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가운데 이런 장면이 있다.

아나킨(다스베이더)이 탄 경주차량이 시동이 안걸려 다른 차량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게 된다. 잔뜩 마음을 졸이며 보던 관객은 그 순간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지만 결국 아나킨은 앞 선 모든 차량을 추월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출발이 늦는 것만으로도 다른 경쟁자를 따라가는 건 너무도 힘들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공평치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영원히 낙오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그와 비슷하다. 현재 단연 앞서 가고 있는 것은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이다. 그리고 그 뒤를 안드로이드폰을 앞세운 각 회사들이 추격하고 있다. 드로이드X의 모토롤라, 갤럭시S의 삼성, 디자이어의 HTC가 그나마 일찍 추격에 들어갔다면 그 뒤쪽에서는 전통의 명문 노키아, 소니에릭슨 같은 기존 휴대폰계의 거물들이 허둥대며 출발했다.

그런데 LG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와 삼성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기업 LG의 모습은 그간 어디에도 없었다. 아예 출발선에서 시동조차 걸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모든 경쟁자들이 출발하고 나자 뒤늦게 옵티머스Q를 발표하며 시동을 걸고 출발선을 떠났다.


현재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앞서가는 애플과 뒤따라가는 삼성이 양대 구도를 이루고 있다. 모토롤라와 소니, 블랙베리는 워낙 국내에 기반이 없는 터라 한계가 뚜렷하다. 그런데 기반을 쌓아두고 있던 LG는 어쩐 셈일까? 치열하게 애플과 삼성을 서로 옹호하는 사용자들도 LG는 아예 언급조차 않는다. 존재감 자체가 없는 셈이다.

애플과 비교하며 갤럭시S와 삼성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사용자들도 LG는 거의 무시한다. 당연한 것이 아예 LG는 그간 스마트폰다운 스마트폰을 내놓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아예 포기했나? 그냥 피처폰으로 끝까지 장사하려나?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분야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통신상의 치열한 <애플빠> , <삼성알바> 논란에서도 엘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심지어 옵티머스Q를 발표한 지금 시점에서도 <엘지알바>냐는 말은 어디서도 하지 않는다. LG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알바를 쓸 능력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LG는 휴대폰 업계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대세이자 미래가 되어 버린 스마트폰에 투자한 바도 없고, 제품도 내놓지 않았다는 건 대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먼저 해외시장의 반응이다.

지난달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트지앤애널리틱스(SA)는 LG전자의 휴대폰 부문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7.3%에서 4.0%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다음은 국내 시장의 반응이다.

관련업계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으로 올렸던 LG전자의 ‘위기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휴대폰 부문 부진이 LG전자의 악재로 작용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31일 공개된 LG전자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1분기 이동통신(MC) 부문에서 3조4,21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2009년 1분기에 약 1조원 이상 줄어든 액수다. 여기에 영업이익은 1/10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MC 부문에서 2,39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반해, 올해 1분기에는 단 235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금 업계 상황은 스마트폰을 잡지 못하면 마진이 거의 없는 레드오션 시장에서 출혈경쟁에나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다. 엘지는 <스마트폰이 이렇게 빨리 주류가 될 줄 몰랐다.>라고 하는데 참으로 그 판단미스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LG는 기존 휴대폰에서도 1등 기업은 아니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노키아와 삼성에 이어 3위였다. 국내에서도 초콜렛폰 등 인기 휴대폰을 쏟아냈지만 삼성에 이어 2위였다. 따라서 정상적이라면 1위가 되기 위해 치열하고 공격적인 혁신을 계속해야 하던 참이었다.


따라서 때마침 닥쳐온 세계시장과 국내의 스마트폰 열풍은 잘만 이용했으면 대번에 1등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애플은 몰라도 최소한 삼성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비와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다.

물론 LG도 지난 6월, 서둘러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옵티머스Q를 내놓았다. 이로서 일단 시동을 걸고 출발선은 넘은 셈이다. LG에서 국내에 최초로 내놓은 본격 스마트폰인 이 옵티머스Q 는 현재의 엘지가 가진 문제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자잘한 점은 제쳐두고 크게 분류해 말해보자.

옵티머스Q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버전이다. 최신인 2.1을 칩셋에 최적화를 못시켰기에 내놓은 안드로이드 1.6은 어플사용에 제한도 많을 뿐더러 실행속도 자체가 느리다. 2.1은 물론 앞으로 나올 2.2 버전의 획기적인 동작속도 개선을 한동안 적용시킬 수가 없다. 1Gh 스냅드래곤 프로세서의 성능을 낭비하는 선택이다. 내장된 앱이나 일반적 앱으로는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아마도 고성능이 필요한 앱이 아예 돌아가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건 순전히 LG가 스마트폰의 출발이 늦었기에 감내할 수 밖에 없는 페널티다.

희망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인지 옵티머스Q가 비교적 충실한 하드웨어 사양을 지녔으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사용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어 채택 자체를 하지 않았던 쿼티 자판이 들어간 점은 훌륭하다.


시장에는 다양성이 필요한데 블랙베리를 좋아하는 팬들이 꽤 많음에도 스마트폰 가운데 쿼티 자판이 없었다. 아이폰이나 갤럭시S조차도 오타율이 높은 가상키보드를 쓴다는 점에 비해 LG의 선택은 나름 좋은 도전이었다. 이렇듯 출발은 늦어도 대신 다른 회사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든가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펴는 등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위기의 LG 스마트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영화처럼 LG가 뒤늦게 출발해서 모든 경쟁자를 따라잡고 나중에는 모두 추월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열려있다.


LG에게는 국내에서는 다른 경쟁자들이 없는 장점도 있다.
LG 파워콤, LG 데이콤, LG 텔레콤이라는 세 회사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LG 유플러스다. 즉 유선 인터넷 회선, 인터넷 통신 사업, 휴대전화 사업의 기반시설과 인력이 한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들을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 통합해서 기획해보면 사용자에게 대단한 매력이 있는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스마트폰 업계는 치열한 경쟁 중이다. 제일 앞서 가는 애플도 결국은 추격당하는 입장이다. 레이저에 안주하다 추락한 모토롤라나 프리미엄 이미지만으로 팔다가 허둥대는 삼성등도 확고하게 지위를 굳힌 상태가 아니다. 뒤늦게나마 LG가 분전 한다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고객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 정말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 그리고보니 빠뜨린 게 있다.
앞선 저 영화 장면에서 주인공 아나킨은 뒤늦게 출발해서 멋지게 우승했지만 그건 그가 주연이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에서 존재감 없는 조연 하나는 뒤늦은 데다가 역주행하다가 허무하게 경주에서 낙오됐다. 늦게 출발했으니 무조건 나는 주인공이고, 이길 수 있다는 만화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는 주연이 될 것인가? 조연으로 머물 것인가? 미래는 오로지 앞으로 LG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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