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컨슈머 리포트의 보도가 치명타였다. 절대로 결함을 인정할 것 같지 않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직접 나섰다.

갑자기 애플이 7월 16일(서부시간으로 10시)에 iPhone 4 프레스 컨퍼런스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이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iPhone 4의 안테나 문제에 대해 자사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오늘,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 정도에 이루어진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신제품 발표때 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최종 보스> 스티브  잡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키노트를 가지고 안테나 문제를 해명하기 시작했다.

본래 이런 자리에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나오거나 죄송한 태도를 해야 한다. 도요타의 리콜 때나 다른 회사의 결함 인정때는 그랬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그냥 신제품 발표때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아이폰 안테나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안테나 게이트>라고 지칭한 것을 그대로 직접 키노트에 삽입하기도 했다.


( 이하 사진출처: 인가젯)

본래 이런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게이트>라는 말을 붙이는 건 닉슨의 <워터 게이트> 사건에서 시작됐다. 야당의 선거사무실을 조직적으로 도청하던 이 사건은 결국 닉슨의 사과와 임기 중 사임이란 전대미문의 결말을 낳았다. 때문에 미국언론에서는 이후로 클린턴 성관계를 다룬 <지퍼 게이트>를 포함해 각종 권력형 문제를 <게이트>라 지칭했다. 따라서 이건 상당히 안좋은 표현이다.

그럼에도 잡스는 자사 제품 문제조차도 물의를 일으켰다는 의미의 단어로 기꺼이 <안테나 게이트>란 단어를 인정했다. 멋지다! 과연 애플의 최종보스 답다.

인가젯에서 중계한 잡스의 키노트의 핵심은 이렇다. (출처: 인가젯 )

1) iPhone 4가 300만 대가 팔렸다. iPhone 4는 시장에 나온 스마트폰들 중 가장 좋은 스마트폰이다. 그러나 iPhone 4가 채용한 안테나 문제 때문에 22일 동안 '안테나 게이트' 문제를 만났다. 검토한 결과 이는 iPhone만의 문제는 아니고, 노키아, 모토롤러, 다른 폰들에게도 있는 문제였다.

잡스는 직접 블랙베리 볼드 9700을 정상적으로 잡을 때 바들이 5개에서 1로 줄어드는 것을 시연했다. 드로이드 에리스와 삼성 옴니아 II도 바들이 4개에서 0로 4개에서 1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완전한 폰은 없다고 말했다.

2) 애플은 1억 달러를 들여 최신식 17개 무향실 테스트 설비(휴대폰 전파테스트용)를 만들었고, 18명의 PhD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다. 스마트폰들은 약점들이 있는데, 현재 iPhone 4 사용자들의 0.55%만이 안테나 혹은 수신 문제로가 있다. 그리고 통화 중 끊어지는 것도 비록 1% 미만이지만 이는 애플에게 큰 숫자다.(그 작은 사용자의 불만도 소중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3) 따라서 모든 iPhone 4 구매자들에게 무료 범퍼를 제공하고, 만일 범퍼를 이미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환불을 해준다. 이는 9월 30일까지 iPhone 4를 구입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4) 이 밖에 접근 센서 문제는 다음 업데이트에서 수정될 것이고, 화이트 iPhone 4는 7월 말에 출시될 것이다.

5) 스티브 잡스가 발표한 17개국 추가 외국 출시 명단에서 한국은 빠졌다.



자, 이걸로 이제 다 해결된 걸까. 결국 리콜같은 극한 수단은 없었으며 스티브 잡스는 안테나 설계결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이 프레스 컨퍼런스는 어째서 한 것일까? 단지 잠자코 있으면 컨슈머 리포트의 보도에 고객들이 흔들릴 듯 싶으니 기선 제압을 한 것인가.


물론 애플은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 있다. 어차피 아이폰4는 지금도 너무 인기가 많아 물량이 없어 못파는 지경이다. 추가 출시국에 한국이 취소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물량이 없어서 일 것이다. 결국 잡스의 키노트는 단 세마디로 요약된다.

그거 어느 휴대폰에나 있는 문제야. 결함은 없지만 정 불만이면 범퍼공짜로 끼워줄께. 그래도 맘에 안들면 환불해!
 

그래. 뭐 내가 요즘 자주 가는 홍대의 한  왕만두집은 너무 장사가 잘 되서 주인이 영업시간도 제한하고, 정기휴일은 칼같이 쉰다. 휴일 아니어도 재료 떨어졌다고 수시로 또 문닫는다. 그래도 어차피 올 손님은 다 온다. 그러니 잡스의 저 배짱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정말로 아이폰4의 안테나의 설계상 결함은 없는 것인가? 잡스가 그냥 나와서 쇼맨쉽으로 시연해 보인 걸로 의혹이 끝날 게 아니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 쓴 컨슈머 리포트의 관련 부분을 다시 인용한다.


우리는 뉴욕의 각각 다른 매장에서 구입한 3대의 아이폰4 를 통제된 환경인 CU's radio frequency (RF) isolation chamber 에서 실험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실험실에서는 외부의 전파신호는 완전히 차단되며, 가상 통신사의 전파신호를 발생시켜 실험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이폰3GS와 팜프리를 포함한 다른 AT&T의 핸드폰들을 같이 실험하였으며, 그들 중 어떤것도 아이폰4와 같은 신호소실 현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컨슈머 리포트 역시 실험을 했다. 소비자들이 그만큼 믿는 잡지가 안 한 실험을 했다고 거짓말을 할 리도 없다. 그에 대해 잡스는 애플도 17개의 설비실에서 충분한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 이제는 진실과 거짓이 밝혀져야 한다. 컨슈머 리포트든, 애플이든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이다. 하다못해 어느 한쪽이 제대로 된 실험환경을 갖추지 않았거나 고려할 요소를 빼먹고 테스트 한 것이다.



아이폰4의 안테나 게이트, 진실은 무엇인가?

잡스는 어느 휴대폰에나 있는 문제라고 했고, 컨슈머 리포트는 아이폰4 에서만 크게 드러난 문제라고 했다. 이 두 말의 차이는 매우 명확하다. 애당초 어디에나 있는 문제라면 안테나 문제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컨슈머 리포트는 그야말로 <생트집>을 잡은 셈이다.

만일 컨슈머 리포트가 틀렸다면 그 잡지의 신뢰성이 크게 손상될 일이다. 아이폰4 정도 되는 중요한 제품에 대고 허술한 테스트를 해놓고는 곧바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미국 전체, 아니 세계 전체에 파문을 일으켰다. 컨슈머 리포트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자사의 잘못이면 사과하고 아니면 다시 잡스의 주장을 반박해야 한다.

만일 애플이나 잡스가 틀렸다면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잡스가 실은 마치 인의 장벽에 둘러쳐진 옛날 황제나 폭군처럼 제대로 된 보고를 못받고, 듣기좋은 아첨만 듣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직의 장악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아니면 잡스가 결함을 알지만 리콜이 불러올 파문 때문에 변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몇몇 미국 언론에서는 이미 애플의 수석 안테나 기술자가 잡스에게 안테나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었다고 보도했다. 아예 잡스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심각하지 않다고 다시 보고 받았거나 스스로 은폐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잡스는 진실만을 말하는 성직자도 아니며, 양심바른 기술자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왜곡장>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합리화에 능하다.


나도 부디 아이폰4가 치명적 설계결함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이폰4에 범퍼를 결국 무상제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정말로 설계결함 같은 건 일체 없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하든 범퍼를 무상으로 줄 필요는 없다.

애플이나 잡스가 불합리한 요구를 단지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굽히는 성격이 아니란 건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미 안테나 결함을 체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출처: 테크크런치)

결국 잡스는 다소 불안한 상황에서도 완전히 결함을 인정하고 리콜하기 보다는 범퍼 제공으로 <설령 결함이 있더라도 여기까지만 하자>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해명은 이제 끝났다. 공은 이제 소비자와, 특히 결함 문제를 치명적으로 제기한 컨슈머 리포트로 넘어왔다. 컨슈머 리포트에서 과연 <우리가 틀렸고, 잡스의 말이 옳았다. 어느 폰에나 있는 결함이다> 라고 할 지, 아니면 그냥 침묵할지, <무슨 소리냐! 우리 실험은 옳았다. 잡스가 사실을 숨기려 한다!> 고 반발할 지 지켜봐야겠다.

그 어떤 쪽이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이게 무슨 국가 간의 일급비밀을 놓고 벌이는 스파이전도 아니고, 진실은 항상 저너머에 있다는 영화 엑스파일도 아니다. 누군가는 착각을 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빨리 이 <안테나 게이트>의 진실이 밝혀져서 남은 의혹이 해소되길 바란다.


P.S 음, 사실 일부 사람에게는 이런 안테나 <결함 따위>보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에서 결국 7월 발매 국에서 빠져버린 <한국>이 더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량부족일지 아니면 KT에서 SK로 바뀌려는 조짐일지, 애플의 해명대로 한국 정부 허가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의 진실도 한시바삐 밝혀졌으면 좋겠다.

<애플이 한국기업이었으면 좋겠냐?>고 드디어 스티브 잡스가 한번도 안하던 애국심 마케팅을 입에 담았다. 좀 씁쓸하다. 뭐 미국기업이니 미국인 들이 더 열광하는 거 이미 공공연한 사실 아닌가. 마침 한국발매를 빼먹고는 바로 한국을 드는 비유와 더불어 잡스가 <일본기업이었으면 좋겠냐?> 하지 않았다는 데서 별로 한국 안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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