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생업에 바쁜 일반 소비자들은 긴 흐름으로 뉴스를 종합해서 분석하지 못한다. 때문에 피상적으로 어떤 사건이 터지고 보도가 나왔을 때 그것만을 놓고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소비자가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분야에서도 실제로 주도권은 해당업체와 규제기관 두 곳이 나눠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이동통신이 바로 대표적인 분야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에스케이텔레콤, 케이티, 엘지유플러스가 5G 서비스의 속도를 거짓과장하거나 기만적으로 광고한 행위, 자사의 5G 서비스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부당하게 비교광고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공표할 것과 함께 과징금 총 336억 원을 부과했다.

이유는 이들 이동통신 3사가 실제 사용환경에서는 구현될 수 없는 5G 기술표준상 목표속도인 20Gbps를 실제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할당받은 주파수 대역 및 엄격한 전제조건 하에서 계산되는 최대지원속도를 소비자가 실제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했으며,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신의 5G 서비스 속도가 경쟁사들보다 빠르다고 광고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목표속도인 20Gbps라고 광고했는데 실제 속도는  20분의 1도 안 나오는 0.8Gbps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비교적 쾌적한 LTE 환경에서 나오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렇게 실제 사용환경과 상당히 다른 상황을 전제할 때만 도출될 수 있는 결과라는 사실을 은폐·누락하였다는 점에서 기만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즉 실수가 아니라 완전히 고의적으로 소비자를 속였다는 해석이다.

이 조치 하나만 놓고 보면 소비자는 공정위가 소비자를 위해서 냉정하게 판단해서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나아가서 표시광고 사건 중 역대 두 번째로 큰 과징금을 부과하여 엄중히 제재했다는 공정위의 발표를 듣고는 앞으로 이런 행위가 재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3G에서 4G로, 4G에서 5G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이동통신사와 정부 기관의 규제당국이 보인 행동을 종합해서 보면 전망은 상당히 비관적이다. 특히 속도를 문제삼은 이번 과징금에서 근본적인 개선에 대한 압박과 규제가 없다는 부분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많은 사안에서 이통사와 규제당국이 보여주었던 똑같은 행동이 반복된 예에 불과하다.

이동통신사와 규제당국은 대립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소비자를 놓고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만 손해 보면 된다는 의미다.

기존 이동통신망이 많이 깔리고 서서히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통신요금이 낮아진다. 그러면 이통사는 수익구조에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며, 다음 세대 기술을 이동통신 강국 한국의 지위를 위해 빨리 보급해야한다고 재촉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면서 더 높은 요금을 받기 위해서다. 

새 기술은 당연히 새로운 첨단 중계기를 대량으로 구입해 설치해야 하므로 정부부처를 설득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빠른 속도를 부풀려 광고해서 설득한다. 때문에 실험실에서나 가능할 최고속도, 중계기가 촘촘하게 깔린 상태에서 사용자 단말기는 몇 대 없는 최적조건에서 나오는 속도가 제시된다. 심지어는 지금 포기한 28GHz 5G 서비스처럼 비용문제 때문에 실제 서비스를 하지 못할 기술까지 섞어서 광고한다.

이렇게 무리해서 새로운 기술로 넘어가면 우선 요금은 빨리 올리지만, 당연하게도 중계기 보급은 더딜 수밖에 없다. 속도는 나오지 않고 접속은 끊기면서 요금은 많이 내야 한다. 규제당국은 이런 사실에 경고하는 척 하지만 정작 상황 개선을 위한 투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그냥 정부에 내는 벌금인 과징금을 거둘 뿐이다.

이 과징금이 많아 보여도 올린 소비자 요금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순수익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다. 따라서 이통사는 투자를 하는 대신 과징금을 낸다. 규제당국은 소비자를 위했다고 생색을 내고, 이통사는 과징금을 냈으니 의무를 다했다는 식으로 공생관계가 이뤄진다. 여전히 속도는 향상되지 않고 손해보는 건 소비자다.

다시 천천히 요금이 낮아지며 수익성이 악화되면 이통사는 다음 세대 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외친다. 벌써부터 6G기술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과징금 이후에도 5G 속도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몇 년 지나면 다시 이통사는 6G를 도입해야 한다고 소리높여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통신 3사가 부당광고를 이용한 과열경쟁에서 벗어나, 품질에 기반한 공정경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잘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규제당국의 성명은 단통법을 통과시킬 때부터 시작해 늘 있어왔다. 그렇지만 상황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정위와 규제당국이 진심으로 소비자를 위해 속도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과징금은 전혀 답이 아니다. 차라리 그 몫을 포함해 훨씬 많은 금액을 이통사가 네트워크 설비 투자비로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편이 낫다. 5G 중계기가 촘촘하게 심어지면 그만큼 유의미하게 속도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과징금보다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집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