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태평양 전쟁 패전 다음해인 이때 일본의 천황은 칙령 형식으로 한 가지 선언을 한다.

짐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이야기는 <천황의 인간선언>이라는 상징화된 사건이 된다. 왜 이런 선언이 필요했을까? 그건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살아있는 신이라 떠받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 일본인들도 알고는 있었다. 천황은 인간이라는 걸. 밥먹고 병도 걸리고 죽기도 하는데 그게 신이 아니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일본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천황은 신화에서 내려온 신의 직계자손이 되어야 했고 그런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패전하게 되자 미국 입장에서는 맥아더 장군 이란 인간이 일본을 다스리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야 했다. 당연히 천황도 장군의 통제와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신이 어떻게 인간의 통제와 지시를 받겠는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천황은 인간으로 끌어내리든가, 아니면 아예 천황제도 자체를 없애야했다. 그래서 천황제에 대한 존속을 유지하되 인간선언을 시킨 것이다.


내가 굳이 왜 이야기를 할까? 그것은 이번에 안테나게이트를 둘러싸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 바로 이런 인간선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폰은 완벽하지 않다.

당연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키노트에서 선언을 했다. 천황의 인간선언과 비교해서 이건 <애플의 인간선언>라고 부를 만 하다. 애플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 그걸 몰랐던 거 아니다. 그런데 왜 새삼 잡스가 이런 선언을 해야했을까?

그건 애플이 이제까지 스스로 혁신을 내세워 <완벽한 척>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를 두었기에 언론과 팬이 열광하고 스스로 뻣뻣한 자존심을 내세워가면서도 기록적인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다. 애플의 마케팅 담당자는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마케팅이 되었다. 애플의 홍보 담당자는 <노코멘트>란 말만 하면 홍보가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는가? 잡스와 애플이 스스로를 철저히 이미지화 시켜가며 <완벽함>과 <혁신적>이란  인상을 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애플은 한번도 스스로 완벽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팬이나 언론에서 그런 뉘앙스로 감탄사를 연발할 때 한번도 그걸 말리거나, 자제시키지 않았다. 마치 종교교주가 아래서 신도들의 무한찬양을 즐기듯 책임질 필요없는 과장을 방치했다. 그러니 이런 이미지가 퍼지며 순기능으로 애플의 문화와 기대감을 나날이 증폭시켰던 것이다.


잡스가 특별히 이번에 강조하지 않았어도 사실 애플이 완벽하지는 않다. 혹은 폰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쯤은 누구든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애플팬, 그리고 잠재적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애플이 선망의 대상이고 신비한 기업이었다. 그곳에서는 완벽주의자 잡스의 제품에 대한 집념이 완벽한 제품을 탄생시킨다고 믿었다. 애플이 키우도록 방치한 이미지다.
 
그러나 이번 안테나게이트에서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완벽한 이미지의 애플이 만든 아이폰4가 안테나에 결함이 있다? 그것도 다른 폰보다 더 민감하고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런 이미지는 마치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어?>란 충격처럼 대중에게 다가왔다. 애플팬이든 아니든 이런 이미지가 깨지는 충격은 비슷했다. 심지어 언론까지 그랬기에 (애플 스스로 이야기하기에는) 별 것도 아닌 문제를 연일 크게 보도하며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잡스의 <인간선언>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잡스가 애플의 이런 이미지를 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애플이 휴대전화를 만든지 4년 밖에 되지 않은 업체로서 안테나에 대해  기존의 컴퓨터처럼  높은 위치에서 다른 업체를 굽어보며 <내 것 좀 베끼지 말란 말야!>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근거한다. 즉 애플은 실질적으로 휴대폰 안테나에 대해서는 다른 업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오히려 수십년의 노하우를 가진 업체의 특허권을 피하면서 그들을 베껴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사진출처: 인가젯)

이어지는 <폰은 완벽하지 않다.> 이 말은 결국 애플은 다른 업체가 해결못한 안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완벽주의자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라면 뭔가 다를 거야. 설사 다른 업체가 몇 가지 문제로 채택하지 않은 외장안테나지만 잡스가 채택했다면 분명 획기적인 기술로 결점을 깨끗이 해결했을 거야. 안그러면 출시했겠어? 라는 대중의 이미지에 보답하지 못하겠다는 항복선언이다.

애플의 안테나게이트는 굳이 말하자면 이미 외장안테나를 채택했을 때부터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다. <휴대폰 안테나>란 점에서는 다른 휴대폰 회사들과 똑같은 문제지만, <외장안테나>라는 특이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거가 더 자세히 설명했으니 관련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상당히 논리적이고도 차분히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 계란소년님의 링크 )

긴 글을 보기 싫은 사람을 위해 요약하자면 핵심은 이것이다.

휴대폰에서 외장안테나를 채택하면 원래 비약적으로 수신률이 향상된다. 하지만 반대로 외부접촉에 대해 비약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애플은 수신률 향상을 위해 다른 업체들이 채택하지 않은 외장안테나를 썼지만 결과적으로 그에 따른 치명적인 불안정성을 회피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잡스와 애플이 <폰은 완벽하지 않다> 며 다른 업체를 끌고 들어간 것은 외장안테나 채택에 따른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업체는 외장안테나가 너무 불안정해서 수신률이 좋음에도 채택하지 않았는데, 그걸 채택해놓고는 이제와서 이건 누구든 같은 문제라니?


잡스가 외장안테나를 채택한 아이폰4를 발표했을 때 안테나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이런 가능성을 의심했다. 저건 안될 텐데? 불안정성은 해결했나?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때조차도 설마 완벽주의자 잡스가 모르고 채택했겠어? 애플이 한 것이니까 분명 어떤 기술로 그 문제를 깨끗이 해결했을거야. 라고 이른바 공학자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다.

이게 바로 그동안 잡스와 애플이 쌓아온 이미지였다. 애플이 하면 뭔가 완벽한 해결을 했을 거란 그 믿음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저런 불완전 선언을 해버리자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여줄 리가 없다. 즉 이건 과다한 추앙을 방치하며 혜택을 즐기던 사람이 막상 그 추앙이 엄청난 실망으로 변하자, 곧바로 <나를 추앙하지 말라>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애플의 논리를 인정한다면 다른 업체도 억울해서라도 다투어 애플식 외장안테나 모델을 만들어 놓고는 수신불량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폰은 완벽하지 않다. 이건 해결 불가능하다.>라고만 하면 끝이란 이야기다. 애플의 해명대로라면 그건 매우 소수이고 거의 일어날 확률도 적은 문제다. 그러다 정 불만이면 몇 달러 원가 안하는 케이스만 제공하면 된다.

애플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테나에 관해서는 이렇게 모든 업체가 동등하게 경쟁했으면 좋을 지도 모르겠다. 다 같은 안테나 문제가 있으면 그 다음은 애플이 자랑하는 운영체제만으로 승부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건 휴대폰의 기본은 폰이라 믿고 수십년 동안 많은 노력으로 안테나 연구에만 매달린 다른 휴대폰 업체들의 노력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잡스가 이런 모순을 변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업체들이 반발한 것 당연하다. 블랙베리의 림과 노키아에 이어서 물귀신작전(?)의 희생양이 된 다른 두 모델 업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AppleCare(애플 고객지원센타)를 통한 아이폰4의 수신에 대한 불만은 0.55%밖에 안된다.는 잡스의 해명에 대해 이번에는 HTC의 반격이다. ( 출처: 인가젯 )
 
HTC의 글로벌 홍보 담당자 Eric Lin은  Droid Eris가 출시된 지난 7개월 동안 수신문제에 대한 불만은 단지 0.016%로 애플 아이폰4 의 불만율과 34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제품의 특성과 판매량, 출시시기 등 다른 요소를 일부러 무시한 잡스의 통계이용법에 대해서 같은 통계수치도 비웃은 것이다. <그런 논리면 드로이드가 아이폰4보다 34배 수신률이 우수한 거냐?> 라고 말이다.


심지어 아이폰4의 중요 부품 공급 협력사인 삼성도 성명을 냈다. ( 출처:기즈모도 )

아이폰4의 안테나는 왼쪽 아래에 위치해있는 반면 옴니아2의 안테나는 아래쪽에 위치하며, 삼성은 안테나가 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디자인했고 스마트폰을 출시하기 전에 완전한 필드테스트를 거치기에 수신률 문제는 지금까지 일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이므로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폰도 완벽하지 않다. 고 말한 <인간선언>의 의도는 무엇일까?
 
나는 차라리 그것이 향후 잡스와 애플의 제품에 대해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아달라는 완벽한 커밍아웃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는 지나친 열광을 하지 않는 대신 (잡스에 따르면) 사소한 결함에도 떠들썩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의 인간선언은 아무리 봐도 그런 뜻이 아니다.

결국 그 의미는 이번 안테나게이트에 다른 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플만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니다> 란 변명 밖에 되지 않는다. 적어도 잡스가 말하면 그것은 곧 여러 의미가 있는 명언이 되고 업계의 핵심을 뚫는 말이 되던 이제까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인간선언, 그 의미는?


최종적으로 그것은 스티브 잡스의 의도와는 달리 그냥 우리가 우러러보던 잡스가 개인생활 뿐만 아니라 회사경영에 있어서도 결점과 모순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 이다. 또한 자기가 의기양양하게 <신이라도 된 듯> 내놓은 제품에 대한 책임은 <인간으로서 밖에> 지지 못하겠다는 씁쓸한 의미다.

그래서 소비자가 <아! 그래, 애플은 완벽하지 않지.> 라고 자기 돈 내고 산 제품의 결함을 용서하고 그냥 케이스를 씌워서 쓰든가, <아니! 애플이 완벽하지 않았어? 난 완벽한 애플 제품이기에 믿고 샀어!> 라며 구입하지 않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건 그저 각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잡스는 그의 말대로 정말로 <완벽하지 못한> 실수를 했는데 그건 바로 이어지는 Q&A 시간에 한국을 언급하며 애국심에 호소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곧바로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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