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이란 나라의 식민지로 존재하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국권과 모든 자주권을 빼앗기고 폭정을 견뎌야했던 이 시절에 해방이란 말은 정말로 절실한 단어였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생하면서 일본을 패망시키고 바로 이 해방을 위해 애썼지만 끝내 자주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일본을 패망시킨 건 미국이었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선언을 하고 물러나자 미국과 그 군대가 이 땅에 들어왔다. 일본의 강압적 통치에 시달리던 한국민들은 미국을 <해방자>로서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미국은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다. <점령군>이다.

그렇다. 단지 우리는 지배자만 바뀐 상황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그후 미국의 군정 통치가 일제보다 훨씬 덜 강압적이었을지 모른다. 어느 정도 우리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을 지도 모른다. 미군정하에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다소 풍요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 우리가 자주권이 없는 피점령민이라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너그러운 주인을 만났어도 노예는 그저 노예일 뿐이다. 우리가 노예가 아니기 위해서는 <원하는 정부를 고를 권리> 가 있어야 했다.

흔히 스마트폰계에서 삼성은 횡포만 잔뜩 부렸던 압제자로 비하된다.

삼성이 자사 이익을 위해 국내 소비자들의 편의와 요구를 상당부분 무시한 게 사실이다. 해외에 발매된 좋은 스마트폰 가운데 쿼티 키보드가 탑재된 폰은 <국내 사용자가 원하지 않기 때문> 이라며 내놓지 않았다. 또한 와이파이 기능이 달린 폰은 <이통사의 요구로> 삭제됐다. 대신 지상파 DMB를 넣어주며 <한국형 기능>을 탑재했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해외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자사 이익을 위해 정당한 소비자 요구와 권리를 제한하고 무시하는 행동에 분노가 쌓였다. 그리고 애플의 아이폰 상륙을 계기로 그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아이폰이 보여준 훌륭한 기능과 제한을 두지 않은 성능, 앱스토어란 매력넘치는 유통구조,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가격은 문화적 충격까지 주기에 충분했다.


이에 아이폰을 써본 사람들은 열광했다. 더구나 애플은 철저한 글로벌 스탠다드 정책을 고수했기에 국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이통사>조차도 어떤 요구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애플이 <이통사의 요구로> 와이파이를 삭제하거나, 앱스토어를 막아놓고 한국에 상륙했다면 상황은 다소 달라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폰은 그러느니 차라리 안 들어오겠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아쉬운 건 국내 이통사였고 아이폰은 제 모습 그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제까지 나는 속아서 살고 있었다.

이것이 아이폰을 접한 대부분 소비자들의 분노였다. 막연히 뉴스에서 해외소비자들이 삼성 휴대폰 최고에요! 엘지 휴대폰 좋아요! 하는 말만 듣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살던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2년전에 나왔다는 스마트폰인 아이폰 하나가 프라다폰이니 초콜릿폰이니 하는 고가 첨단 폰보다 기능과 디자인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래서 시장은 개방되어야 하는 거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교훈이 있다. 세상의 어떤 좋은 회사라도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지 않으면 나태하고, 소비자를 우습게 여긴다. 우리나라의 일등기업이며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그렇게 기대를 걸었던 삼성이기에 그 배신감은 훨씬 크다.


오늘날 삼성이 스마트폰 유저와 앱 개발자를 비롯해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욕을 먹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대표기업이며 그러기에 다른 나라 소비자보다 더 한국 소비자에게 잘 해주고 이익을 지켜주리라 생각했던 삼성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 지위를 이용해서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비싸게 팔면서 공정한 자유경쟁마저 방해했다. 이통사에게 아이폰 도입을 늦춰달라고 했던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애플을 좋아하고 삼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또한 나 역시 애플의 혁신제품을 좋아하며 아이폰을 탐낸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애플은 소비자를 위한 <해방군>이 아니다. 단지 또다른 <점령군>일 뿐이다. 일제 통치가 괴로웠다고, 미군통치가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라고 해서 미군정을 찬양해서야 다시 무지한 피점령민이 될 뿐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천사가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은 그래서 삼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삼 강조되어야 한다.

애플이 어째서 기존의 휴대폰 회사와 이통사의 <성역>을 깨뜨리고 소비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었을까? 그건 태생이 전혀 관계없는 컴퓨터 회사였기에 기존의 기득권이나 이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휴대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이팟을 내장한 스마트폰인 아이폰이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스토어와 아이튠즈 역시 이통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애플 특성상 자기가 주도권을 쥐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것을 뒷받침해준 사람은 애플을 위해서 언제라도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 기존의 팬보이들이었다.


삼성은 왜 애플과 비교되며 비난받고 있을까?

그것은 삼성이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되었고, 애플이 그 기득권을 타파하려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이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것을 열어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런 위치와 이미지를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인심을 잃은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다. 잘 하는 일이 있어도 비아냥을 듣고, 못하는 일이 있으면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할 뿐이다.

어차피 이제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지고 있던 실질적 기득권이란 거의 사라졌다. 그러니 속좁게 KT에 불이익을 준다든가, 아이폰에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상대를 인정하고는 당당하게 도전자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제품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부터라도 인심을 얻으며 다시금 정상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다.

소비자 역시 애플도 점령군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이제 슬슬 기득권자가 되어가는 애플은 폐쇄적인 플랫폼 정책, 불투명한 앱 심의과정, 아이튠즈의 독점, 최근의 결함에 대한 무성의한 대응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직은 혁신이란 이미지에 가려 그 단점이 보이지 않을 뿐 언젠가는 참기 힘든 수준으로 터져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서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많은 스마트폰들이 애플의 시장과 기득권을 노리고 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욕하던 삼성 역시 재기를 노리며 참가하고 있다. 물론 삼성은 일부일뿐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피점령민이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삼성이 싫으면 즉시 애플로 바꿀수 있듯, 애플이 횡포를 부리면 즉시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웹OS로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 그랬듯 애플 역시 언제든 기득권에 취해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가 되면 애플 역시 비난받아야 하며 만일 삼성이 우리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그쪽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비자가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다.

누군가가 말한 한마디가 떠오른다.

인격체인 사람은 양심이 있지만 이익 집단인 회사에게는 오로지 이윤추구 만이 있을 뿐이다.

삼성을 욕하거나 애플을 찬양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애플 역시 양심이 있어서 우리에게 잘해주는 게 아니다. 부디 모두가 이 말을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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