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시대를 나눌 때 쓰는 '디지털 세대'라는 말이 있다.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는 시기에 태어난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 이전 세대들이 카세트테이트나 레코드로 음악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하며, 주판알을 튕겨 계산을 하던 '아날로그'를 경험한 데 비해, 디지털 세대는 철저히 디지털 기기로 시작해서 그 발전을 목격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요즘 어린 세대들은 CD나 DVD 조차도 익숙하지 않다. 음악은 아이튠스나 멜론에서 파일 형태로 다운로드 받아보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네트워크 세대'이며 나중에는 다운로드조차도 생소한 '클라우드' 세대가 등장할 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하는 통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벨이 수화기를 만들고 에디슨이 탄소송화기를 만들며 시작된 음성통화는 아날로그 기술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음성이나 영상을 데이터화해서 보내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음성이 그저 멀티미디어라는 범주에서 처리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하나가 된 것이다. PC를 이용해서 음성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서 전송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해오던 일이다.


이렇듯 당연한 변화이지만 그런 변화가 실제 생활 속에서 커다란 전환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되는 때는 많지 않다. 세상은 그걸 흔히 변혁이나 혁신이라고 부른다.





2015년 5월 8일, KT는 데이터 선택요금제를 출시했다. 이제까지 음성통화와 데이터 용량을 모두 가변적으로 정해 복잡하게 적용했던 요금제를 크게 단순화시켜 음성통화는 무제한으로, 데이터 제공량에서만 차이를 둔 요금제였다.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최저 요금이 월 29,900원이다. 월 49900원 요금제까지는 통신사 관계없이 무선-무선 통화를 무한으로 제공하며 54,900원 이상 요금제에서는 유선 - 무선간 통화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 전화는 곧 음성통화를 위한 장치라는 고정관념으로 본다면 파격적인 요금제이다. KT는 ‘데이터 선택 요금제’로 음성과 문자를 무한으로 제공하며 남는 데이터를 이월하고 모자라는 데이터를 당겨오는 '밀당' 기능까지 탑재해 화제를 모았다.


KT는 이 요금제로 인해 사용자가 자기 데이터 이용량에 맞는 요금을 선택할 수 있기에 과도한 요금제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1인당 평균 월 3,590원, KT LTE 고객 1천만명 기준 연간 총 4,304억원의 통신비 절감 효과를 예측했다.


이에 경쟁 이통사인 SKT와 LGU+도 데이터 요금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데이터 선택 요금제에 대한 반응이 뜨겁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대응 차원에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게 된 것이다. 다만 SK텔레콤은  국내 이통시장 점유율이 50%이기에 정부가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을 사전에 인가하는 ‘요금인가제’ 대상이라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LGU+ 역시 선수를 빼앗긴 이유로 좀더 매력적인 요금제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선택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필수요소라는 점이다. 음성이 아날로그 데이터로서 회선을 흘러서 다시 아날로그로 전달되는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지금은 어떤 음성이나 문자도 무선 네트워크로 가기전 단말기에서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며 상대 단말기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디지털 데이터이다. 귀로 듣기 바로 직전에야 다시 아날로그 음성 데이터로 변환된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음성과 데이터의 차이는 없다. 음성은 그저 압축률이 매우 좋은 데이터의 하나일 뿐이며 문자 역시 글자 수에 따라 몇 바이트의 용량인지를 계산할 수 있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통사라면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갈 수록 적어지는 음성통화와 문자를 주 수익원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외국에서도 음성통화는 무제한 제공하고 데이터로만 차별하는 요금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여러가지 이유로 중계기 사이에서 음성통화를 위한 선과 데이터를 위한 선을 따로 분리해두고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난이나 응급 등 위급한 상황에서 데이터 불통은 위험성이 적지만, 음성통화 두절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신망이 완전히 안정화되고 고도로 수용용량이 늘어나는 미래가 되면 음성 데이터 역시 결국 하나의 선으로 일반 데이터와 함께 전송될 것이다. 


따라서 압축률이 좋아서 그다지 망을 많이 쓰지 않는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은 결코 통신사의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단순화해서 관리비용을 줄이고 비용과 노력을 집중하게 되면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한다.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이런 경쟁으로 가는 서막을 연 것에 불과하다. KT가 먼저 내놓고 다른 이통사가 따라갈 예정인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앞으로 이통사에게 데이터 그 자체에 집중하는 서비스 경쟁 체제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