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IT블로거 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 지 두 달이 좀 넘었다. 누군가 댓글로 나에게 <곧바로 사라지는 자극성 있는 글> 대신에 <오래 가는 정보성 글>을 쓰라는 말을 했었다.

하긴 IT블로그의 주류는 그렇듯 <윈도우 최적화하는 법>, 이나 <아이폰 살 때 현명한 요금제> 같은 글이다. 또한 외국 사이트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전문지식이나 뉴스를 번역해서 올리는 글도 많다. 모두가 다 좋고 유익한 글이다. 사실 인터넷이 단순히 지식만을 습득하는 곳이라면 이런 글만으로 IT가 전부 채워진들 아무런 불만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식>이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지혜>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때로는 어이없이 다단계 판매나 단순한 사기에 넘어가는 건 그 사람이 <지식>이 모자라서는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아사는 지혜가 모자라는 탓이다.

철저히 사견이지만 나는 <아이폰4 나왔습니다. 정말 좋죠! 어서 써보세요!>, <갤럭시S 써보니 플래시 돌아가서 너무 좋네요.>, <이번에 SK가 새로 요금제 내놓았습니다.> 같이 너무도 많이 보는 흔한 글 속에 굳이 내 글 하나를 더 보태기가 싫다. 차라리 인기가 없을 지언정 무엇인가 다른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관점과 해석을 첨가한 지혜를 전해주는 블로거가 되고 싶다. 때문에 단순히 어떤 회사에서 어떤 제품을 내놓았다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도로 나왔으며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심도있게 분석하는 글을 선보이고 싶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인기를 얻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차분하게 블로거 생활을 했을 것이다. 과연 지식이 오래 갈 것인가? 아니면 지혜가 오래 갈 것인가?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서두가 좀 길었다. 오늘은 애플의 최근 제품인 아이폰4를 둘러싼 iOS의 개발환경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본래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겸손이 필요없다. 겸손하면 조금 더 주위의 평가가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세상은 힘있고 능력있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사람에게 힘이 계속 있는 한은 자기 주위의 작은 불만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 심지어는 횡포를 부려도 상관없다. 오히려 횡포야말로 힘이 있으니 부릴 수 있는 특권이다.

요즘은 TV 드라마에서조차 여자들이 돈 없고 착한 남자에겐 관심이 없다. 재벌 2세면 성격이 더러워도 가진 자의 야비함이라며 매력으로 여긴다. 그것이 당연시 된다. 여기서 현재의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잘나가는 재벌 2세로 비유한다면 어떨까?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처럼 우리의 아이폰과 잡스는 실수를 하든, 막나가든 상관없이 한쪽에선 사랑받고, 한쪽에선 안티를 양산하고 있다.

애플(이라고 쓰고 잡스라고 읽는다)이 아이폰을 둘러싸고 구축해놓은 앱 개발환경은 딱 이런 가진 자의 여유와 횡포 양 면을 생각나게 한다.

1. 하드웨어 플랫폼은 무조건 애플의 매킨토시여야만 한다. (불법논란이 있지만 PC에 OSX를 인스톨한 해킨토시도 가능하다.)

2.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서의 언어는 오브젝트-C 내지는 내추럴한 언어여야만 한다.(최근에 개정된 약관에 의해 플래시 혹은 자동으로 변환해주는 툴 형태의 어떤 도구를 써서 개발하는 것도  약관위반이다. 심지어는 마이너한 언어인 파이썬 등조차도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3. 아이폰 앱에 있어 어떤 형태의 새로운 코덱도 개발할 수 없고, 가상머신을 써서는 안된다. 앱 안에 특정한 정치성 이슈로서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등등 을 넣어서도 안된다.(물론 그것이 허용될 수 있는 범위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애플이 결정한다. 개발자는 그저 처분을 받아들여야 할 뿐 고소할 수도 없고 이의제기도 안된다. 정 불만이면 조용히 아이폰을 떠나는 것만 허용된다.)


솔직히 지금 아이폰이 대세고 여러 이점이 있어서 그렇지 이런 불평등하고 통제 위주의 강압정책을 만일 갓 등장한 어떤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내놓는다면 어떤 개발자가 기꺼이 참여할까. 그냥 애플이 힘이 있으니까 따를 뿐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그냥 변명이다. 대머리에 배나온 20살 연상의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미녀가 <그이를 정말 사랑해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말이 진심일 확률을 생각해보라.

어찌됐든 아이폰은 잘 팔릴 거고 애플은 잘 나갈 거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지난 예를 들어보자.

한때 전세계 콘솔 게임시장을 완전히 지배했던 닌텐도의 게임기는 개발조건이 불공평하기로 유명했다. 당시에는 어차피 슈퍼패미컴이 아니면 선택은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나 그 밖에 기억도 안 나는 마이너한 게임기밖에 없었다. 닌텐도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다.

1. 닌텐도가 독점적으로 파는 개발툴을 무조건 구입해야 했다. 다른 툴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사용할 수도 없었다.

2. 개발에 필요한 중요한 API 역시 닌텐도가 제공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차피 소스코드를 공개하거나 개방적 하드웨어도 아니니까 그 이상은 있지도 않다.(그래서 닌텐도에서 밀어주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는 같은 툴을 써도 수준차가 확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3. 완성된 게임은 닌텐도가 심의하며 상업성 여부도 심사해서 미리 게임팩의 제조갯수와 재고보유까지 전부 정해주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개발사에게는 어떤 항의나 권한도 없었다.(역시 마찬가지로 싫으면 짐싸서 안 할 권리는 보장됐다. 물론 갈 곳이 있을 리도 없다.)


닌텐도가 일방적으로 잘 나갈 때는 저런 조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타리쇼크>를 막아주는 아주 현명한 전략이라면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뒤늦게 플레이스테이션 1을 가지고 뛰어든 소니가 문제였다.


소니는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인 닌텐도64의 CD롬 제작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일방적 횡포로 휘둘리다가 내쳐지자, 아예 게임기를 개발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는 CD롬에 넣으려던 기술을 적용해 플레이 스테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발조건으로 개발사를 끌어모았다.

1.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은 범용 C 언어와 소니에서 제공하는 저가의 툴로 개발이 가능했다.

2. 개발에 필요한 여러 스펙과 API는 거의 전면적에 가깝게 공개했다.

3. 게임의 심의 등 간섭을 최소화하고 개발사와의 수평적 협력을 강조했다.


닌텐도의 개발 환경 약점을 파고든 이런 면에 개발사들은 처음에는 하나씩, 나중에는 일거에 소니로 몰려들었다. 결국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은 대번에 콘솔 게임기를 휩쓸었다.

주력시장을 빼앗긴 닌텐도는 그나마 슈퍼마리오의 인기에 힘입어 북미시장에서 닌텐도64가 선전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기대를 가졌던 아날로그 스틱도 개발사 자체가 없으니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휴대용 게임기 겜보이 어드밴스 와 포켓몬의 대히트가 아니었다면 닌텐도에 있어 철저히 실패한 시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이긴 소니는 이후로 이런 친절하고 개방적인 전략을 이어갔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이미 시장을 지배한 성공에 취한 소니는 이후 플스2와 플스3에서는 닌텐도의 악습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그러자 새로 뛰어든 MS의 엑스박스가 다시 개방된 개발환경과 협력을 강조하며 개발사를 유혹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닌텐도, 소니, MS로 나뉘어진 시장이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닌텐도와 애플은 분야만 약간 다를 뿐 일본과 미국의 쌍동이 같은 IT회사다. 기업체질 등은 물론 장단점까지 거의 비슷하게 따라간다. 지금의 아이폰4를 둘러싼 애플의 플래시 불가, 아도브의 변환 툴 불가 같은 폐쇄성 역시 과거와 현재의 닌텐도가 보여준 전략과 완전 일치한다.
 
여기서 요즘 안드로이드 진영의 개발환경을 잠시 보자.

1. 안드로이드는 PC뿐만 아니라 리눅스에서도 개발할 수 있으며 아도브의 변환툴과 플래시를 이용하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플랫폼에서 앱 개발이 가능하다.

2. 사용 언어와 툴의 어떤 제한도 없으며 특별히 구글에서 제공한 툴을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표준 규약은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다른 마켓에서 유통할 수 있으며 그게 불법도 아니다.

3. 전문가 용의 강력한 개발환경 뿐만 아니라 며칠전 구글은 S/W개발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을 겨냥한 구글 Invetor 서비스도 오픈 한다고 밝혔다. 이 툴은 비록 아주 간단한 앱만 개발 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 코딩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도 다룰 수 있다.

양쪽의 개발환경을 놓고 보면 예전 닌텐도 게임기에 대항하던 소니의 정책과도 비슷하다. 구글은 오히려 거기서 더 진보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 애플은 아이폰에 대해 매킨토시보다 더 폐쇄적이고 딱딱한 개발환경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환경 차이는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당장은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아이폰이 아직까지 잘 팔리고 있으며 통제된 환경의 유리한 점도 많고 무엇보다 앱시장이 돈을 벌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개발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개발자들은 별 불만 없이 아이폰용 앱을 만들 것이다. 그저 <신기술을 가장 빨리 적용하기 위해서>라는 애플의 번명 하나만을 믿고서 말이다. 뭐, 힘있는 남자는 나쁜 남자라도 용서가 되지 않는가?

최근 중국 여자 하나가 중국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벤츠에 타고 울 지언정, 자전거를 타고 행복하다고 미소짓고 싶지는 않다.>고. 마찬가지로 애플의 혹독한 개발환경 아래서 한푼이라도 더 벌고 싶지, 자유로운 개발환경에서 더 못벌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폰이 하나둘 늘어나 점유율이 높아지고 그곳에서도 슬슬 돈이 되는 어플이 나오면서 인터페이스가 표준화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저런 답답한 개발환경에서 자진해서 묶여 있을 개발자가 많을까? 심지어 소니는 확실치도 않은 상황에서도 개발환경을 무기로 많은 닌텐도의 유력 개발사를 빼낼 수도 있었다.

애플이 닌텐도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점은?


개발환경을 좀 더 개방하라. 그래서 개발자의 이익과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하라.

규제 위주의 개발환경은 언젠가 애플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다. 똑같이 닮은 회사인 닌텐도가 이미 겪었던 실패를 교훈으로 삼길 바란다.

누군가 반론해서 말할 지 모른다. 애플은 게임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고. 그렇다. 하지만 그에 맞서 의미있는 한 마디를 던져본다.

스티브 잡스는 한때 게임기 <아타리> 사의 직원이었다.

닌텐도의 어제는 애플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역사에서 지혜을 얻지 못하는 자는 절대로 현명한 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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