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MD]

 


일반적으로 IT제품에서 소비자가 가장 기대하는 건 성능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성능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있기 때문에 지불한 돈 만큼 성능을 내는 제품을 얻게 된다. 이에 비해 공급자인 업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구도로 대표되는 신뢰성이다. 성능은 약간 덜 나온다고 해도 판매 후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 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지면 판매 후 AS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자칫하면 소송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대 방향에 있는 입장이 첨예하게 마주치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데스크탑PC의 CPU를 둘러싼 오버클럭 문제가 있다. 원래 출시된 CPU의 성능은 전압에 의해 공급되는 주파수(클럭)에 일정 배수를 곱한 최종 클럭 숫자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제조사는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테스트를 한 뒤에 해당 CPU가 낼 수 있는 최대 클럭 성능보다 약간 아래로 고정 세팅해서 출시한다. 적당히 마진을 줘서 순간적으로 약간 불안한 전압이나 클럭이 온다고 해도 고장나거나 실행이 멈추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메인보드 제조사 등에서 이런 클럭과 배수를 임의로 조절하고 CPU의 배수 조절락을 해제하는 펌웨어 등을 공급하면서 고성능을 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냉각성능을 넘는 과열과 전압 불균형으로 이런 오버클럭 상태를 만든 제품은 안정성이 매우 떨어졌다. CPU 제조사 역시 매우 부정적인 입장으로 AS를 거부하면서 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인텔과 AMD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느새 오버클럭은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성능 약점을 강화하는 선전요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은근히 자사 CPU는 오버클럭이 잘되는 제품이라고 자랑하거나, 특정 메인보드를 쓰면 안정적으로 오버클럭 상태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이제는 오버클럭도 상당히 너그럽게 AS를 받을 수 있는 묵시적 상태까지 왔다.

그런데 이런 오버클럭 부분이 다시 문제시되고 있다. AMD 라이젠 7000X3D 시리즈의 번아웃을 둘러싼 이슈가 그렇게 전개되는 중이다. 해당 CPU의 번아웃 문제는 처음에 CPU에 과전압이 흘러갔고 그로 인한 손상이라 판단됐다. 사용자가 직접 전압을 올렸거나 자동 오버클럭 기능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런데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던 레딧 사용자는 오버클럭을 하지 않았고 AMD 오버클럭용 확장 프로파일(EXPO)을 사용한게 전부라고 주장 했다. 또한 ASUS가 테크유투버 Der8auer에 보낸 공식 입장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ASUS는 CPU 전압(Vcore)의 수동 제어를 막았다면서 EXPO 프로파일과 SoC 전압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AMD와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AMD는 아난드텍에 보낸 공식 입장에서 바이오스의 전압 설정이 제품 사양을 벗어났을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며 과전압이 원인인 것은 분명하니 이와 관련된 모든 설정은 기본값만 사용하고 EXPO 프로파일도 당분간 사용하지 않기를 권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이슈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원인으로 밝혀진 AMD EXPO 기술과 SoC 전압은 새로운 AGESA 코드를 적용해서 해결되는 듯 하지만 결국 오버클록으로 인한 손해는 사용자 책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AMD제공하는 EXPO 뿐만 아니라 인텔의 XMP 역시 CPU와 메인보드 제조사가 보증하는 범위를 벗어난 오버클럭에 해당 되니 그로 인한 손해도 다 사용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출처: AMD]


사실 오버클럭 자체를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업체가 충분히 관용을 베푼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배수락과 클럭 제한을 건다는 건 거기까지만 보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라이젠 7000X3D 시리즈 같은 심각한 손상이나 파손 사례가 거의 없어 이런 규정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관련 기능 사용 시 경고 문구도 삽입하겠다는 발표도 나왔다. 오버클럭 자체를 선택 가능하게 만들지만 완전히 소비자 책임으로 놓겠다는 의미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번 사례 같이 사용자의 의도된 조작이 아닌 자동 셋팅에 의한 오버클럭의 경우다. 경고메시지와 모든 제한을 무시하고 사용자가 수동으로 하나하나 락을 풀고 과전압과 범위 밖 고클럭을 인가하는 데 대해 AS 불가를 선언하는 건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CPU 제조사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메인보드가 자동으로 수치를 찾아내 오버클럭을 진행하는 데 막상 거기서 발생한 고장에 대한 AS 책임은 전혀 지지 않겠다는 건 상당히 어색하게 들린다.

오버클럭은 자체가 AS 비보장의 영역이었던 건 맞다. 그런데 이걸 이용해서 CPU업체는 숨겨진 성능이 더 있는 것처럼 광고했고, 메인보드 제조사는 고가 메인보드에 적용하는 프리미엄 기능으로 포장해서 팔았다. 그런 상태에서 막상 문제가 터지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는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만일 지금이라도 오버클럭에 대한 AS 불가정책을 철저히 시행하고 싶다면 CPU제조사와 메인보드 업체는 이 사태에 이르게 된 대한 그동안의 관련 마케팅에 대한 반성을 내놓아야 한다. 메인보드 제조사는 성능 면에서 앞으로 레퍼런스급 제품만 생산하겠다는 약속을 해야한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은 없다. 

앞으로도 관련 마케팅을 하고, 고가 제품에 기능을 넣어 비싸게 팔겠지만 경고문만 삽입할 뿐 앞으로도 고장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태도는 심히 유감스럽다.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공정한 대응이다. 이 사태가 간단히 오버클럭 제품에 대한 AS 불가로 흘러가면서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