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에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중국인 출연자 손요 앞에서 <중국제품은 모두 품질이 떨어진다>란 언급이 나온 것이다. 남달리 나라를 사랑하는 손요는 즉각 반발했다.

사람들이 중국에서 싼 제품만 바라고 사가니까 그런거에요. 중국제품도 비싼건 품질 좋은 것 많아요.

이에 출연자들은 맞다고 동감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이 장면을 보면서 남긴 시청자들의 댓글 가운데 통렬한 일격이 있다.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싸지 않으면 누가 일부러 중국까지 가서 물건을 사오겠냐?


단순히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한국 제품도 불과 20년전만 해도 저런 취급에서 별반 나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롱런하고 있는 드라마 프렌즈의 옛날 방영분에 보면 라스베가스로 놀러가는 친구들이 거기서 한 몫잡겠다고 하며 대충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한다.

거기서 크게 벌어 자가용 비행기로 돌아올 거야! 망하면? 현대차에 기름이나 꽉 채워서 돌아와야지!

이게 무슨 현대차가 품질이 좋으니 애용하겠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빈털털이가 선택하는 최고 싸구려 자동차란 의미다.

우리가 힘들게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과연 우리 기업들의 제품- 특히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 제품이 해외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는 항상 관심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나온 한 가지 기사가 다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삼성(Samsung)'이라는 제목의 렉스 칼럼에서 "삼성전자의 4~6월 영업이익이 2분기 연속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면서 "순이익 측면에서 일본의 상위 19개 기술 및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순이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고 최근 발표된 영업실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적의 뒤에는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의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매우 우수한 반도체 부문과 그저 그런 패널.휴대전화.디지털미디어 부문으로 점점 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끝으로 "삼성전자의 태블릿 PC 갤럭시탭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화면 크기만 빼면 신비할 정도로 닮았다"면서 "다른 업체를 따라가는 삼성전자의 특성(Me-too qualities)은 애플의 시가 총액이 2260억 달러로 삼성전자의 2.5배 수준이라는 지표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꼬집었다.

삼성이 분명 싸구려 이미지를 벗은 건 사실이다. 한국 대기업 들은 잇달아 디자인 경영을 선포한 이후 그저 실용성만 있는 저가제품은 생산하지 않게 됐다. 삼성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품 위주로 주력제품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순이익에서 일본 기업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동안 삼성이 모델로 삼았던 일본 기업의 몰락에 힘입은 바가 크다. 상대가 절호조에 있을 때 경쟁해서 꺾은 게 아니다. 더구나 순이익에서 추락에 가까운 몰락을 하고 있는 소니와 비교해 볼때도 IT제품에서 과연 삼성이 브랜드 가치가 더 좋게 평가되는 지는 의문이다.

저 기사가 꼬집은 건 이제 충분히 몸집도 커지고 지위도 굳힌 삼성이 굳이 남 따라하기 만을 하는 점이다. 더구나 비싸도 사고 싶은 개성있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서 회사가치까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번에 이건희 회장이 다시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삼성의 목표로 삼은 건 현재 당할 자가 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혁신기업 애플이다.
애플을 삼성과 비교하는 여러가지 부분이 가능하지만 가장 간단한 한 가지를 보자.

삼성, 비싸도 사고 싶은 제품이 있는가?

애플은 비록 망할 뻔한 위기도 겪고, 안타까운 전략실패라는 지적도 받지만 IT업계에서 유일하게 고가전략을 써도 제품을 팔 수 있는 기업이다. 겉보기에는 별 거 아닌 듯 싶은 기술을 교묘하게 조합하고 거기에 감성과 편의성이라는 양념을 더하면 어느새 소비자들이 다투어서 돈다발을 내밀며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제품이 된다. 다른 기업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마법이다.


그렇다면 이런 애플의 마법에 대항해서 싸울 삼성에는 과연 그러한 제품이 있을까? 내놓은 적은 있을까?

유감이지만 없는 듯 하다. 내 기억력과 인생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삼성이 만든 어떤 IT제품 가운데서도 비싸도 좋으니 사겠다는 품목은 없었던 것 같다.

아! 하나 있었나? 삼성이 가장 자랑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분명 비싸더라도 사야한다. 지금 DDR3램은 비싸다고 하면서도 컴퓨터를 조립하는 사람들은 전부 산다. 그에 힘입어 삼성의 순이익은 기록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건 단지 시장 주도적 독점의 결과다. 불과 1년전만 해도 대만과 일본, 독일까지 가세한 거대한 메모리 치킨게임이 있었다. 그 가운데 생산원가도 안되게 가격이 내려갔었다. 삼성은 그런 게임에서 제품의 매력이나 비교우위가 아닌, 원가가 가장 적게 드는 생산공정을 개발해서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로서 승자독식을 하게 된 결과가 메모리다.

애플 아이폰은 비싸도 칭찬하면서 사지만 삼성 메모리는 비싸기에 불평을 하면서 할 수 없이 산다.


이것은 큰 차이다. 소비자들은 삼성이란 브랜드를 인정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 제품 가운데는 비싸도 사고 싶은 제품이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AS 때문에 비싸도 안심하기 위해 살 뿐이다.

삼성의 나머지 제품인 LCD모니터와 휴대폰은 전부 AS의 좋은 이미지 때문에 산다. 제품의 매력이 아니라 제품 사용중에는 절대 느낄 수 없고,, 고장이 나야만 알 수 있는 AS의 매력 때문에 돈을 더주고 사게 만든다. 반대로 애플은 리퍼 AS로 욕을 먹으면서도 산다.


비단 애플의 문제가 아니다. 80년대 워크맨 세대는 소니나 파나소닉의 첨단 워크맨 밀수입 제품을 AS도 안되는데도 거금을 주고 기꺼이 샀다. 제품 자체가 워낙 우수하면서도 품질이 좋다는 이미지가 형성되니 불평하지 않고 사게 된 것이다.


이제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애플과 전세계에서 경쟁하려는 삼성이다. 삼성의 이미지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이미지까지 더해져 그다지 시선이 안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단 하나다. 고객이 비싸도 매력을 느끼고 기꺼이 살 제품을 만들면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삼성이 애플에 모자라는 근본적 문제다. 다른 것은 주변요소일 뿐이다. 나는 부디 삼성 사장이 자랑스럽게 자사 IT제품을 들고 <대단하죠?>라고 외치며 직접 즐겁게 쓰며 시연하는 발표회장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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