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신이 아니다. 실수도 하는 인간이다.
또한 애플은 완전무결한 집단이 아니다. 때로는 회사 이익을 생각한 나머지 다른 법규를 어기거나 횡포라고 느끼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이 말을 하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오늘날 애플과 잡스의 단점에 대해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은 다른 문제와 다르게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카톨릭이 국교인 나라에서 느닷없이 <저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마치 그런 문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냉정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존중한다. 때문에 주위에 그 신자가 있어서 과도한 신앙에 빠질 경우에 기독교의 신학과정을 공부해볼 것을 권유한다. 신학은 말 그대로 학문이기에 기독교에 대한 비교적 냉정한 역사적, 인문적 소양을 쌓아준다. 그러면 최소한 광신자가 될 가능성을 줄여준다.


애플과 잡스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그들 역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막상 그 실수를 저지르는 도중에는 자기들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또한 애플을 지지하는 팬보이들은 그때에도 애플의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제품이 실패하거나, 애플이 실수를 인정하고 제품을 수정하더라도 누구도 그런 공격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유럽 교황이 중동국가에 대해 십자군 원정이 잘못된 정치적 의도와 종교적 선동에서 나온 실수라는 걸 인정하고 사과하기까지는 무려 천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어제 나온 애플의 뉴스 하나를 보자. (출처: 슬래시기어)

애플은 오늘 iOS 개발 제한을 완화해 어도비 플래시 CS5 등 서드 파티 개발 툴들을 허락한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올해 초 앱들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되는 랭기지들을 C, C++와 Objective-C로만 제한시켰다. 애플은 이런 입장에서 후퇴해 "앱들이 어떤 코드도 다운로드 하지 않는 결과가 있는 한" 어떤 개발 툴들도 허락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애플의 입장 변화는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사용을 금지시켰던 어도비의 iPhone 용 플래시 컴파일러, 모노터치, 앱셀레이터 등의 서드 파티 개발 툴들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개발자들이 이같은 툴들을 선호하는데, 그들이 iOS를 위해 새롭게 앱들을 쓰지 않아도, 이미 다른 플랫폼들에서 개발한 앱들의 코드를 iOS 플랫폼으로 쉽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어도비와의 사이에 있던 약간의 원한과 상당한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에 의해 iOS에 플래시를 채택하지 않고, 나아가 앱의 개발 언어까지 약관으로 제한해버린 과격한 행동이 몇 개월 전에 있었다. 잡스는 직접 성명을 내서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어도비의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행동을 합리화했다.
이에 대해서 이미 나는 이전 포스팅 잡스가 어도비 플래시를 거부한 진짜 이유는?  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그러나 잡스의 주장에 대해 세 가지 면에서 세상은 애플을 압박해왔다.

첫번째로 애플이 꿈꾸는 장미빛 미래와 달리, 당장 눈앞에서 플래시가 아니면 제대로 보지도 쓰지고 못하는 웹사이트가 너무 많았다. 또한 개발자들은  애플에서 제한한 언어 뿐만이 아닌 다양한 언어를 쓰길 원했다. 특히 어도비의 편리한 플래시 제작툴로 간편하게 아이폰 앱을 만들길 원했다.

두번째로 게임에서 언리얼3 엔진과 오픈CL등을 사용한 게임툴도 제한에 걸리므로 좋은 품질의 게임 개발이 힘들어진다.

세번째로 미국 연방정부는 애플이 이런 일련의 행동이 플랫폼홀더로서 공정성을 잃고, 개발자와 소비자가 선택할 자유를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따라서 차근차근 정보를 모으며 애플에 대한 고소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듯 하다.




첫번째와 두번째인 소비자와 개발자의 불만이야 애플이 당장 힘이 있으니 그냥 눌러버릴 수 있다. 그러나 세번째인 미국 연방정부의 제소는 애플로서도 두려울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점점 법리적으로나 여러 상황이 불리하게 몰린 듯 싶다. 애플은 결국 신속하게 개발 제한 완화를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조치는 어도비의 CS5 자동변환 툴까지를 허용함으로서 애플이 기존에 해왔던 주장 가운데 일부를 굽혔다. 즉, 애플은 독특하고 새로운 자사제품의 혁신적 하드웨어에 맞춰, 개발자들이 손쉬운 변환툴이 아닌 전용 언어로 코딩해서 더 멋진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을 바란다는 명분이 깨진 것이다.
사실 그 말은 애플이 가진 현재 지위를 이용해서, <돈 벌고 싶으면 완전히 애플쪽에 특화된 언어와 환경을 따로 배워와라. 평범한 범용 툴 같은 건 받아주지 않겠다.>란 선언이었다. 말은 쉽지만 개발자들에게는 엄청난 고문에 가까웠다.


이제 좀더 편하게 아이폰용 앱을 개발할 수 있게 된 지금 이제 남은 쟁점은 하나다. 바로 모든 것의 원천이 된 어도비의 기술- 플래시다.

 애플과 어도비의 화해? 플래시는 허용될까.

저 발표로 애플과 어도비가 화해할 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도비와 애플은 문제없이 결별할 만큼 완벽하지 못하다. 애플에게는 어도비의 포토샵을 비롯한 그래픽 툴과  PDF 등의 폰트, 문서툴이 필요하다. 어도비에게는 애플이 차지한 시장과 혁신성이 필요하다. 애플이 공식적으로 플래시를 허용하게 되면 양 사는 화해가 가능하다.


사실 비공식적이지만 이미 애플 아이패드에서 플래시를 돌리는 것은 가능하다. (출처)

아직은 개인 개발자가 만들었고, 탈옥해야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플래시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는 아직도 높고, 애플이 주장하는 HTML5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의 발표를 계기로 애플이 조금 더 진전된 입장에서 사파리 등을 통해 전면적으로, 혹은 써드파티의 브라우저인 오페라 등을 통해 플래시를 쓸 수 있게 묵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명심할 게 있다. 설령 애플과 잡스가 기존 주장을 뒤집고 플래시를 허용하더라도 그건 애플의 패배나 치욕이 아니다. 그건 소비자의 승리이며 또한 애플의 승리이기도 하다. 비웃을 이유가 없다. 소비시장에서 제품이 소비자의 요구에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플과 소비자가 모두 웃는 그런 승리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