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 돌을 쌓아올린 나지막한 담장이다. 워낙 돌이 흔하고, 그것이 구멍이 뚫려 가벼운 현무암이다 보니 새삼스럽게 세멘트나 콘크리트를 쓰는 것보다 쉽고 비용도 거의 안 든다. 일부러 환경을 오염시키며 인공 구조물을 만들기 보다는 돌을 이용한 천연 구조물 쪽이 나은 것이다.



근래 제주의 문화를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옛날 신혼 여행지로도 유명했고 지금도 관광이 중요한 핵심산업인 제주에 있어 환경을 보존하는 일은 당장 주민 전체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따라서 환경을 오염하는 요소에 매우 민감하고, 반대로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는 적극적이다.



제주도를 가다보면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감귤밭은 매우 신기하다. 푸른 잎사귀 안에 빨간 감귤이 열린 걸 보면 영화에서 보듯 즉석에서 하나 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럴 수야 없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작물이니까 말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면 하나 사 먹어야 겠다.


제주에는 천연비누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친환경 성분으로 천연비누를 만드는 곳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제주도의 방침에 아주 잘 맞는다. 곱뜨락 아띠란 가게 이름이 재미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보석을 보듯 아름답고 귀여운 모양의 색색 비누가 전시되어 있었다. 천연비누의 효능과 함께 전시된 비누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비누라기 보다는 고급 화장품같은 느낌이다. 하긴 비누도 여성들에게는 미용용품이니 화장품과 마찬가지인가? 하지만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다보니 일상에 쓰는 비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체험장이라고 해도 인테리어가 아름다운 카페나 화장품 가게와 비슷했다. 여성초란 이름이 눈에 띄는 이 비누는 특히 내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특히 천연 허브나 향기 좋은 꽃을 써서 비누를 만들수 있는 곳이다. 마치 향수를 만들듯 각각의 요소에서 뽑아낸 엑기스를 써서 비누를 만드는 것이다.

한쪽에서 비누 만들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잠시 구경했다. 피부가 참 고운 여주인께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비누 만드는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비누베이스를 녹여낸 후 미리 취향에 따라 선택한 에센셜 오일을 넣고 비누틀에 부어 식히면 된다. 그렇지만 중간에 계량도 하고 잘 저어줘야 하기에 간단한 것에 비해 시간은 좀 소요된다.



천연비누는 공장에서 나온 합성비누에 비해 자연 그대로의 재료가 들어가 있어 보습력이 좋다고 한다. 또한 거품이 풍성하고 조밀해서 감촉이 좋고 세쳑력도 우수하다. 또한 자연 재료만 쓰기 때문에 합성세제나 인공향 등 합성 물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인스턴트 음식을 거부하고 자기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에도 비교할 수 있겠다.




여러가지 모양틀을 보면서 여기까지 온 김에 천연 비누를 가지고 잠시라도 돌아가서 색다른 경험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본다. 천연의 향기까지 좋은 비누니까 기분까지 매우 상쾌해질 것 같다.

비누향을 뒤로 하고 이번에 찾은 곳은 제주도 명소인 거대 햄버거 가게였다. 이름하여 황금륭버거다.


햄버거? 제주도에서? 지금 농담하나? 제주도까지 와서 왜 햄버거를 먹어? 서울에서도 질리게 먹은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말이야! -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하긴 나도 이 햄버거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모를 때는 그랬다. 평소에 늘상 저렴한 맥도널드 빅맥 세트나 롯데리아 런치세트를 먹어온 나에게 햄버거는 너무도 매력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막상 나온 황금륭 버거를 한번 보자.


이건 뭐 햄버거라기 보다 피자에 가깝다. 빵도 패티도 마찬가지다. 크다. 이거 한 사람이 다 먹으면 아마 배가 불러 쓰러질 것 같다. 사람 얼굴의 두배는 됨 직한 빅버거인데 어떤 햄버거 집에서도 본 적이 없는 크기가. 해외토픽에서나 본 적이 있던가?

놀라운 건 단지 크기만이 아니다. 안에 든 재료 역시 보통 햄버거 재료와 다르다. 허브 발효효소와 신선한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가고 좋은 식감의 햄이 씹힌다. 도저히 한 개를 통째로 먹을 수는 없으니 처음부터 8조각 정도로 잘려 나오는데 한 조각이 보통 햄버거 하나 정도의 양이다.


워낙 양이 많으니 감자튀김이니 하는 걸 곁들일 필요도 없다. 황금륭버거는 하나 만으로 3-4인분이라는 데 분명 네 명이서도 나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커플이 와서 다 못먹을 경우는 가상해서 만든 절반 크기 커플버거도 있는데 딱 반쪽이다. 야채와 함께 허브티를 따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다.

황금륭버거를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보았다. 기름에 튀긴 맛에 어쩐지 느끼한 패스트푸드 햄버거같은 맛이 전혀 아니다. 마치 아침에 갓 만든 샌드위치처럼 신선한 재료가 느껴지는 달콤한 맛이다. 모양으로는 햄버거를 먹고 있지만 느낌은 빵과 샐러드, 햄과 허브가 조화된 풍요로운 식사를 하는 듯 하다.


햄버거 하면 감자튀김과 콜라가 세트라는 내 고정관념을 비웃듯 신선한 야채 샐러드와 향긋한 허브티는 매우 조합이 잘 된다. 모든 것이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우 푸드이자 건강식품이다. 비만과 영양불균형의 상징으로 지목받던 햄버거란 단어가 무색하다. 이쯤되면 이건 웰빙과 건강의 상징이 될 것 같다.



제주도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나무와 함께 서 있는 황금륭버거를 나왔다. 아직은 해가 좀 나있었지만 서서히 낮게 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천연비누 만드는 광경을 본 것과 거대한 제주 햄버거를 맛본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제주도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순히 경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이렇게 향기를 맡고 먹어보고, 눈으로 보는 문화체험이 더 소중한 경험이다.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