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와 방통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단말기유통법이 시행 6개월을 맞아 위기를 맞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 법이 추구하는 이용자 차별도 없어지지 않았고, 통신비도 내려가지 않았다. 또한 이통사, 단말기 제조사, 단말기 유통점, 사용자 가운데 어느쪽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규제기관마저도 단속을 위한 인력과 노력이 더 들어가면서도 더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에서는 단말기유통법이 사실상 법 취지를 달성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보고 다음 단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분리고시제 도입, 기본료 전면폐지,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있다. 각기 다른 단계의 규제이고 추진하는 의원도 다르다. 하지만 주장하는 공통목표는 하나로서 '가계통신비 인하'이다.



분리고시제는 본래 단말기 유통법에 들어있었던 내용이다. 현재처럼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만 공시하지 말고 단말기 제조사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공시해서 보조금 지급액과 경로를 완전히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삼성을 비롯한 일부 단말기 제조사에서 글로벌 경쟁력 약화와 영업비밀준수를 앞세워 반대한 결과 법안에서 빠졌다. 이제 단말기 유통법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이 분리고시제를 다시 도입해야 효과가 나올 거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분리고시제는 엄밀히 말해서 '공정성'을 담보하는 수단이지 인하효과가 나오는 제도는 아니다. 단말기 제조사와 이통사가 각각 보조금을 투명하게 공시해도 그 액수가 약속이나 한 듯 기대치보다 적을 수 있다. 그러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공정하게 적은 혜택만 받는 셈이다. 또한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적다. 국내 단말기 제조사 가운데 현재 최신 스마트폰을 내놓는 곳은 삼성과 LG 둘 뿐이다. 한국 시장에서 의미있는 숫자로 팔리는 외산단말기는 아이폰 뿐이며 애플은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말기 제조사의 경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본료 폐지는 이통 3사가 매달 1만 1,000원씯 받는 기본료를 전면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원래 기본료는 초기 자본소요가 큰 이동통신 망투자를 위한 설치비를 보전하기 위한 성격이었다. 이제 망구축이 대부분 완료된 이상 기본료 폐지는 당연하다는 의미다. 가입자당 1년에 13만 2,000원을 받는 기본료를 폐지하면 분명 가계 통신비는 낮아진다.


다만 이 경우에 이통 3사의 기본료 매출 총액이 7조 6,000억 원이라고 볼 때 이것을 현재 가격구조 그대로 폐지할 경우 이통3사의 영업이익 합계가 단숨에 큰 적자로 전환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론상 2조 7,000억원 흑자에서 4조 6,000억원 적자로 전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본료 폐지를 주장하는 우원식 의원은 "이통3사가 번호이동 고객 몇 십만을 모으려고 마케팅비 7조 원을 쓰는 게 정상인가?”라고 하면서 “요금인하를 강제해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경우 풍선효과처럼 인하된 기본료로 인해 줄어든 마케팅 비용이 단말기 보조금 축소로 나타난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이통사가 요금체계를 바꿔서 기본료가 아닌 데이터 사용료와 음성통화료 등을 올려 손해를 메우려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본료 폐지로 인한 가계 통신비 인하 금액만큼은 대부분의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고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케팅 비용은 이통사가 마음대로 특정 시기에 특정 가입자에게 줄 수 있지만 기본료 폐지로 인한 인하효과는 해당 요금제 가입자 전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주장하는 '가입자 차별 해소효과'만큼은 분명한 셈이다.


또한 실제로는 이통 3사가 적자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기본료 폐지로 4조 6,000억원 적자가 되더라도 우상호 의원의 주장에서 제기한 마케팅비 7조원을 쓰지 않는다면 2조 4,000원이 남는다. 이론적으로는 이 금액에서 이통 3사가 마케팅비를 알아서 쓰면 최소한 적자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단말기 판매점과 이동통신 가입유통점을 완전히 분리하는 법안이다. 이렇게 되면 이통사는 통신서비스를 팔면서 약정 기간에 따른 할인만 제공할 뿐 단말기 보조금 자체를 줄 수 없다. 따라서 단말기유통법이나 분리고시제는 필요가 없어진다. 다만 이 경우에 지적되는 비판은 이미 난립한 전국 유통점들의 업종전환과 영업침체이다. 7조원이라고 지적된 마케팅비 거품으로 유지되는 시장에서 거품이 사라지면 고통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회사나 별도 법인 등 편법을 써서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역시 있을 것이다. 


공존할 수 있는 두 제도인 기본료 폐지와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동시에 실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본료 인하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을 줄 수 없다면, 아예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될 완전 자급제 상황을 만들어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해서 기본료가 아닌 사용료를 올리려고 할 때는 아직 살아있는 '요금인가제'가 방벽이 되어줄 것이다. 요금인가제는 이통사가 요금을 인상하려고 할 때 규제당국의 인가를 받아야만 하도록 규정한 제도이다. 이 외에도편법을 차단하면서 자연스럽고 이용자 차별없이 가계통신비를 낮추는 방법은 좀더 많을 것이다. 관련 당사자들이 좀더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