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주변사람에게 <우리 게임 한 판 할까?> 라고 이야기해 보자.

그러면 한국에서는 십중팔구는 <무슨 게임? 스타 크래프트? 아니면 리니지?>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분명히 그저 게임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듣는 사람은 컴퓨터 게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이 이런 대화에 어떤 어색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즉 어느새 <게임>이란 아주 넓은 장르를 <컴퓨터 게임>이 대표해버린 것이다. (혹은 비디오 게임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게임이란 아주 넓은 장르다.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도 게임이고, 바둑이나 체스와 같이 머리를 쓰는 놀이도 게임이다. 심지어 포커나 슬롯머신 같은 도박도 게임이다. 그 가운데 컴퓨터 게임이란 최근에 만들어진, 인류 역사상 아주 짧은 역사를 가진 게임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컴퓨터 게임이 게임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지프>란 한 회사의 상표가 <사륜구동형 소형차> 전부를 대표하듯이 말이다.

게임이라 하면 왜 컴퓨터 게임을 떠올릴까?

원인은 간단하다. 컴퓨터 게임이 가진 무서운 파급력과 재미 때문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열광하다보니 다른 모든 게임보다도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게임이 되었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럼 컴퓨터 게임은 왜 재미있을까? 다소 딱딱할 지 모르지만 그 근본 원인을 한번 생각해보자.

최초의 컴퓨터 게임은 대형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스페이스 워> 였다. 단색의 화면에 아주 단순한 그래픽으로 움직여지는 이 게임의 플레이는 간단했다. 가운데 무거운 중력장 하나를 두고 두 우주선이 서로 미사일을 쏴서 먼저 명중시키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무거운 중력장 때문에 미사일이 곧게 나아가지 않고 휘어가므로 누구도 그 탄도를 정확히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짐작하며 정확한 타이밍에 미사일을 쏘아 상대를 먼저 맞추는 쾌감이 바로 이 게임의 묘미였다.


이 컴퓨터 게임은 마침 표시능력이 떨어져 검은 색 배경 밖에 없는 원시적 컴퓨터 디스플레이와 어우러져 상당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1)당시로서는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컴퓨터란 <첨단기술>을 통해서 2) 역시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배경으로 3) 투쟁심을 자극하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요소들이 어우러진 재미였을 것이다.

이 스페이스 워에 자극받아 당시 대형컴퓨터는 물론이고 이후에 나오는 소형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인 PC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컴퓨터 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서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설립한 아타리(Atati)사는 기초적인 IC와 논리회로를 구성해서 <퐁>이란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다.



스페이스워가 다분히 우주와 전쟁을 다룬 남자 위주의 게임이라면 퐁은 오히려 일반 스포츠에 가까운 게임이다. 작고 가느다란 막대 모양의 바가 공을 쳐서 넘기는 방식의 이 게임도 매우 인기를 얻었다. 퐁은 기본적으로 간단한 스포츠의 매력을 그대로 컴퓨터를 통해 구현해 놓은 것에 재미요소가 있다.


컴퓨터 게임은 왜 재미있을까?

일부러 이렇게 컴퓨터 초창기에 인기있던 게임 두 개를 언급한 이유는 이런 명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과연 우리는 왜 컴퓨터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그 기본 심리는 단 한 가지다.

컴퓨터 게임이 가상으로 어떤 것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특별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가 그려주는 우주 속에서 우주선을 타고 앉아서 미사일을 쏠 수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고 생명의 위기도 없으며 엄청난 돈이 들지도 않는다.

 <스페이스워>는 그런 가운데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우주 전투란 체험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현실 스포츠에 가까운 <퐁>도 마찬가지다.

힘들게 직접 막대기나 판을 들고 공을 준비해서 상대와 서로 튕길 필요가 없다. 육체적인 힘은 최소화 한 채로 오로지 집중력과 반사신경 만으로 승부를 즐길 수 있다. 어떤 스포츠를 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기본적 숙련 시간이나 근력이 없이도 승부를 체험할 수 있다. 


컴퓨터의 그래픽과 사운드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아진 현대에 들어서도 이런 기본 원리는 마찬가지다. 캐주얼 게임인 한게임의 맞고(고스톱)이라든가 넥슨 카트라이더 역시 그렇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하는 카트 레이싱을 가상으로 제공해주는 컴퓨터 앞에서 우리는 아주 간편하게 승부와 재미만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원래 편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상상력이 가미되기를 좋아한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가장 잘 적용되는 게임은 컴퓨터 게임 밖에는 없다. 모든 머리 아픈 계산이나 필요없는 노력과 근력이 드는 준비작업은 필요없이 가장 재미있는 핵심요소만 뽑아서 구현해놓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은 단지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1. 스페이스워에서 중력장이란 요소를 도입한 것처럼 일종의 시뮬레이션 도구로서 이용될 수 있다. 지금 항공기 파일럿 양성이나 운전교육에서도 실제 상황을 리얼하게 구현한 게임을 사용한다.

2. 또한 간단한 조작과 상쾌한 타격감 같은 것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한다.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벽돌을 깨는 것보다는 훨씬 간편하고도 경제적이다.

3.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지능을 개발해주는 도구가 된다. 한창 우리나라에 오락실이 생겼을 때 <지능개발센터>라고 붙여놓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또한 나이를 먹어갈 수록 쇠퇴하는 뇌를 써서 건강을 유지시킨다. 닌텐도의 <매일매일 뇌단련> 같은 게임은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많은 긍정적인 부분 외에도 관련 산업의 성장을 비롯해서 컴퓨터 게임이 짧은 발전기간 동안 인류에 미친 영향은 너무도 크다. 이제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세상이란 마치 전등이 없는 생활처럼 문명이 없는 생활과 동일어가 되었다.

고베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아이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냐고 물었을 때 <닌텐도 게임이 하고 싶어요.>라는 대답은 이런 컴퓨터 게임의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게임이라고 하면 컴퓨터 게임을 떠올리는 이것이 과연 좋은 역할만을 하는 것일까? 이 점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우리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대신 다른 어떤 것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이 가져다 주는 <가상>과 <즉석> 이라는 편리함 뒤에 숨겨진 반작용이다. 게임이 부당한 욕을 먹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미래기술의 산물이라 찬양받으며 무제한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주인공인 <컴퓨터>에게는 죄가 없다. 아무런 감정 없는 도구인 칼로 살인을 했다고 칼에게 죄가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이 곧 컴퓨터 게임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문명의 도구에 불과한 컴퓨터에 대고 가치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중요한 건 사람이고 그걸 사용하는 방법의 문제다.

아주 긴 서론이 되었다.


이런 생각 아래서 나는 앞으로 IT산업의 일부로서 보는 컴퓨터 게임과 사회에 관련된 포스팅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주로 게임이 가장 발전한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 각국의 컴퓨터(비디오) 게임과 그에 따른 전자산업, 컴퓨터 업계의 동향을 분석하는 글이다.

앞으로 <태양의 전자제국> 이란 곳에서 오늘날의 IT계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제시하려고 한다.  게임이 과연 우리 일상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우리가 게임에서 얻을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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