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말을 타며 기마민족을 생각한다.
2011. 1. 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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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보는 창문(이벤트)
흔히 제주도 하면 세 가지가 많다고 한다. 돌, 바람, 여자다.
그런데 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바람도 기후의 변화는 다소 있어도 항상 유구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한가보다. 나의 제주여행에서 여자는 그다지 많이 볼 수 없었다.
하긴 산업화를 맞은 한국에서는 이미 젊은 여자들이 전부 대도시와 서울로 몰려들기에 개발이 다소 덜 된 지방일 수록 여자 보기가 힘들다. 그러니 해녀로 유명한 제주도 일지라도 여자가 많을 리 없고, 내 여행의 목적이 여자가 아니기에 더욱 여자는 보기가 힘들었다.
그럼 여자를 빼고 나머지 하나를 채워보자. 떡 하니 떠오르는 건 '말'이다. 제주도는 옛날부터 천혜의 방목지였다. 특히 군대에 소요되는 군마를 키우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따뜻하고, 조용하며 섬이라 어디 달아나기도 힘드니 말이다.
제주도에는 현재 약 2만 마리 정도의 말이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섬 하나에 이 정도의 말이 몰려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모두가 주인 있는 말도 아니고, 야생마도 많다고 하니 정말이지 말이 많은 곳이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제주 승마공원이었다. 그냥 '말 타는 곳' 이 아니라 승마공원이라는 명칭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곳도 결국 말을 타는 곳인데 거창하게 승마공원이라 이름을 붙인 건 무엇 때문일가?
낮게 구름이 낀 흐린 날씨에 이곳을 방문했다. 공원이라고 하지만 말이 있고 한쪽에 축사가 보이니 어쩐지 공원이 아니라 목장이나 농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행정구역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라는 주소지에 있지만 한국이 아닌 이국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하긴 제주도 자체가 나무와 풀의 모습이 육지와 달라서 이국적이다.
파란 풀과 나지막한 나무들이 펼쳐진 광경은 과연 이곳이 말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말을 지연스럽게 뛰놀고 풀을 뜯기 위해서는 이런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영화에서나 볼 듯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말 타러 왔습니다!"
음... 내가 말을 타 본 게 언제더라.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자연농원인가, 어린이 대공원인가에서 조랑말 타고 사진 한 장 찍고 한 5분 타본 게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외에는 말을 타볼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말을 타 보려고 하니 가슴이 살짝 설레였다.
나보다 앞서 말을 타고 갔던 사람들이 보인다. 인터넷이나 티비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들이다. 역시 스타들도 말은 타고 싶은가보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탈 것이 발달한 현대에 말은 오히려 더 진귀한 탈 것이다. 상류층의 승마는 사교의 수단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와 달리 이제부터 진지하게 말을 타는 데 필요한 장비를 살핀다. 머리를 보호해주는 헬멧이 있고, 멋진 모자도 있다. 추위를 막아주는 점퍼에 미끈한 곡선을 지닌 승마용 부츠도 있다. 장갑까지 포함해 저것을 전부 갖추고 나면 영화에서나 보던 기수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한쪽 구석에 있는 말안장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왜 있는 것일가? 연습용인가. 미리 여기 앉아봐서 폼이 나오는 지 살펴봐 주는 용도는 아닐까 하고 나 혼자 상상해본다.
궁금하게 여기는 나에게 승마공원을 만든 이 곳 주인이 잠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귀족들의 영역, 그러니까 티비에서 본 유럽귀족들이 즐기는 승마의 영역을 개척해서 관련산업 전체를 발전시키려는 게 승마공원의 목적이다. 나도 여기서 말을 타게 되면 잠시나마 그런 귀족의 대열에 편입되는 것일까?
보호장구를 전부 착용하고 승마에 들어갔다. 초보자이므로 완전히 자유롭게 말을 타는 건 무리지만 전문교관의 인솔하에 가능한 오래, 자연스럽게 말을 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서양의 아주 큰 키의 써러브레드 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나귀처럼 작고 가는 조랑말도 아닌 중간 정도 크기의 말이 나를 맞이했다. 말이라 그런지 눈매가 아주 서글서글하고 착해보였다. 약간 어둠이 깔리려는 시간에 나는 그 가운데 한 마리를 골랐다. 드디어 제주도 땅에서 말을 달려보는 순간이다.
승마공원의 체험은 기본이 20분을 넘는다. 진짜로 말을 타봤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고삐와 함께 안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나를 태운 말은 9살된 암컷인데 상당히 순해서 마음이 놓였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코스를 돌며 처음에는 느릿하게 달렸다. 처음에는 그냥 전진에 비해 흔들림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말의 걸음걸이가 내 몸에 직접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이 천천히 걸을 때는 제주의 경치를 보며 옛날 선비를 떠올렸다. 산수구경을 떠나는 선비들이 말을 타고 그야 말로 주마간산 할 때 딱 이런 심정이었을까. 자동차나 자전거로는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속도 차이와 진동이 전혀 다른 기분을 만들었다. 천천히 말을 타고 다니는 관리의 기분도 알 수 있었다.
"이랴!"
그러나 곧 내 느긋한 기분을 깨뜨리며 교관의 신호와 함게 말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공원에 쳐진 철제 난간을 끼고 말이 본격적으로 질주한다. 갑자기 겨울 추위와 함께 몸이 격렬하게 말 위에서 흔들렸다.
제주에서 말을 타며 기마민족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약간 무서웠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호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함께 먼 옛날부터 내려온 기마민족의 전통을 생각했다.
한민족은 농경민족이 주류인 중국인과 달리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철기를 가지고 남하해온 기마민족의 후예다.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고려를 거치면서 우리는 항상 말을 달리며 활을 쏘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대륙에서 밀려내려와 반도에 자리잡은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마필의 생산지였다. 조선시대 무관을 뽑는 무과에는 말을 달리는 과목과 활을 쏘는 과목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연히 조선의 장수들은 말을 달리는 것에 능했다.
그런 조상들의 전통과 기상이 과연 오늘날 내 핏속에도 이어져 흐르고 있을까? 철갑과 마갑을 두르고 적진을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하던 고구려 중장 철기병의 모습, 작지만 강한 활을 들고 자유롭게 말을 몰며 화살을 쏘던 고려 경기병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제주에서 말을 달리는 내 모습과 잠시 합쳐진다.
"푸르르..."
10분 정도를 신나게 달리던 말이 드디어 질주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잠시 달콤하게 펼쳐졌전 나의 상념도 끝났다.
제주 승마공원에서 나는 먼 영국귀족이 아닌 가까운 내 조상의 얼이 담긴 기마민족의 혼을 생각했다. 역시 다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을 타기를 잘한 것 같다. 다음에 기회되는 대로 더 좋은 날씨에서 더 많은 시간동안 말을 타봐야 겠다.
그런데 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바람도 기후의 변화는 다소 있어도 항상 유구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한가보다. 나의 제주여행에서 여자는 그다지 많이 볼 수 없었다.
하긴 산업화를 맞은 한국에서는 이미 젊은 여자들이 전부 대도시와 서울로 몰려들기에 개발이 다소 덜 된 지방일 수록 여자 보기가 힘들다. 그러니 해녀로 유명한 제주도 일지라도 여자가 많을 리 없고, 내 여행의 목적이 여자가 아니기에 더욱 여자는 보기가 힘들었다.
그럼 여자를 빼고 나머지 하나를 채워보자. 떡 하니 떠오르는 건 '말'이다. 제주도는 옛날부터 천혜의 방목지였다. 특히 군대에 소요되는 군마를 키우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따뜻하고, 조용하며 섬이라 어디 달아나기도 힘드니 말이다.
제주도에는 현재 약 2만 마리 정도의 말이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섬 하나에 이 정도의 말이 몰려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모두가 주인 있는 말도 아니고, 야생마도 많다고 하니 정말이지 말이 많은 곳이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제주 승마공원이었다. 그냥 '말 타는 곳' 이 아니라 승마공원이라는 명칭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곳도 결국 말을 타는 곳인데 거창하게 승마공원이라 이름을 붙인 건 무엇 때문일가?
낮게 구름이 낀 흐린 날씨에 이곳을 방문했다. 공원이라고 하지만 말이 있고 한쪽에 축사가 보이니 어쩐지 공원이 아니라 목장이나 농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행정구역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라는 주소지에 있지만 한국이 아닌 이국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하긴 제주도 자체가 나무와 풀의 모습이 육지와 달라서 이국적이다.
파란 풀과 나지막한 나무들이 펼쳐진 광경은 과연 이곳이 말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말을 지연스럽게 뛰놀고 풀을 뜯기 위해서는 이런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영화에서나 볼 듯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말 타러 왔습니다!"
음... 내가 말을 타 본 게 언제더라.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자연농원인가, 어린이 대공원인가에서 조랑말 타고 사진 한 장 찍고 한 5분 타본 게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외에는 말을 타볼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말을 타 보려고 하니 가슴이 살짝 설레였다.
나보다 앞서 말을 타고 갔던 사람들이 보인다. 인터넷이나 티비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들이다. 역시 스타들도 말은 타고 싶은가보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탈 것이 발달한 현대에 말은 오히려 더 진귀한 탈 것이다. 상류층의 승마는 사교의 수단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와 달리 이제부터 진지하게 말을 타는 데 필요한 장비를 살핀다. 머리를 보호해주는 헬멧이 있고, 멋진 모자도 있다. 추위를 막아주는 점퍼에 미끈한 곡선을 지닌 승마용 부츠도 있다. 장갑까지 포함해 저것을 전부 갖추고 나면 영화에서나 보던 기수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한쪽 구석에 있는 말안장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왜 있는 것일가? 연습용인가. 미리 여기 앉아봐서 폼이 나오는 지 살펴봐 주는 용도는 아닐까 하고 나 혼자 상상해본다.
궁금하게 여기는 나에게 승마공원을 만든 이 곳 주인이 잠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주도는 세계적으로도 승마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입니다. 특히 말이 많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말이 경마용과 경마산업용으로 쓰이고 난 뒤 곧바로 식용으로 소모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관광객에게 말을 그저 몇 분 재미로 태워주고 돈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전혀 다른 승마란 영역이 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라마를 이용해 오랫동안 말을 타고 즐기는 분야를 노리고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이 곳에서 국제 지구력 승마대회도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전혀 다른 승마란 영역이 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라마를 이용해 오랫동안 말을 타고 즐기는 분야를 노리고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이 곳에서 국제 지구력 승마대회도 개최했습니다.
귀족들의 영역, 그러니까 티비에서 본 유럽귀족들이 즐기는 승마의 영역을 개척해서 관련산업 전체를 발전시키려는 게 승마공원의 목적이다. 나도 여기서 말을 타게 되면 잠시나마 그런 귀족의 대열에 편입되는 것일까?
보호장구를 전부 착용하고 승마에 들어갔다. 초보자이므로 완전히 자유롭게 말을 타는 건 무리지만 전문교관의 인솔하에 가능한 오래, 자연스럽게 말을 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서양의 아주 큰 키의 써러브레드 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나귀처럼 작고 가는 조랑말도 아닌 중간 정도 크기의 말이 나를 맞이했다. 말이라 그런지 눈매가 아주 서글서글하고 착해보였다. 약간 어둠이 깔리려는 시간에 나는 그 가운데 한 마리를 골랐다. 드디어 제주도 땅에서 말을 달려보는 순간이다.
승마공원의 체험은 기본이 20분을 넘는다. 진짜로 말을 타봤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고삐와 함께 안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나를 태운 말은 9살된 암컷인데 상당히 순해서 마음이 놓였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코스를 돌며 처음에는 느릿하게 달렸다. 처음에는 그냥 전진에 비해 흔들림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말의 걸음걸이가 내 몸에 직접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이 천천히 걸을 때는 제주의 경치를 보며 옛날 선비를 떠올렸다. 산수구경을 떠나는 선비들이 말을 타고 그야 말로 주마간산 할 때 딱 이런 심정이었을까. 자동차나 자전거로는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속도 차이와 진동이 전혀 다른 기분을 만들었다. 천천히 말을 타고 다니는 관리의 기분도 알 수 있었다.
"이랴!"
그러나 곧 내 느긋한 기분을 깨뜨리며 교관의 신호와 함게 말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공원에 쳐진 철제 난간을 끼고 말이 본격적으로 질주한다. 갑자기 겨울 추위와 함께 몸이 격렬하게 말 위에서 흔들렸다.
제주에서 말을 타며 기마민족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약간 무서웠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호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함께 먼 옛날부터 내려온 기마민족의 전통을 생각했다.
한민족은 농경민족이 주류인 중국인과 달리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철기를 가지고 남하해온 기마민족의 후예다.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고려를 거치면서 우리는 항상 말을 달리며 활을 쏘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대륙에서 밀려내려와 반도에 자리잡은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마필의 생산지였다. 조선시대 무관을 뽑는 무과에는 말을 달리는 과목과 활을 쏘는 과목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연히 조선의 장수들은 말을 달리는 것에 능했다.
그런 조상들의 전통과 기상이 과연 오늘날 내 핏속에도 이어져 흐르고 있을까? 철갑과 마갑을 두르고 적진을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하던 고구려 중장 철기병의 모습, 작지만 강한 활을 들고 자유롭게 말을 몰며 화살을 쏘던 고려 경기병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제주에서 말을 달리는 내 모습과 잠시 합쳐진다.
"푸르르..."
10분 정도를 신나게 달리던 말이 드디어 질주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잠시 달콤하게 펼쳐졌전 나의 상념도 끝났다.
제주 승마공원에서 나는 먼 영국귀족이 아닌 가까운 내 조상의 얼이 담긴 기마민족의 혼을 생각했다. 역시 다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을 타기를 잘한 것 같다. 다음에 기회되는 대로 더 좋은 날씨에서 더 많은 시간동안 말을 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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