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생산하기보다는 서비스 쪽으로 선회하는 것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뉴스의 서두는 에이서의 사장이 애플 제품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아래로 내려갈 수록 옳은 말을 하고 있다. 애플의 장점에 대한 분석도 맞고, 미국 회사와 타이완(대만)회사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비교적 정확하다. 마지막 부분은 아마도 순이익에 민감한 미국 회사들이 일정 부분이하로 이익률이 감소되면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게 될 거란 예측 같다.

자 그럼 한번 생각해보자. 에이서는 미국 랩탑PC 점유율 3위의 기업이다.  이런 회사에서 왜 자기 분야의 경쟁자도 아닌 애플을 강력하게 비난할까? 또한 그러다말고 뜬금없이 애플을 칭찬하고, 대만업체에 밀리는 미국회사의 장래를 걱정할까. 이 뉴스만 봐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답은 처음에 언급한 삼성과 아이패드 관련 뉴스에 있다.

아이패드가 삼성 메모리값 하락을 불러왔다?


맞다. 확실히 그런 대체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아이패드가 기존의 넷북과 노트북 시장을 먹어들어간다는 조짐이 삼성 메모리 칩 판매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위에 있는 PC시장도 천천히 축소되어간다. 때문에 이미 넷북 라인에 투자를 한 에이서를 비롯한 업체들은 수요감소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더구나 축소되는 만큼의 이익은 오로지 애플 한 회사가 차지하고 있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애플만 이익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은 대만 업체인 폭스콘이 하청을 받아 중국에서 만든다. 타이완 업체도 일부 이익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편되는 넷북 대체 타블렛 시장의 이익은 애플과 그 아래 있는 타이완 하청 업체, 부품을 공급하는 일부 한국 업체 정도가 나눠먹게 된다. 여기에는 기존의 PC시장을 주름잡는 델이나 에이서,HP가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이 회사들이 서비스 회사로 변신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악담을 한 것 같은 에이서 사장의 말은 애플에 대한 원색적 비난만 빼놓고는 맞는 말이다. 현재 미국과 전세계 PC업체들의 고민과 타결책을 제시한 셈이다. 아이패드는 삼성 메모리값 하락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세계 넷북과 저가 PC시장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변화에 철저히 대비하는 회사는 살 것이고, 둔하게 주저하는 회사는 도태될 것이다.

앞으로 아이패드가 가져올 더 많은 변화를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