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적으로 컴퓨터를 쓴다. 하지만 컴퓨터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일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는 게임이 중요하고, 매일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에게는 업무처리용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컴퓨터란 각자 필요한 일을 해주는 도구로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보통 전자식 컴퓨터의 원조라고 말하는 애니악은 대륙간 탄도탄의 탄도계산을 위해서 생겨났다. 군사용 목적이었던 셈이다. 사실 엄청난 돈과 공간, 인력이 투입되어야 했던 초기 컴퓨터를 만들 엄두를 내려면 군사용 외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요구되지만 막상 쓰임새는 제한되고, 제작에 실패할 위험까지 있으니 말이다. 결국 컴퓨터는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초에는 그런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결국 기술은 생활을 위해 변신한다. 마치 아이폰의 인공지능 시스템 시리가 미군의 프로젝트에서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마치 창과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좋은 변화이다.


슈퍼컴퓨터. 우리가 지금 쓰는 개인용의 작은 컴퓨터가 아니라 큰 면적을 차지하고는 엄청난 계산속도를 자랑하는 컴퓨터가 있다. 이것은 기상예보를 위해 태풍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복잡한 과학수식을 계산하고 천문학에서 우주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할 때 쓰인다. 의학연구에서 유전자의 구조를 연구할 때도 마찬가지로 잘 이용된다.


그런데 이런 슈퍼컴퓨터를 스마트폰에 쓰이는 프로세서로 만들겠다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그것도 바로 한국의 삼성전자가 만드는 칩이다. (출처)





유럽연합의 슈퍼컴퓨터 유치 계획이 서서히 외양을 갖추고 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개최된 ‘슈퍼컴퓨팅 컨퍼런스(SC) 2012′에 참석한 유럽연합이 미국 슈퍼컴퓨팅 기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유럽연합의 슈퍼컴퓨터 계획은 미국의 고성능 슈퍼컴퓨터 경쟁과 사뭇 다른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해외 IT 전문 매체 컴퓨터월드는 미국 현지시각으로 11월15일, 유럽연합이 영국 프로세서 디자인업체 ARM의 저전력 프로세서를 이용해 슈퍼컴퓨터를 제작 중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5′ 모바일 프로세서가 쓰일 예정이다.


엑시노스5 듀얼코어는 삼성전자의 최신 구글 ‘크롬북’에 쓰인 프로세서다. 몽블랑 프로젝트에도 이것과 똑같은 모바일 프로세서가 담긴다. 몽블랑 프로젝트의 목표는 비교적 소박하다. 첫 번째 목표는 우선 2013년 연말 발표될 예정인 전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 ‘톱500′에


ARM 기반 프로세서로 꾸민 슈퍼컴퓨터의 이름을 올리는 일이다. 500위권 진입이 목표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비교적 성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ARM 기반 프로세서가 슈퍼컴퓨터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는 데 의미가 크다.


어째서 다른 좋은 프로세서를 놓아두고 스마트폰에 쓰이는 프로세서로 슈퍼컴퓨터를 만들려는 것일가? 이것은 바로 저전력 소모라는 최고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컴퓨터인 애니악은 진공관을 썼다. 진공이 된 유리관과 필라멘트로 이루어진 진공관은 굉장한 열이 발생한다. 이런 열에 의해 전력을 많이 쓰며 수명도 짧다. 진공관 컴퓨터에 드는 대부분의 비용은 이런 진공관을 갈아주고 열을 식혀주는 냉각에서 발생한다.





현대의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프로세서가 달린 컴퓨터는 냉각수까지 이용해서 열을 식혀야 한다. 그런데 그 열은 컴퓨터에게 있어서는 그냥 낭비일 뿐이다. 컴퓨터는 난방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력이 될 수 있으면 최대한 계산에 쓰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피할 수 없이 열이 많이 발생한다면 소모되는 전력만 많아질 뿐 정작 계산에는 덜 쓰인다는 의미다.


때문에 어떤 슈퍼컴퓨터는 병렬처리 방식을 쓰면서 플레이스테이션에 쓰인 셀 칩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더 적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도 높은 계산효율을 얻어내기 위해서이다. 거기에다 양산을 통해 비용이 싸진 범용 프로세서라면 더욱 좋다.


삼성의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는 현재 이런 상황에 매우 알맞다. 따로 냉각팬이나 히트파이프 같은 것이 붙지 않을 정도로 적은 열을 내면서도 쿼드코어의 처리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 용도로 양산을 하고 있으므로 개당 단가도 싼 편이다. 슈퍼컴퓨터에 매우 알맞기에 선택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슈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물음을 던져보자. 이런 프로세서의 이용과는 별도로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까? 놀랍게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드웨어적으로 본다면 스마트폰은 이미 하나의 작고 정교한 고성능 컴퓨터이다.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갖추고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안드로이드폰의 기반이 되는 리눅스 커널은 슈퍼컴퓨터를 돌리기에도 적절하다. 여기에 병렬처리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추가하면 여러 대의 스마트폰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다. 한마디로 수백개, 수천개, 수만개의 스마트폰이 연결되어 하나의 계산을 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드 컴퓨팅이라는 개념이 있다. 예전에 PC에서도 쓰인 이 개념은 우리가 평소에 쓰지 않고 남아도는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연구소에 기부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깔면 보이지 않는 백그라운드에서 조금씩 다른 계산이 실행되고 그 결과가 인터넷을 타고 연구소에 전송된다.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가 병렬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연결되고 그리드 컴퓨팅을 한다면 엄청난 슈퍼 컴퓨터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곧 그런 종류의 앱이 나오지 않을까? 마치 재능기부처럼 스마트폰 남는 계산능력을 기부해서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나름 흐뭇한 일이 아닌가?

 

 

원문참조 : 한겨레 오피니언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