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역사를 보자. 정치구조에서 사람이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은 그것을 ‘이익’에서 찾는다. 어떤 집단에게 혹은 개인에게 정책이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믿게 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있다. 하다못해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아직도 개발공약과 부동산 가치 상승을 약속하면 엄청난 표를 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데 이익은 종종 위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럴 듯한 대의명분이나. 고결한 정신을 위해서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어떤 시기에는 집단조차 그런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이익도 소용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가장 잘 통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공포’이다. 사람들의 공포를 적당히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그 효과는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직후의 미국은 테러라는 말만 들으면 국민들이 최면에라도 걸린 듯 모든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내놓았다. 테러를 당해서 당장 자기와 이웃이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속에서는 모든 것이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종종 이런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 얼마전 있었던 수도권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발전소의 순환 정비와 전력관리의 소홀로 일어난 사고 하나가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었다. 자칫하면 예고없이 전기를 못쓸지 모른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순간 정전을 뜻하는 ‘블랙아웃’이란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후로 지금 한국에서는 전기요금 인상과 절전운동, 에너지 절약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옆나라 일본처럼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멈춘 것도 아니고, 갑자기 국민들이 전기를 펑펑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전기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전기를 둘러싼 이런 공포에 쓸쩍 편승해서 목적을 이루려는 사업자들이 있다. 바로 이동통신사업자들이다. 이들은 전기를 만드는 한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럼에도 교묘하게 통신망과 전기공급선을 동일시하면서 공포감 조성을 통해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에 KT가 언급한 ‘네트워크 블랙아웃’ 이란 말이 흥미롭다.(출처)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이 카카오의 `보이스톡` 서비스와 LG유플러스의 보이스톡 허용 방침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표 사장은 6월 7일 매일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 이슈는 글로벌한 관점, 정기적인 시각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마케팅으로만 접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표 사장은 이어 “네트워크에 대한 지속적이고 충분한 투자없이는 네트워크 블랙아웃, 전체 산업의 셧다운이 일어날수 있으며, 미래 스마트 컨버전스 경제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 사장은 발언의 배경으로 `강한 네트워크`론을 제시했다. 강력한 망을 갖춰야 콘텐츠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마트디바이스, 클라우드 컴퓨팅 및 가상재화(Virtual Goods)로 이루어지는 스마트 혁명은 강력한 네트워크가 뒷받침 돼야 한다”며 “특히 무선네트워크는 화석연료처럼 유한한 자원이지만 트래픽은 최근 3년간 153배 등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 중이다”고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표 사장은 콘텐츠와 네트워크 사업자가 `공생`한 대표적 사례로 최근 오픈한 음악 콘텐츠 서비스 `지니`를 언급했다. 사업개시 두달만에 50만 가입자를 돌파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네트워크의 데이터는 전기공급망과 다르다. 전기는 그 특성상 발전용량을 넘는 수요가 발생하면 발전기와 변압기 자체가 견디지 못하고 타버릴 수 있다. 흔히 쓰는 가정용 어댑터를 예로 들어보자. 전압, 전류량이 모자라는 작은 용량의 아답터를 큰 소비전력의 제품에 연결하면 어댑터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아댑터가 그대로 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그렇지 않다. 그저 잠시 마비되다가 정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폭증하는 데이터는 망의 처리속도를 늦추지만 그렇다고 망 자체를  파괴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계속 정전이 되는 블랫아웃 같은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만일 일어난다면 그건 평소 기지국에서 데이터 급증에 대한 안전판 마련을 소홀히 했다는 의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동통신사에서 저런 무리한 발언을 하며 주장할까? 원인은 하나다.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감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데이터를 이용한 무료 음성통화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수익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정상적인 논리나 정성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기 힘드니까 협박같은 말을 내뱉은 것이다.



네트워크 블랙아웃? 이통사의 정치적 협박.

이통사가 원하는 건 단 한가지다. 자기 망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부가가치에 대해서 정액 데이터 요금 외에 별도의 비용을 받아서 한몫 잡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도로를 닦아 정액 통행료를 받다가도 그 위에서 택배회사를 운영해서 돈을 버는 회사가 있으면 다시 별도로 화물 운임에 따라 돈을 받아야 겠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안 내면 차량 운행 중 도로가 막혀버리거나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면서 말이다.

표현명 사장이 밝힌 미래비전을 보자. 특히 무선네트워크는 화석연료처럼 유한한 자원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그것이 유한한 자원인가? 통신기술과 반도체기술이 발달할 수록 기존의 기술적 한계가 깨지고 속도와 안정성이 나아지고 있는 것이 무선기술이다. 그럼에도 자원에 비유하고 있다.

좋다. 그런 논리라면 그 한정된 유한 자원을 왜 특정 민간기업 몇 개가 독점하고 있단 말인가? 네트워크 블랙아웃까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자원이라면 민간에서 운영해서는 안된다. 나라에서 수용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공평하고 안전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한 민간업체의 횡포나 정책판단 실수로 국민 전체가 블랙아웃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참에 무선네트워크를 전국 주요 국도나 토지로 판단한 입법과 후속 조치를 해야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보자. 네트워크 블랙아웃이란 실체도 없는 괴물이고 협박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사용자 폭주로 몇몇 기지국이 마비되는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블랙아웃은 아니다. 그저 잠시 불편한 것 뿐이다.

전국민이 일제히 무선 네트워크를 쓰지 못하는 그런 현상은 통신사가 작정하고 스위치를 내려버리거나 선을 잘라버리기 전에는 결코 오지 않는다. 정치적 협박에 불과한 블랙아웃이란 단어 자체를 더이상 통신관련 기사에서 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기술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옳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