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까지만 해도 단말기 유통법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던진 회심의 한 수 였다. 


그 때까지 이동통신사들은 최신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을 책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특정시기에 특정 대리점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집중시켰다. 나온 지 몇 개월도 안된 단말기가 거의 공짜로 시중에 풀리고 일부 사용자들은 새벽까지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알아냈다. 이렇게 줄지어 신청해서 한정된 혜택을 누리는데 갤럭시S3가 17만원에 풀리고 아이폰5S를 비롯해 다른 단말기도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어느새 이런 '대란'은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행사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에 미래부와 방통위는 부당한 이용자 차별을 없애고 이런 대란에 소모되는 마케팅 비용을 골고루 사용자에게 나눠주게 한다는 취지에서 단말기유통법을 만들고 입법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통사의 지원금과 단말기 제조사의 지원금을 분리해서 고시하게 하는 '분리고시제'가 논란을 불렀다. 사업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이며 글로벌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삼성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결국 분리고시제는 제외된 채로 단말기 유통법이 통과되었다.


당시 단말기유통법에 반대하는 측을 설득하기 위해 규제당국이 내세운 명분은 정부의 정책과제인 '가계 통신비 인하'였다. 법을 만드는 차별철폐라는 공정성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일반 사용자의 호응을 얻기 힘들기에 내세운 명분이었다. 이통사가 특정 사용자에게만 보조금을 집중해서 줄 수 없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보조금이 모든 사용자에게 골고루 나누져서 요금 인하와 단말기 구입비 인하로 나타날 거란 예상이 핵심근거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단말기유통법을 시행하게 되자 상황은 전혀 반대로 나타났다. 이통사들은 일선 유통점에 배정되는 단말기 지원금 규모를 크게 줄였을 뿐, 별도로 요금인하를 하지는 않았다. 또한 단말기 구입 시에도 지정된 최저 보조금만 제공할 뿐 보조금 규모를 두고 경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단통법이 오히려 체감 가계 통신비를 올려버린 결과가 된 것이다.


당황한 미래부와 방통위는 긴급 간담회를 열어 이통 3사와 단말기 제조사 대표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직접적으로 단말기 유통법에 따른 효과를 주문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통신비 절감을 요구하는 국민과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기업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만 이 법을 이용한다면, 특단의 대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행정적, 입법적 규제로 징벌하겠다는 압박이었다.


이에 이통사는 가입비 단계적 폐지와 순액요금제 같은 위약금 없는 요금제 개편을  했으며 기본제공 데이터량을 약간 늘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요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사용자가 직접 다달이 내면서 체감하는 통신요금은 거의 줄지 않았다.



시행 2개월 후에도 이렇듯 아무런 요금 인하효과가 없자 다시 단통법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다시 해명을 요구받은 미래부와 방통위는 시행 초기라는 시간을 방패로 삼았다. 제대로 된 효과가 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나마 남아있던 단말기 제조사 가운데 하나인 팬택이 단통법과 이통사 영업정지 등으로 인한 실적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단말기 경쟁사 한 곳이 사라진 것이다.


애플 아이폰6가 국내에 출시되자 단통법은 다시 한번 시련을 맞았다. 그나마 이용자 차별을 없애는 데는 성공적이라는 규제당국의 자평도 무색하게 '아이폰6 대란'이 벌어졌다. 규제당국이 불법행위를 포착하고 제재를 경고했을 때는 이미 일정 매출이 이뤄진 뒤였다.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조차 없애지 못했다.



2015년 4월, 삼성 갤럭시 S6가 국내 출시된 지금은 단통법 시행 6개월째이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만큼 더이상 시행시간이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단통법은 가계 통신비 인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출시된 갤럭시S6를 향해 이통사들은 그다지 높은 보조금을 풀지 않았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조금씩 금액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결국 단통법은 단말기 구입비를 크게 인하해주지도  않았고, 가계 통신비를 줄여주지도 못했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대란과 보조금 증가로 인해 이용자차별도 줄지 않았다.


단말기유통법이 어째서 통신비를 내리지 못할까? 궁극적인 결과인 '통신요금 인하'와 '단말기 보조금 증가'를 규제당국이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기관은 오히려 이용자차별 철폐라는 공정성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통사 입장에서는 사용자 요금을 일제히 내리는 것보다는 다같이 유지하는 편이 좋다. 이전에는 특정 시기에 특정 사용자에게 보조금을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보조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두고 있는 셈이다. 


주변부에 불과한 가입비 철폐나 위약금 없애기 같은 정책만 내놓는 것은 그 이유이다. 이통사가 원하는 것은 모든 가입자에게 요금 1만원을 일괄적으로 할인해주는 '통신비 인하' 혜택이 아니다. 


특정시기에 1퍼센트 가입자에게 100만원을 할인해주면서 새 단말기를 사게하고 고가요금제를 약정으로 묶어 가입시키는 마케팅을 원한다. 이런 마케팅은 매우 잘 먹히며 그만큼 얻는 것이 확실하다. 이통사로서는 단통법의 핵심으로 제기되는 이용자차별을 당연히 해야하며 마케팅 자금 확보를 위해 고정 통신비는 가능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장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공정성에 초점을 맞춘 단말기 유통법은 통신비 인하효과를 얻기 어렵다. 규제당국이 궁극적인 목표를 이용자차별 철폐라는 공정성보다는 가계 통신비 인하라는 결과에 두고, 적극적으로 이통사를 압박해야 비로소 가계 통신비는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로 등장하는 것이 '단말기 시장의 활성화'란 명분이다. 이제까지 국내 이통시장은 혼탁하면서도 거품이 잔뜩 끼어 최신 단말기 소비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누군가는 단말기를 제값주고 사는 가 하면 누군가는 여러 대의 휴대폰을 구입하고 중고로 파는 '폰테크'로 돈을 버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단말기 구매 욕구를 꺾어 유통업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건 얼핏 논리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거품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가계 통신비는 다시 오를 것이며 결코 내리지 않는다.  


공정성을 강화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면 가계통신비가 인하될 것이란 논리는 제법 그럴 듯 하지만 왜곡된 현재 시장 구조에서는 실현가능성이 낮다. 결국 규제당국이 오로지 '통신비 인하'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매진할 때 비로소 사용자가 체감하는 통신비가 내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