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한국을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e스포츠의 존재이다. 외국에서는 아직 게임을 스포츠라고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되지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무슨 철학적 논란이나 도덕적 논의 때문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남이 하는 게임을 열광하고 봐줄 팬이 없고, 게임을 하는 게이머에게 많은 돈을 투자해가며 선수로 키워줄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그것이 있다. 주로 스타크래프트에 편중되긴 했지만 그것이 있었기에 한국은 e스포츠를 제대로 탄생시킨 강국이었다.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된 지도 오래되었다. 바둑이나 장기가 스포츠라면 스타크래프트가 스포츠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바둑과 e스포츠는 그 특성까지도 상당히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역사적 전통이 있느냐 하는 점과 좋아하는 팬의 연령층 정도가 될 것이다.


어쨌든 억대연봉을 받으며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천재 플레이어가 나왔고 그들이 주로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에 맹활약했다. 바둑에서의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 나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게이머 임요환' 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근래에 스타크래프트 열기가 좀 시들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한 언론에 프로게이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한때 상당한 실력과 인기를 모았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지금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처)





금요일 밤 서울 강남역 일대는 넥타이 부대로 붐볐다. 남자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갈 지(之)자 걸음을 이어갔다. 그는 그런 일행만 골라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엔 '강남 전 지역 픽업 가능'이란 문구와 함께 그의 이름 석 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유흥주점 광고지였다. 일부는 그를 알아본 듯 빤히 쳐다봤다. 그래도 상관없다. 자존심 따윈 버린 지 오래다. 찬란했던 과거는 이미 가슴속에 묻었다.


'영업부장' 성학승 씨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손님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영업부장은 손님 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친절해야 한다. 성 씨는 매일 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쉴 새 없이 허리를 굽히며 사회를 배워가고 있다. 

  

씁쓸함을 지우려는 걸까. 카페에서 만난 성학승 씨(29)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영업부장'이다. 하지만 7년 전만 해도 대기업에 소속된 유명 프로게이머였다. 컴퓨터게임 '스타크래프트(1998년 출시)'를 즐겼던 세대라면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 팬들은 '회사 부장님'을 연상시키는 넉넉한 외모에 순박한 표정으로 저그(스타크래프트의 한 종족)를 플레이하는 그에게 '부장 저그'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팬 카페 회원만 1만 명이 훌쩍 넘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 처음 유흥주점에 발을 담갔다. 보통 유명인이 '밤일'을 하면 자신을 감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본명을 쓰면서 인터넷에 자기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전 프로게이머'라는 경력을 홍보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선수 시절 팬 카페에는 그가 일하는 가게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다. 스타크래프트 팬들은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다. 팬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줄줄이 팬 카페를 탈퇴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그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궁금했다. 그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라고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겠어요?"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는 한때 잘나갔던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신기루 같았다.


하지만 성 씨는 e스포츠의 미래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게이머는 20대 중반이면 전성기가 끝나요. 은퇴 후엔 배운 기술을 써먹을 데도 없죠. 요리사는 10년 하면 장인 대우를 받지만 프로게이머는 '퇴물' 신세예요."


성 씨는 유흥주점을 '인생교과서'로 표현했다. 한 푼을 벌기 위해 '진상 손님'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는 일이 이젠 익숙하다고 했다. 게이머 시절에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았던 그다. 게이머였을 때처럼 그에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일터가 게임단에서 유흥주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이 기사는 어떤 팩트 보다는 기자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사도 분명히 필요하다. 단순히 프로게이머가 타락했다. 가슴아프다. 이런 문제가 아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 세상을 알아야 할 나이다. 이때 단 한가지 기술에 인생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 프로게이머다. 이들이 경쟁에 도태되거나 경제상황에 밀려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장 중요하다.


프로게이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실 이런 문제는 굳이 프로게이머 세계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바둑, 축구, 야구 등에만 몰두하다가 세상에 나와보면 모든 게 미숙하다. 지금도 곧잘 사기로 돈을 날리고 다시 밑바닥부터 살아가는 연예계 스타, 프로스포츠 선수 이야기는 곧잘 접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면 경제적 성공과 화려한 삶이 보장된 곳에서 예민한 청춘 시기를 다 보낸 사람들이 준비없이 다른 세계에 내던져지면 그렇게 된다.


프로게이머는 한국의 발달된 IT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프로스포츠 업계이자 또 하나의 연예계다. 나도 한창때 케이블 티비에서 성학승 선수의 경기를 재미있게 지켜본 바 있다. 그는 게임 속에서는 수많은 저그 군단을 마우스 한번 클릭으로 지휘하던 지휘관이었다. 그가 이기면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현실에 나오면 그가 명령한다고 해서 누구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가 인생이란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는 아무도 열광하지 않는다. 그저 그는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야 할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것은 게임과 현실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게임은 분명한 프로게이머와 팬들의 꿈이다. 그러나 꿈에서 깨고 나서는 다시 또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이 있다는 점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잘 나가고 있을 때라도 말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승패는 단시 게임의 승패일 뿐 인생의 승패는 아니란 점을 구단과 감독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가 일깨워주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성학승의 선택이다.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강남에 술집을 내는 사업으로 전부 날렸다고 한다. 좀더 건실한 어떤 사업이 아니라 왜 그런 사업을 했을까. 화려한 프로게이머의 한쪽 면을 다른 인생에서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도 다시 유흥주점에 취직해 있는 모습은 그가 과연 지금도 제대로 인생을 깨우쳤다고 할 수 있는지 아쉬움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