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에서 배운 재미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로 '플랜B' 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이 최초에 세운 계획이 곤란에 처해서 결정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자 친구가 묻는다. 플랜B는 있어? 라고 말이다. 우리 말로 하면 '차선책'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또다른 계획이다.



갤럭시탭3


앞서서 나는 인텔칩으로 움직이는 삼성 갤럭시탭이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삼성 갤럭시탭, 인텔칩을 채택한 의미는?



나는 그 의미로서 태블릿 시장에서 입지가 약한 인텔이 삼성을 통해서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오늘은 이런 움직임이 어떤 파급효과를 줄 것인지를 분석해보겠다.


인텔은 이전에 애플에게 상당히 의미있는 제안을 했다. 자사 생산시설을 이용해서 아이폰용 ARM칩을 만들어 줄테니 대신 아이패드에 인텔이 설계하는 X86코드 기반의 칩을 탑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애플과 인텔의 연합, 미래를 바꿀 것인가?



다른 회사의 하청을 하지 않는 인텔이 ARM칩을 만드는 굴욕까지 감수하면서 이런 제안을 한 이유 역시 간단하다. 태블릿의 대표주자이자 포스트PC를 노리는 아이패드에서 자사제품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것이다.


현재 인텔의 주된 수익원인 PC시장은 감소추세에 있다. 없어지지는 않을테지만 늘어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인텔이 PC에서 얻는 압도적 위치에 안심하고 있다가는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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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텔칩을 애플이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 업체끼리의 시너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외쳤지만 단지 애국심으로 연합할 수는 없다. 나아가서 애플은 아이폰6에서 삼성을 대체할 공급자로 TSMC를 지목함으로서 인텔의 요청을 거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매킨토시에 쓰고 있는 인텔칩에 대해서도 전력소모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보다 저전력소모 칩을 개발하지 않으면 다른 칩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럼 여기서 주인공 시점을 인텔 입장으로 바꿔보자. 사업은 짝사랑이 아니다. 인텔의 프로포즈는 애플이 매몰차게 거절할 기세다. 그렇다면 인텔 입장에서는 플랜B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연스럽게 현재 애플 최대의 라이벌인 삼성이 될 수 있다.


미국업체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삼성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아이폰에 유일하게 대항하는 스마트폰인 갤럭시를 가지고 있다. 아이패드에 경쟁 가능한 태블릿인 갤럭시탭과 갤럭시노트를 가지고 있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컨텐츠 기반이 아니라 확실한 하드웨어 완제품업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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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출발로 어떻게든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인텔 입장에서 일단 스마트폰은 첫번째가 아니다. 그쪽은 생산적 툴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인텔의 최대장점인 강력한 연산능력이 그다지 매력을 보여줄 수 없다. 하지만 태블릿은 다르다. 간단한 웹서핑부터 시작한 태블릿은 이제 문서작성과 그래픽 가공을 비롯해서 점점 생산적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가벼운 노트북 시장을 태블릿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텔은 바로 이 태블릿 시장에 들어가면 승산이 있다. 태블릿은 다소 큰 크기 덕분에 배터리용량도 크다. 숨막힐 듯한 저전력소모 보다는 어느정도 연산능력을 내주는 것이 매력적이다. 더구나 태블릿을 통해 문서를 편집하고 그림을 가공하고, 나아가서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3D렌더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그런 더 빠른 칩을 원하는 수요는 늘어난다. 여기에 인텔이 파고들 여지가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다행히도 매우 유연하다. 약간의 문제는 있어도 인텔칩 기반에서도 잘 돌아간다. 본격적으로 제품에 탑재되는 시점에서 인텔이 투자를 한다면 ARM칩에 최적화된 부분도 에뮬레이션 등의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과 인텔, 태블릿 연합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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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이렇듯 인텔칩이 삼성 갤럭시탭제품을 통해 성공적으로 태블릿에 진입하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입지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예전 윈텔연합에서 보듯 인텔칩은 MS의 윈도우 운영체제를 잘 돌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삼성이 지원해 준다면 인텔칩이 탭재된 갤럭시탭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이외에 윈도우도 구동할 수 있다. 통째로 서피스 프로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MS가 흥미를 느낄 가능성도 많다. 서피스는 레퍼런스 태블릿 정도로 놓아둔 채로 삼성-인텔-MS로 이어지는 반애플 연합전선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줄어드는 PC시장이 아닌 태블릿에 진입해야 하는 인텔, 애플을 앞설 어떤 원천기술이 필요한 삼성, 그리고 태블릿에 윈도우를 끌고 들어가고 싶은 MS의 이익이 맞아들어가는 '반애플 태블릿 연합' 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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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현재 안드로이드 하나만으로 모든 생산적 도구를 다 소화할 수 없다. 윈도우8까지 구동이 가능한 제품이 있다면 당연히 환영이다. 갤럭시탭이 인텔칩을 넣고는 안드로이드와 윈도우8의 멀티부팅을 지원한다면 당분간은 생산성 최강의 태블릿이 될 수 있다. 또한 가격대비 성능에서도 마찬가지다. 서피스와 안드로이드 태블릿 두 대를 사는 값을 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갤럭시탭의 인텔칩 탑재는 태블릿연합이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이런 거대한 생각을 가진 움직임인지 아니면 그저 시험삼아 제품 하나 내보는 정도로 그칠 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도 세 회사 가운데 상당한 협의와 이익조정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소비자로서는 기대되는 하나의 '플랜B'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