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업이 있다. 고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기업과 고객이 기꺼이 따르게 하겠다는 기업이다.
전자는 <고객중심형 기업>이고 후자는 <스타일이 있는 기업>이라고 이야기한다. 최대한 좋게 표현해서 말이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고 시대에 따라 흥망성쇄가 있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명품이라고 부르는 제품은 스타일 있는 기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마치 문화예술계와 비슷한다. 시대에 따라서 랩이 유행하면 랩을 부르고, 가을이 되면 R&B나 발라드를 부르는 적응력 좋은(?) 가수도 많지만, 우리는 보통 고집스럽게 자기 음악을 파고들어 경지를 이룩하는 가수를 <아티스트>라 부르며 존경한다.

삼성이 요즘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일선복귀를 시작으로 갤럭시S를 내놓고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은 이제까지 대기업 삼성의 다소 둔중한 몸놀림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하긴 인터넷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돌아온 이건희 회장이 일선 관계자에게 <아이폰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와라!> 하고 호통칠 정도였다고 한다. 변화에 뒤쳐지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지 잘 아는 기업인다운 행동이었다. 다만 그것이 첫단계로서의 <모방>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당당한 대한민국 1위기업 삼성이란 브랜드를 보는 사람에게는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단 한 가지다. 바로 최근 삼성의 애플 따라잡기에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각각 다른 면이 있는 세 가지 예를 들어 그 몰개성함을 지적해보겠다.

첫번째로 삼성의 갤럭시S에 들어간 CPU는 애플 아이폰4에 들어간 CPU와 거의 같은 자매칩이다.  (자세한 것은  Apple iPad and Samsung Wave share a brain -- Engadget 참조)

공식적으로 애플은 아이패드와 아이폰4에 들어간 CPU는 자사가 개발한 A4라고 밝혔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자세한 사양과 공정 등은 철저히 비공개다. 다만 생산과정에서 삼성에 파운드리 방식으로 생산을 위탁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삼성은 갤럭시S에 들어간 칩을 삼성 S5PC 110A01이며 자사가 개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니 이것만으로는 둘이 같은 계열 칩이라는 걸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내막은 간단하다. 둘다 ARM Coretex-A8 1GHz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애플이 삼성에게 향상된 칩을 만들어달라고 생산뿐 아니라 일정부분의 설계권한을 위임했다. 이에 삼성은 속도향상 등을 미국의 관련회사 인트린시티에게 부탁하면서 동시에 자기들이 쓸 칩의 설계까지 맡겼다.
계약대로 만들어낸 칩을 삼성에게서 납품받은 애플은 여기에 A4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는 인트린시티를 인수하고는 <우리 회사에서 개발했다>라고 말한다. 개발과정에서는 아니지만 나중에 인수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 이미 계약을 맺고 자금을 투자한 삼성 역시 인트린시티의 칩을 이용해 나름의 통합칩을 만들고는 이것을 웨이브와 갤럭시S에 넣었다. 그러니까 삼성이 개발했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양 회사에서 인정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근거로 업계에서 추측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런 기술적 이야기를 내가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후발주자인 삼성이 너무 애플을 쫓아가는 데만 급급한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다. 애플에 대한 납품 과정에서 나온 칩을 그대로 써야할 만큼 개발기간과 환경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물론 이것은 좋은 예다. 기술적으로 애플이 채택할 정도라면 당분간은 업계의 선두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삼성의 애플 따라잡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두번째로 삼성은 애플의 앱스토어 장악력까지 가지기 위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최근 어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인 'T스토어' 운영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6월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초 삼성전자의 어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인 '삼성앱스'에 새로 올려진 어플리케이션이 SK텔레콤의 검수 때문에 'T스토어'에서 노출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우리측에서 충분한 검증작업을 한 만큼 재검수는 필요없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SK텔레콤측은 "모든 서비스나 어플리케이션은 우리가 검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사태는 최근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한 일부 언론사들이 SK텔레콤에 직접 항의해 일단락됐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삼성전자는 삼성앱스를 SK텔레콤에 종속시킨 형태에서 벗어나 애플처럼 독자적인 어플리케이션 오픈 마켓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래에는 주로 삼성이라고 해도 SK에 양보하는 경향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이통사를 도리어 호령하며, 앱스토어 등록권을 독점해서 관련사업을 들었다놨다 하는 모습을 보고는 차세대 스마트폰에서는 앱스토어의 검수권한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부분은 애플의 안좋은 면까지 그대로 따라하려는 모방에 불과하다. 삼성이 채택한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오히려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하는 수평적 협력을 중시한다. 그런데 막상 그 운영체제를 받아쓰는 삼성은 애플처럼 독점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이 기사는 삼성이 미래에 다시 스마트폰의 승자가 되었을 경우 애플과 다를바 없는 강력한 통제를 행할 것이란 징후를 보여준다.

세번째로 삼성의 제품군 계획이다.

잘 알다시피 애플은 스마프폰에서 파생된 딱 세 종류의 제품군을 운용하고 있다. 핵심인 스마트폰의 아이폰, 아이폰에서 폰 기능을 떼어낸 아이팟 터치, 그리고 여기서 디스플레이를 크게 만든 아이패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항하는 삼성 역시 더도 덜도 말고 딱 세가지다. 아이폰에 대응하는 갤럭시S, 아이패드에 대항할 갤럭시 탭, 그리고 아이팟 터치에 해당하는 갤럭시 터치(가칭)다. 애플이 하는 건 나도 하겠고, 애플이 안하는 건 나도 안하겠다는 아주 철저한 따라잡기를 볼 수 있다.


이건 좋은 예도 나쁜 예도 아닌 그냥 몰개성한 전략이다.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좋든 나쁘든 중립적이든 삼성은 애플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고 있다. 삼성 만의 스타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삼성의 애플 따라잡기에는 개성이 너무 부족하다. 애플이 운영체제 라이센스를 주지 않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여지가 있었다면 아마 iOS4도 라이센스를 받아서 탑재했을 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껍데기만 차이나지 그 외에 두 회사의 제품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어질 것만 같다.


당장 눈앞의 매출을 놓고 보면 <고객중심형> 혹은 <스타일 없이 무색무취의> 기업이 조금 더 유리할 지 모른다. 변화에도 잘 적응할 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업계를 이끌고 소비자의 존중을 받으며,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스타일이 있는> 명품 기업이다.

삼성이 지금 따라잡으려 애쓰는 애플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들만의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망하기 직전에도 절대 남의 제품이나 전략을 따라하지 않았다. 소니 역시 소니 만의 스타일이 있다. 이런 기업은 심지어 몰락할 때조차 품격있게 행동하기에 일정한 매니아가 존재하고 심지어는 그 매니아들이 매출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애플이 특히 그랬다.


근래 삼성의 애플 따라잡기가 매우 기민하고, 나름 용기있는 행동이란 걸 인정하면서도 안타까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비록 요즘 세계의 모든 IT기업들이 애플을 따라하고 있긴 해도 삼성처럼 나름 해외에서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기업이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삼성의 애플 따라잡기, 개성이 부족하다.

삼성이 좀더 품격과 스타일을 유지하며 독창적으로 애플 따라잡기를 해줬으면 하는 내 바램은 그냥 이상론에 불과한 것일까? 삼성이 스타일을 갖춘 명품기업이 되어줬으면 하는 건 그저 꿈일까? 삼성의 분발을 촉구해본다.

P.S : 제가 이번 7월 1주차 다음 < 베스트 view 블로거>로 선정되었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애독해주시고 추천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의견과 애독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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