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한번 예로 들어보자.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특이한 시장이다. 가전제품에서 일본 브랜드가 아닌 제품은 성공하기 힘들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도 일본제품이 아닌 외국 브랜드가 정착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일본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탓하기도 한다. 일본 소비자들이 자국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서 그렇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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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나 엘지 같이 세계 가전시장을 석권하는 기업도 일본에 들어가서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원인을 찾았고 나오는 결론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일본 소비자의 의식을 탓하는 내용이 있었다. 외국산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철수한 야후코리아의 임원이 남긴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해서 한국철수를 결정한 야후의 결정에 대해 한국 소비자를 탓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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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로 국내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한 야후코리아의 한 임직원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작심한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1일 '한국을 떠나는 외국기업들: 침략자를 몰아낸 집주인의 승리인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 글은 4일 현재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리트윗(퍼나르기) 되면서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다.


그는 야후코리아 철수를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가 'IT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점'이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실상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외국계 기업이 토종기업과 승부를 겨루기엔 출혈이 너무 큰 데다 명분도 딱히 없을 정도로 한국시장은 매력도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시장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국내시장에서 짐을 싼 외국계 기업들의 철수 성명엔 '좀더 효율적으로 성공을 도모할 수 있는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하여 한국 시장을 버린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해 '한국은 외국기업이 효율적으로 성공을 도모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풀이했다.


그는 외국 기업들의 국내 시장 철수 이유를 3가지로 들었다. 이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이란 소제목의 내용으로 "비슷한 환경과 조건이라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덜 시달리는 시장을 택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은 로컬 기업들로 선두경쟁이 치열해 피를 흘리면서까지 시장에 진입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본 한 네티즌은 '한때 까다로운 소비자 심리가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역으로 독이 되고 있다'며 그의 주장을 거들었다.


그는 블로그 글 말미에서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소비자에게 있다"며 "자신을 편하게 해주기만 하는 기업의 맞춤형 상품만을 소비하는 수동적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다양한 상품들을 사용해 보면서 보다 국제적인 시야를 갖추려는 능동적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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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와 해석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의문을 품게 되었다. 스스로가 노력을 쏟은 기업이 결국 나쁜 실적을 보이게 된 임원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야후코리아는 엄밀히 말해서 포털기업이다. 눈에 보이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곳이 아니다. 광고에 관련된 오버추어를 포함한다고 해도 직접 소비자를 탓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저 임원은 한국과 일본의 소비자가 까다롭다고 말하면서 그에 비해 시장규모가 작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니까 희생을 무릅쓰고 노력할 가치는 적은데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맞는 말일 수 있다. 미국처럼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되기에 덤핑이나 독과점 판정을 맞고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더라도 차지할 가치가 있는 시장은 아니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워낙 많은데다 정보기술이 떨어져서 외국 기업이 약간만 기술을 보여줘도 신기한 눈으로 보아주는 소비자가 많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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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소비자가 까다로운 이유는?


그러나 저 임원이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극동 아시아의 나라라는 점 이외에 두 나라는 산업의 고속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환경이 바뀌고 기술이 들어오고 삶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한국의 IT소비자를 외국에서 평가하기를 기술에 상당히 개방적이라고 한다. 새로운 제품을 남들보다 먼저 써보려는 얼리어댑터적 성향도 강하다. 일본의 전문가용 카메라 회사가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 결점까지도 찾아내서 회사에 수정을 요구할 정도이다. 


한국 IT소비자에게 있어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스스로를 편하게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제적인 시야나 외국 업체의 사업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한국 IT소비자의 모습은 야후가 주장하는 폐쇄성이나 배타성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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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한국 IT소비자가 까다로운 이유는 쉴새없이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이다. 야후코리아의 포털이 새로운 것을 내놓았다면 분명 잠시 눈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별다른 편리한 점을 찾지 못한다면 미련없이 다른 서비스를 찾아간다. 오버추어의 경우도 여러가지 문제는 있지만 결국 다른 업체가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기술이나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국 소비자 책임으로 전가한다는 건 개인적 위안은 될 수 있어도 사회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일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어떤 경우에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권자를 탓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인의 금기는 소비자를 탓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동영상에 치중하다가 MP3로 인한 음원붐을 놓친 일이 있었다. 나중에 분석가들이 그 사실을 지적하자 잡스는 실패했을 때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큰 실수를 했습니다. 마치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열심히 노력해야했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야후 코리아의 저 임원은 잡스조차 하지 않았던 특정 소비자 탓을 하고 있다. 아마도 스스로가 잡스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