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애플 홈페이지]


ICT업계에서는 요즘을 흔히 '플랫폼' 시대라고 일컫는다. 
예전 같으면 소프트웨어, 음악, 영상, 게임 같은 콘텐츠가 각 회사나 분야별로 흩어져서 각자 운영됐다. 그렇지만 이제는 특정한 회사가 만들어 놓은 판(플랫폼)에서 통합되어 편리한 구매와 이용, 보안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플랫폼 덕분에 일일이 구입경로를 찾고 결제수단을 만들고 보안을 신경쓰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 이렇게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조가 플랫폼을 성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 경제는 그냥 완성되는 게 아니다. 사용자가 플랫폼을 신뢰할 때 성립된다. 내가 결제한 돈을 사업자가 중간에 가로채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을 지 모른다거나, 내가 실제로 결제하지도 않았는데 어딘가에서 허위로 결제가 이뤄지고 내 돈이 인출된다는 신뢰 문제가 발생한다면 플랫폼 자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최근 애플 아이폰 유저들이 애플 계정에 등록한 신용카드를 도용당해 부당결제 당한 피해가 발생했다. 국내 사용자가 결제하지 않았는데 해외에서 수십만원의 결제가 발생한 것이다. 아이폰에 개인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더욱 편한 결제를 할 수 있는데 사용자는 사용 안 할 때는 등록한 정보를 삭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보가 해킹당해 누군가 이들의 카드정보를 자신의 애플 계정에 등록한 뒤 사용한 것이다.  간편한 결제 시스템을 악용해 부당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모든 범죄가 한꺼번에 사라질 수 없기에 이런 범죄 자체는 늘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애플 측의 대응이다. 사용자가 이렇게 애플 플랫폼에 카드정보를 등록하고 사용하는 이유는 편의성도 있지만 글로벌 회사인 애플의 보안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누가 무엇을 사서 어디서 결제됐는지 알려달라고 애플에 문의했지만 애플은 정책상 아무것도 알려줄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 또한 정상거래라서 결제 취소도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카드사를 통해 구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카드사에서도 애플 플랫폼의 문제로 떠넘길 경우, 그대로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플랫폼과 사용자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인데도 애플은 특별히 피해자의 처지보다는 기계적으로 자사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범죄사건으로 정식 접수되어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애플도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애플은 각국의 법률을 준수한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해외 계정에서 결제한 것이라면 외국의 수사협조까지 받아야 하는 등 사건 자체 해결에는 난관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개별 사건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애플이 사용자에게 대응하는 방식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반복되는 애플 제품 결함논란에서 애플은 초기에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친절한 대응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용자의 부주의로 돌리거나 자기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오다가 집단소송이나 사법수사에 들어가면 마지못해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는 식이다. 

이번 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사례가 발생하면 자사 시스템 전체를 돌아보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플랫폼 사업자의 자세다. 그럼에도 그저 개별 사용자의 일에 일일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식으로 딱딱하게 나올 뿐이다. 애플은 기본적으로 북미 이외의 사용자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아직도 애플은 그저 하드웨어 판매자에 머물 생각일까? 그렇다면 이대로 해도 될 것이다. 아이폰이나 맥북 등은 여전히 독점판매자니까 그래도 살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는 다르다. 경쟁자는 글로벌에서는 아마존, 구글을 비롯해 국내에도 삼성 등 많이 있다. 사용자 신뢰를 강화하지 않은 애플이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