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혹시 눈치챘는지 모르겠다.

나는 포스팅을 많이 하지 못한다. 하루에 열심히 써봐야 기껏 한 개가 고작이다. 단순한 정보성 글이나 사적인 잡담이라면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포스팅의 특성상 한 개를 쓰고 나면 머리가 텅 빈다. 한 마디로 진이 빠지는 느낌이라서 사실은 하루 한 개의 포스팅을 유지하는 것도 힘이 든다. 뭐 내가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어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일단은 무리해서라도 글을 써야겠다. 무엇보다 어제부터 터진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여러 사건들이 나를 놔두지 않는다. 정보들은 마구 흘러들어오는데 그걸 단편적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모두 종합하고 해석해서 전해주는 사람이 블로거 가운데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하 사진출처: 인가젯)

<안테나게이트>에 대한 어제 스티브 잡스의 해명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뭐 그 내용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어차피 애플과 잡스의 속성과 예상되는 손익을 계산해보면 대충 답은 나와있었다. 잡스가 거기에 최종 결제도장을 눌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7월 발매국에 한국이 제외된 것이 더욱 놀라운 사건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질 정도다.


애플은 아이폰4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얻은 것은?

안테나게이트의 해명과 조치를 통해 애플은 막대한 양의 리콜을 피하고 9월30일까지 구매자 전원과 기존 구입자 전부에 대한 범퍼 내지 케이스 제공을 발표했다. 그 결과로 엄청난 리콜 예상 비용을 절약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1억 8천만달러 남짓의 범퍼비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앞으로 상황은 유동적이지만 대체로 이 이상의 리콜 요구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범퍼의 생산원가는 아이폰 판매이익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애플은 수익을 얻었다(보전했다).


그러면 잃은 것은? 수익 외에 모든 것을 잃었다.

첫째로 애플은 이제까지 우호적이었던 소비자 잡지의 신뢰를 잃었다. 우선 소비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컨슈머 리포트를 잃어버렸다. ( 출처 )

컨슈머 리포츠는 애플의 무료 케이스들 제공이 좋은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애플은 이것이 장기적 해결이 아니고, 오직 9월 30일까지만 이 제공이 보장되며, 서드 파티 업체들로부터 케이스들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는 애플로부터 장기적 수정을 기다리고 있다. 일들이 현재처럼 유지된다면, iPhone 4는 계속 우리의 추천 모델들 중 하나가 되지 못한다.

두번째로 전세계 IT계에서 그 권위가 절대적인 PC월드의 신뢰를 잃었다. ( 출처 )

PCWorld는 애플의 프레스 컨퍼런스 이후 Top 10 스마트폰 리스트에서 아이폰4를 제외시켰다.
그들은 애플이 무료 범퍼를 제공하는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여전히 하드웨어 결함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근접센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확실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잡스는 그 문제에 대해 '시도'할 거라고만 이야기했지, 어떻게 될 거라고 장담하지 않았다. 따라서 애플이 이런 이슈들을 완전하게 해결하지 않는 한, 아이폰4를 고객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애플은 설계미스로 인한 결함을 변명하기 위해 다른 휴대폰 회사 제품을 같이 끌어들였다. 모든 폰은 완벽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나름 업계의 동업자 의식에 호소했다. 하지만 애플이 언제부터 휴대폰 회사였는가? 애플이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 있기는 했을까?


반대로 우리는 애플이 그런 동업자 정신으로 뭉치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 기존 업체를 비웃으며 혁신을 실천했기에 열광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와서 이건 다른 폰과 다 같은 문제니까 봐 달라니? 그것도 다른 업체에서 요즘 전혀 채택하지 않는 <혁신적인> 외장 안테나를 들고 나와서 의기양양하게 자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어쩌면 잡스는 다른 휴대폰 업체들이 나름 동감해주며 <그건 맞는 말이야. 우리 회사 휴대폰도 그렇게 잡으면 문제가 있으니까 너무 아이폰4를 비난하지 마>란 따뜻한 한 마디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애플이나 잡스 답지도 않거니와 처음부터 번지수가 틀렸다. 이때까지 한번도 동업자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이 조롱거리만 되어온 다른 업체들은 잡스가 내민 구원요청(?)을 싸늘히 거절했다.


잡스가 데스그립을 시범적으로 보여 동질감을 유도한 블랙베리의 제조사 RIM의공동 CEO인 Mike Lazaridis 와 Jim Balsillie가 성명을 냈다. ( 출처 )

애플이 스스로의 자가당착에 RIM을 끌어 들이려는 모습은 용납할 수 없다. 애플의 RIM에 대한 주장은 안테나 디자인과 현재 애플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고의적으로 비틀려는 시도이다.
 
RIM은 20년이 넘도록 무선 데이타를 다루는 기기 부문에서 효과적이면서 뛰어난 성능의 안테나를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세계 선두 주자 이다. 이 20년의 기간동안 RIM은 애플이 아이폰4에서 사용한 디자인을 피하려 해오면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특히나 전파 세기가 약한 지역에서 통화를 중단시키는 위험들을 줄여 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RIM의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구입한 사용자들은 적절한 통화를 유지하기 위해 케이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RIM이나 다른 기기들을 애플이 처한 특정 상황에 끌어 들일 것이 아니라,  애플이 확실히 특정 디자인을 채택해 만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수신율 문제로 기피했던 외장안테나를 채택해서 잘난척 발표해놓고는 문제가 되니 다 같다는 식으로 면피하지 말라는 따끔한 경고다.


심지어 시제품에 있지도 않은 노키아도 성명을 냈다. ( 출처 )

노키아는 안테나 성능과 디자인이 상충하면 안테나 성능에 우선순위를 둔다.
안테나 디자인은 복잡한 주제이고 수십년 간 노키아의 수백 종의 폰 모델들에 있어서 핵심적인 능력이었다. 노키아는 내장 안테나들의 개척자였고, 1988년에 출시된 노키아 8810은 이 기능을 제공하는 최초의 상용 폰이었다
노키아는 통화들과 뮤직 재생, 웹 브라우징 등에 있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폰들을 잡는가를 포함해 인간 행위를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만일 안테나 성능과 외적 디자인이 상충한다면 우리는 안테나 성능에 우선순위를 둔다.


간략히 말해 <우리는 투박해도 전화 잘 걸리는 폰을 만든다!> 는 충고 되시겠다.

세번째로 이처럼 경쟁업체지만 어떻게 보면 동종업계의 동업자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회사들을 전부 화나게 만들어버렸다. 나 하나 살자고 업계 전부를 공범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구글의 협력사인 HTC, 지금 아이패드, 아이폰 안에 들어가는 CPU, 메모리와 플래시 등 납품하는 삼성의 옴니아도 같이 끌어들였으니 이 회사들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만일 도요타가 악셀결함을 가지고 다른 자동차도 다 가지고 있는 결함이라고 변명했다면 어떤 파문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특정 부위를 꽉 움켜쥐면 수신률이 떨어지는 건 어느정도 공통현상이라고 해도 외장안테나를 썼기에 특정 점 하나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도 수신률에 문제가 생기는 폰은 아이폰4가 유일하다. 이 문제에 대한 질문에 잡스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슬쩍 넘어가버렸다.

미국 기자 가운데 한 명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안테나게이트는 결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에 있다면서 지난 시간동안 아이폰4의 안테나 결함을 업체들이 지나치게 떠들어댄 경향을 먼저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기자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잡스의 언론 다루기에 휘둘려 연일 냉정하지 못한 애플 중심 기사만 쏟아내며 휘둘린 저널리즘이 이제와서 다시 결함에 달려드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냉정한 저널리즘의 본분을 망각했다.

결국 미국 언론들이 이제 더는 잡스와 애플의 혁신에만 열광해서 눈이 멀지 말고, 처음부터 장단점을 다 보자는 뜻이다. 이것은 지금 봇물처럼 쏟아지는 애플과 잡스를 기반으로 한 경영학이나 자기개발서에게도 분명한 경고 메시지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즉 네번째로 기자와 언론의 호의도 잃어버렸다. 그 밖에도 몇 개 더 있다.

결국 애플은 아이폰4로 수익말고 모든 걸 잃었다.

아마도 대략 이것으로 사태는 수습국면에 들어갈 것 같다. 얼마동안은 언론과 사람들의 이슈가 되겠지만 곧 잊혀질 것이다. 어차피 지금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있는 아이폰4의 매출과 이익에도 그다지 지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회사방침의 일관성을 잃고, 소비자잡지의 신뢰를 잃고, 동종업계간 최소한의 동업자 의식도 잃었다. 초기에 문제원인을 AT&T의 낮은 수신률 탓으로 몰아간 탓에 이통사와의 신뢰관계도 잃었다.


게다가 마지막 Q&A 시간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한국회사였으면 좋겠냐?>는 말을 했다. 한번도 하지 않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발언은 그러나 여러 정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말 기분나쁜 발언이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 발언으로 애플은 언제나 제품만으로 승부하며 당당하다는 이미지를 잃었으며 스티브 잡스는 개인적으로 일정부분 한국민의 호감과 공평한 이미지도 잃게 될 듯 싶다.

애플이 그동안 공을 들였던 비즈니스 시장의 신뢰는 영영 멀어졌다. 아마 이 사건을 계기로 잡스의 애플을 무책임한 회사로 생각한 각  고객 회사는 아이폰과 매킨토시의 자사 도입에 대해 다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 케이스를 씌워야만 안심이 되는 휴대폰을 비즈니스에 대량 도입할 수 있을까? 이런 회사에서 만든 서버를 신뢰할 수 있을까?

결국 이 모든 것이 쌓여서 최종 소비자의 신뢰도 잃게 될 위기에 있다. 아직은 거기까지 다다르지 않았지만 소비자의 신뢰는 정말 최후의 방벽이다. 애플과 잡스가 체감할 정도까지 소비자 신뢰가 떨어지게 되면 그때는 더 수습할 방법도 없다.
그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애플은 한국으로 회사를 옮기기 바란다.(물론 이건 뼈 있는 농담이다.)


애플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 애플은 리콜을 막고, 소송을 회피하며, 주가 하락을 방지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돈을 지켜냈지만 보이지 않는 중요한 나머지를 다 잃었다. 나중에 어떻게 이것을 만회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 같이 생각을 좀 깊이 하는 사람에게 애플은 당분간 경계의 대상으로 남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주 어리석었던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아주 현명한 결정이며 멋진 프레젠테이션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견해차는 인정하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스티브 잡스의 한국관련 발언의 진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기 위해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겠다. 이 발언도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분석하면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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