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지만 잊고 사는 일들이 있다. 옛날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전래동화를 보면 반드시 나오는 교훈이 기억난다. '재산을 잃고 벼슬을 잃어도 신뢰만 얻고 있으면 반드시 다시 성공한다.' 라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보자. '권력이 있고 돈이 있어도' 신뢰가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근 게임을 둘러싼 여성가족부의 정책을 보면 이런 전래동화가 근거없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개별 사안으로만 보면 약간의 신뢰상실 정도를 불러일으킬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것이 정치적 음모나 억울한 누명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는 점이 더욱 가슴 아프다. 

신뢰를 잃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 점을 잘 보여는 주는 사건이 얼마전에 일어났다. 약간 지난 뉴스를 보자. (출처)



여성가족부가 온라인상에서 퍼진 루머로 진땀을 뺐다.
6월 20일 저녁,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로 ‘여성부’라는 단어의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1위를 차지했다. 여성부가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부가 피시방과 노래방에 청소년 출입을 제한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면서 여성부 게시판에도 항의 글이 넘쳐났다.

급기야 여성부는 이날 저녁 7시30분께 트위터 계정(@mogef)에 “현재 온라인상으로 여성가족부가 PC방뿐 아니라 노래방 등에 청소년 출입을 제한한다는 루머 확산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보호법 개정에 따라 9월16일부터 PC방이 청소년고용금지업소가 되는 것이지 출입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해명 글을 남겼다.

이번 루머 소동은 여성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게임 셧다운제 실시’ 등 여성부에 쌓여온 누리꾼들의 해묵은 분노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부는 게임, 공연, 영화,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사실상 ‘검열’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루머 해프닝도 올 9월부터 개정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피시방과 노래방에서 청소년 고용이 금지되는 것이 와전된 것이다.

정보기술 평론가 안병도씨는 “여성부가 펼쳐온 최근 일련의 정책을 보면 의사 수렴의 프로세스가 없었다”며 “누리꾼들은 국가기관이 설마 그러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별 게 아니었다. PC방이 청소년고용금지업소가 되는 것은 나름 큰 변화지만 그렇게까지 파문이 확산될 정도로 무리한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듯 이것을 PC 방에 청소년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말로 바꾸면 엄청난 일이 된다. 국가기관이 권력을 이용해서 개인의 선택권을 무리하게 금지시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에서 저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이 문제의 근원을 생각하며 두 가지 분석을 제시했다.

여성부의 게임정책, 왜 신뢰를 얻지 못할까?

첫째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부의 최근 게임 셧다운제를 둘러싼 정책 등이 합리적 의사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규제를 하면 최소한 그 규제를 당하는 쪽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여성부는 게임에 관해서 각종 정책으로 권리를 제한당하게 되는 청소년 쪽의 의견을 듣고 어떻게 하면 권리 제한을 최소화하면서도 정책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을 지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저 학부모와 타인의 입장에서 추측해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합리적 국가기관으로서 여성부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다. 여성부라면 게임정책에 관해서 어떠한 무리한 일도 추진할 수 있는 '막나가는' 기관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국가기관이 그럴 리가 없어.' 라든가 '이렇게 빠르게 무슨 정책이 나와?' 라는 합리적 의심조차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여성부가 한국에서 당장 몇 달 뒤부터 게임에 담배나 술처럼 고액의 세금을 매기고 청소년에게 전면 금지를 시키겠다는 정책을 펼친다는 소문이 펴져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둘째로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성부는 그동안 SNS와 블로그 등을 통한 합리적인 소통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종교조직도 아닌데 그저 '우리는 옳다. 그러니 너희들이 따라라.' 라는 식의 소통만 보일 뿐이다. 



소통이란 기본적으로 우리쪽에 찬성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반대편의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들어줌으로서 이쪽이 생각없는 집단이 아니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

위의 기사에서 보는 여성부의 트위터가 막상 저런 소문이 나돌고 있음에도 아주 뒤늦게 해명을 내놓았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평소에 자기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과만 소통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반대쪽과 소통하고 있었다면 직접 여성부에 금방 문의했을 것이고 신속한 해명을 통해 파문확산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편은 여성부에 문의하는 대신 다른 경로로 전파시켰다. 여성부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무리한 정책도 문제지만, 그 정책을 내놓는 과정에서도 합리적인 진행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공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이렇게 신뢰를 잃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여성가족부에서 일하는 '학부모' 들의 생각에 백해무익한 게임일 지 몰라도 세상에는 그것을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도 많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정부부서로 남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