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를 낮추는 방법은 저질 싸구려 제품을 만들어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각 부품의 조합을 잘 연구해서 사용자경험을 망치는 않는 수준에서의 최저선을 맞춰서 조합하면 된다. 약간 답답한 느낌도 있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어 비교적 부담없이 살 수 있는 레티나 맥북이 나온다면 어떨까?



부품 조합이란 측면에서 볼 때 램이나 SSD등은 사용자가 아끼면서 잘 쓰면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있다. 맥북에어의 999달러짜리는 램이 2GB밖에 달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적당히 나쁘지 않은 수준의 성능을 보여준다. 저장공간인 64GB 역시 운영체제와 응용소프트웨어 몇 개만 깔면 확 줄어드는 양이다. 하지만 재주껏 클라우드와 USB 메모리등을 이용하면 불편해서 못쓰겠는 정도는 아니다. 사용자경험을 아주 중시하는 애플도 그런 정도의 부품 구성을 취하면서까지 전략적 가격을 가진 맥북에어를 출시했던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15인치 레티나 맥북 프로이외에도 13인치의 맥북 프로라든가, 레니타 맥북 에어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가격을 낼 수 있도록 부품조합을 한 레티나 맥북을 팀쿡이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생전의 잡스라면 훌륭하게 해냈겠지만 팀쿡의 윗자리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혼자서 그런 판단을 해서 실천에 옮긴다면 그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맥북은 절대적인 가격이 비싼 편이다. 애플 제품 가운데는 절대적 가격이 낮기에 종종 다른 타사 경쟁제품보다 비싸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50달러하는 다른 회사 MP3플레이어를 애플이 아이팟으로 만들면서 200달러를 책정했다고 치자. 무려 4배가 비싸지만 절대가격으로 보면 50 달러나 200 달러나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비싸서 못사겠다는 거부감이 없다.



반대로 다른 회사의 비슷한 성능의 노트북이 1500달러인데 애플의 맥북이 2500달러를 책정했다고 치자. 비율로는 2배조차 안되는 가격차이다. 하지만 절대적 가격에서 1000달러라는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비싸다는 이미지로 돌아올 수 있다. 현재 레티나 맥북프로의 가격은 이런 이유에서 걱정이 된다. 혁신이지만 찻잔속의 태풍 정도의 혁신 밖에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이 기능 일부를 생략하거나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서 보급형 제품을 만든 경우는 이미 있다. 예를 들어 액정이 달린 아이팟에서 액정을 없애고 버튼 조차 가장 간단하게 만든 아이팟 셔플이 있다. 담겨진 노래를 단지 랜덤하게 재생하는 기능밖에 없는 아이팟 셔플은 인생에 있어 우연이란 매우 소중한 경험이란 반향과 문화현상을 만들며 성공했다. 원가절감을 위해 비싼 부품을 없애고 단지 음악을 넣고 듣는 기능만 살린 보급기였다.

아이팟터치는 비록 처음부터 보급기를 목표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돈이 없거나 나이가 어려 아이폰을 사지 못하는 소비자에게 아이폰 대용 역할을 하는 보급기 역할도 했다. 아이폰은 쉽게 사기에 가격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아이팟터치는 간단히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애플의 iOS를 써보면서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소비자로 성장해간다.



2010년말에 발표된 맥북에어는 가격에서 매우 의미있는 제품이다. 그저 애플이 얇게 만든 또 하나의 노트북 정도가 아니다. 단지 SSD를 넣어 부팅속도만 빨라진 컴퓨터 정도도 아니다. 이때부터 맥북에어의 의미는 가볍고 빠른 부팅속도와 간편한 사용성을 지니면서 어느 정도의 성능도 제공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고성능 태블릿보다 약간 높은 성능, 본격 업무용 노트북보다 약간 낮은 성능이란 위치였다. 특히 가격은 최저사양 모델이 999달러로서 넷북보다는 비싸지만 성능과 휴대성을 생각할 때 충분히 접근 가능한 가격이 되었다.

비록 맥 운영체제 자체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영향력은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런 맥북에어의 존재는 다른 PC노트북 업체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익률 높고 비싸기로 유명한 애플이 이런 정도의 보급형 제품을 내놓는데 , 막상 울트라씬을 앞세운 다른 PC노트북 업체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훨씬 못 미쳤다. 가격이 싼 모델은 넷북이나 다름없이 느리고 조악한 성능을 보였다.  SSD조차도 채택한 모델이 거의 없었다.

이대로 성능과 이미지 양쪽이 추락해가는 노트북 업체를 떠받치기 위해 인텔은 울트라북이란 규격을 만들었다. 빠른 부팅속도와 얇은 두께, 배터리 지속시간까지 규정해놓은 이 울트라북에서 특히 신경을 쓴 것은 가격이었다. 999달러 이하의 제품출시를 적극적으로 권장한 것이다. 제조업체 대부분이 성능은 좋아도 훨씬 비싼 제품을 내놓았기에 큰 호응를 얻지 못했다. 이미 비교기준이 된 맥북에어의 가격 999달러에 어떻게든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성능과 재질, 무게와 부품까지 잘 관리하면서 그 정도 가격을 책정해서 팔기란 아직도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울트라북은 이미 맥북에어가 불러일으킨 혁신적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맥북에어는 애플 맥북의 보급기 라인으로서는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파급력만으로는 거의 열 배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9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PC시장 가운데 노른자위인 노트북 업계의 전반적 변화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맥북에어 2010년 모델이 없었다면 인텔의 울트라북이란 규격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혁신 제품 하나보다 더 중요한 업계 전체의 커다란 혁신이다.

레티나 맥북, PC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결론을 정리해보자. 레티나 맥북프로는 노트북 디스플레이에서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준 제품으로서 대단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특별히 기획된 부품조합으로 짜여진 보급형 모델이 필요하다. 또한 그런 보급형 모델의 존재가 PC로도 확산되어 너도나도 레티나 노트북을 내놓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애플의 팀쿡은 또다른 혁신을 훌륭히 수행한 셈이 된다.  애플의 진정한 혁신은 좁은 맥 카테고리 안에서가 아닌 전세계 모든 컴퓨터의 변화를 이끄는 데서 성취된다.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플이 어서 레티나 맥북에어의 보급기를 출시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나도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인텔이 울트라북 진영을 모아서 초고해상도 노트북을 기획하여 만들게 되면 오히려 애플의 혁신이 증명되면서 그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레티나 제품이 시장에 혁신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 전체참조 : 레티나 맥북을 통해 보는 애플의 혁신과 미래(디지에코 - 이슈앤 트랜드) , 필자 : 안병도.
2012/07/03 - [사과나무와 잡스이론(해외IT)] - 레티나 맥북, 시장 혁신의 전략은 없는가?
2012/06/19 - [사과나무와 잡스이론(해외IT)] - 레티나 맥북프로, 혁신의 의미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