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상당히 입체적이다. 옛날 이야기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평면적인 캐릭터로 채워져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악행을 일삼는 악당이,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읽는 놀부나 구두쇠 스크루지 같은 인물은 그저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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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의 역외탈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구글이 유럽에서 저지른 교묘한 탈세가 발각된 가운데 애플은 미국 의회의 조사를 받았다. 팀쿡은 의회에서 증언까지 해야했다. 애플의 경우는 불법의 영역에 속하는 탈세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합법에 속하는 절세라는 게 아직까지의 조사결과이다. (출처)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애플의 '역외 탈세' 의혹을 뒷받침하는 미국 의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애플의 세금 회피 수법이 공개됨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탈세를 막으려는 국제 공조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원 상설조사위원회는 애플이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셸컴퍼니(이름뿐인 회사)'를 세워 이익을 옮기는 따위의 수법으로 지난 4년 동안 440억달러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20일 공개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의회 증언을 하루 앞두고 공개된 이 보고서는 애플에 대한 의회의 강경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애플의 세금 회피 수법의 핵심은 아일랜드에 설립한 애플 오퍼레이션스 인터내셔널(AOI)과 그 자회사다. 이 회사는 직원이 한 명도 없는 빈껍데기 회사인데, 애플은 이 회사와 자회사인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ASI)에 세계 시장에서 거둔 이익을 옮겼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12%)이 미국(35%)의 3분의 1 수준인 점을 악용한 것이다. 더구나 애플은 최근 아일랜드에 유럽 본부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2% 미만의 세율을 적용받기로 아일랜드 당국과 합의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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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따르면 애플 오퍼레이션 인터내셔널은 2009~2011년 동안 애플이 해외 시장에서 거둔 소득의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미국은 물론 아일랜드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특히 2009~2012년 동안 3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 기간을 포함해 지난 5년간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또 애플은 2009~2012년 동안 740억달러의 이익을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로 이전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서는 "애플이 세금을 줄이려고 불법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미국 세법의 결함을 이용한 '합법적' 세금 회피"라고 지적했다. 애플도 "세금을 낮추려고 비열한 술책을 쓰지 않았다"고 항변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단순하게 이 뉴스를 보고 애플의 세금에 대해서 평가하기 전에 우선 한번 생각해보자. 세금은 왜 내야할까? 세금을 적게 낸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현대국가에 있어서 세금은 사회적인 계약이자 약속이다. 회사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있어야 하듯, 국가란 조직도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과 공공시설을 짓는 건설, 생활수준을 높이는 복지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국가는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국민이 세금에 동의하고 그것을 낸다는 전제에서 이뤄진다.


세금은 낸만큼 혜택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가란 조직에 돈을 모았다가 그것을 필요에 의해 분배한다. 이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 과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자가 돈을 몇십배 많이 낸다고 해서 몇십배나 바로 혜택을 받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세금을 적게 냈다고 해서 그만큼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돈 많은 사람은 어떻게든 세금을 줄이려는 유혹을 받는다. 줄여서 내도 혜택은 동일한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국가 전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면서 재정적자가 심해진다. 복지 등의 혜택을 줄여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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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의 뉴스가 더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한 기부에 관한 이야기다. 기부에 인색한 것으로 알려진 잡스가 실은 익명으로 부인과 함께 기부를 해왔다는 것이다.(출처)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가장 큰 비판들 중 하나는 그가 자선사업에 인색했다는 것이었다. 픽사로 인해 억만장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 게이츠 같은 자선사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 잡스는 뉴욕 타임즈와의 이례적인 인터뷰에서 그의 가족이 지난 20년 동안 익명으로 다양한 목적으로 비밀리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로렌은 기부는 전부 익명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로렌은 "우리는 그런 일들에 우리의 이름들을 덧붙이는 것을 싫어 했다"고 말했다. 

 


애플을 통해 알아보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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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시스템이 잘된 것으로 유명한 북구유럽은 기부를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핀란드 같은 곳은 매우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국민들이 내고 있다. 소득 자체를 국가가 그렇게 세금 형식으로 가져가서 국민들에게 그만큼 좋은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들이 국가를 신뢰하고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에 그런 시스템이 가능하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국가가 가져가는 세금이 작은 편이다. 대신에 국가의 복지 혜택도 선진국치고는 많지 않다. 많은 경우 미국 복지의 상당수는 개인의 기부에 의존하는 재단에서 이뤄진다. 강제로 돈을 걷지 않고 자발적으로 부자들이 자기가 쓰고 싶은 곳에 기부하는 시스템이다. 국민들이 국가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스템이다.


위의 두 뉴스를 보자. 애플은 결국 미국정부에 내야하는 세금을 최소액수까지 줄였다. 수입이 줄어든 미국정부는 그만큼 적자재정에 빠졌고 교육이나 복지를 덜 펼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플의 잡스는 자기가 기부하고 싶은 곳에 익명으로 기부했다. 철저한 미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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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기업 노키아는 핀란드 정부에 높은 세율의 많은 세금을 고스란히 냈다. 그 결과로 아무도 노키아가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애플도 미국정부에 법에 지정한 최소의 세금은 납부했다. 그리고 남들 모르게 최고경영자의 가족이 기부했다. 하지만 애플은 사회적 비난에 직면해있다. 법적으로는 문제없어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소홀했다는 비난이다.


기업이 그저 이윤만 추구해도 되는 것일까? 세금 자체가 이미 소득재분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국가에서 기업은 법만 지켜도 상관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세금만 걷는 국가에서 기업은 또하나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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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자들이 특별히 마음이 착해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사회의 시스템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플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애플이 세금에 있어 합법적인 절세를 했다고 해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어쩌면 잡스와 가족이 익명으로 기부를 하는 것보다 애플이 저런 절세논란을 겪지 않고 세금을 더 많이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핀란드에서는 앵그리버드로 부자가된 회사에 기부를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