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허와 상표는 강력한 무기다. 특허는 특정기술에 대해 법이 허용하는 기간동안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상표는 특정한 단어나 표식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까지 독점해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둘 모두 누군가 이것을 침해했을 때 고소에 이어지는 손해배상판결로 강력한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


하지만 이런 특허와 상표권을 취득한 업체의 목적은 일률적으로 똑같지 않다. 어떤 업체는 이런 권리를 '방어적'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어떤 업체는 '공격적'으로 사용한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권리를 가지고는 누군가 다른 기업이 나를 고소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용도라면 방어용이다. 반대로 누군가 이걸 쓰고 있는지 샅샅이 살펴서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법원에 고소해서 배상을 받거나 사용취소판결을 얻어내는 것은 '공격적' 이다.


어떤 경우에는 권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조금도 티가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닌텐도가 게임패드 등에 쓰는 십자모양 키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다른 업체들이 그런 방식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사의 십자키 방식을 누군가 특허를 얻고난 뒤에 고소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방어용' 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2'에서 조이스틱의 커맨드식 입력방식에 대한 특허를 다른 업체들이 앞다투어 쓰는 것을 묵인했다. 류와 켄이 파동권을 쓸 때 입력하는 이런 입력방식을 독점적으로 쓴다면 다른 업체들이 격투게임에서 따라올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는데도 말이다. 캡콤은 오히려 같은 방식을 많이 쓰게 되어 격투게임이란 장르 자체가 훨씬 풍성해지길 바랬고 그렇게 되었다.



아이패드 미니


여기 애플의 제품인 아이패드 미니를 놓고 나온 기사에서 나는 문득 예전의 그런 일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미국특허청에 아이패드 미니의 상표권을 요청한 애플에 대한 기사다(출처)


애플은 2010년 3월 후지쯔로부터 "iPad" 상표를 매입하고, 미국에 이 상표를 등록했다. 애플은 또한 작년 11월 중국회사 프로뷰와의 법정 소송까지 가서 결국 6천만 달러에 매입하기로 합의하고, 중국에서 "iPad" 상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USPTO 심사 변호사 리-앤 번스는 애플의 "iPad 미니" 상표 출원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2010년에 IP 출원 개발사와 마크 앤절이 "iPad" 상표를 각각 출원했고, 이 상표들 사이에 혼동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패드 미니의 상표등록을 거부하는 건 그렇다치고 그 이유로 내세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다른 해석을 했다. 혹시 미국 특허청은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의 상표권을 가지고 방어적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사용할 것을 우려한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전 뉴스가 나왔다. (출처)



아이패드 미니


USPTO는 애플의 "iPad 미니" 상표 출원를 거부했다. 그러나 지난 주 수요일 자로 새로 발간된 USPTO의 결정에 의하면, USPTO는 심사 변호사가 애플의 "iPad 미니" 상표 출원 거부를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 문건에는 애플의 상표 출원에 있어서 이전에 명시된 몇 가지 문제들이 계속 남아있지만, 애플에게 이 상표 출원에 "iPad 미니" 상표의 일부로 "미니"라는 용어를 보호용으로만 사용한다는 것과 다른 회사들이 자사 제품들에 "미니"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는 포기서를 첨부하라고 말했다.

 

아이패드 미니, 상표등록 허용의 의미는?


내 짐작이 맞았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 의견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1.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 란 상표권을 얻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2. 누군가 '아이패드 미니' 란 이름의 짝퉁 제품을 만드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3. 하지만 혹시 애플이 이런 상표권을 앞세워 '갤럭시 미니' 등 뒤에 미니가 붙은 작명법까지 문제삼지 않을까?

4. 설마 그럴 리는 없다. 그건 일반인의 상식적인 네이밍이다.  자동차 같은 곳에서는 이미 그런 작명법을 쓰고 있다.

5. 애플이라면 IT나 태블릿 제품에 한정해서 그런 네이밍의 유사제품을 고소할 가능성도 있다.



아이패드 미니


결국 이런 우려는 일부 사람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미국특허청 조차도 그것을 우려한것이다. 위의 뉴스가 사실이라면 애플에게 요구한 포기서는 그런 우려를 정확히 나타낸다. 애플이 닌텐도의 십자키처럼 누군가 애플을 향해 '아이패드 미니' 란 상표를 왜 쓰냐면서 고소하지 않도록 해주는 '방어용' 으로만 쓰라는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란 상표등록 허용의 의미는 사람들이 요즘 애플에 대해 가지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브랜드와 상표권은 분명히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한도를 넘어서 관련된 다른 회사의 활동을 위축시킬 정도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영어단어 앞에 i 가 붙는 모든 것이 애플의 상표로 보호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저 농담에만 머물렀으면 한다.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더이상 웃을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