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겪게 되는 일 가운데 가장 짜증나는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른바 '돌리기' 라고 말하는 상황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서류 하나를 발급받기 위해서 동사무소를 찾았더니 그 서류는 구청 행정과에 가야 된다고 말한다. 구청 행정과에서는 시청 민원실에 가봐야 한다고 대답한다. 시청 민원실에서는 다시 동사무소에 가서 해결할 일을 왜 여기에 왔냐고 대꾸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분노와 허탈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최근 벌어진 갤럭시S3의 과다한 보조금 지급 문제가 여전히 여파를 남기고 있다. 한때 17만원까지 내려갔던 이 스마트폰의 가격대란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체 적절한 단말기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여론의 화살이 통신사의 과도한 보조금 지급과 그에 따른 시장 교란의 위험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자 통신사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하나 내놓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출처)

이석채 KT 회장이 과다한 보조금 경쟁의 원인으로 제조사의 높은 단말 가격을 재차 지목했다. 단말 출고가격과 실제 구입 가격 간 차이가 커 이동통신 사업자가 보조금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3분기 이동통신사업자 간 단말 보조금 출혈 경쟁 이후 이동통신 요금 인하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의 이 같은 지적은 출고가격을 높게 책정한 단말 제조사의 책임을 정조준한 것이다. 


이 회장은 10월 15일 “이통사 마케팅 비용의 핵심은 단말 보조금인데 제조사의 출고가격과 실제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차이가 너무 커서 (보조금을)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제조사 출고 가격과 실제 구입 가격의 차이를 보조금으로 보충하는 것으로 이통 사업자가 보조금 등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KT는 보조금을 쓰지 않고 네트워크와 디자인 연구개발 등 혁신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싶지만 자금을 빼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통신 서비스 요금은 3년 전에 비해 내려갔지만 여전히 요금이 비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통신비가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말 출고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분명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 보았을 때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시중에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업체에서 다양한 화면크기의 단말기가 다양한 통신사에서 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제품의 가격은 대략 똑같다. 최고급 플래그쉽은 90-100만원, 중가 스마트폰은 80만원선이다. 저가제품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런 단말기 가격은 시장에서 정당하게 평가받는 가격이라기 보다는 단말기 회사가 멋대로 붙여 내놓은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저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단말기 가격이 형성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조금 때문이다. 어차피 단말기 회사에서 제품을 일차적으로 구입해주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라 이통사이다. 이통사가 그 제품을 사서 다시 소비자에게 회선가입을 조건으로 여러 가격정책으로 파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보조금이다.

그러다보니 시장가격의 왜곡이 발생한다. 투명하지 않고 시간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지도 않는 보조금을 감안하다보니 단말기 회사는 무리하게 높은 가격을 붙인다. 어차피 그 가격으로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 제품 팔듯 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이통사에 팔 때는 그 가격으로 파는 것이 아니다. 

이통사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 가격으로 살 것도 아니니까 신경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단말기 가격이 높으면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포함해서 더 싸게 판다는 생색까지 낼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비싸도 환영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저 가격으로 직접 살 생각은 없으니 가격에 대해 그다지 체감하지도 못한다. 또한 소비자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으니 올바른 수요공급 등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 이 작용하지도 못한다.  소비자는 깔끔한 거래가격이 아니라 이통사의 각종 할인제도와 보조금, 가입조건이 덕지덕지 붙은 아주 어려운 암호같은 엑셀 파일을 해독해야 가격을 약간 파악할 수 있다.

통신사 보조금 경쟁, 근본문제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위의 말은 그냥 '돌리기' 일 뿐이다. 이통사가 높은 단말기 가격 때문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말기 제조사는 보조금 때문에 높은 단말기 가격을 책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상적인 가격으로는 소비자가 사려고 하지 않으려니 어쩔 수 없다고 소비자 탓을 할 것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단말기 제조사와 이통사, 소비자가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패를 까보이고 합의해야만 해결된다. 근본문제는 단말기 회사와 이통사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데 있다.


단말기 제조사는 단말기 가격을 낮춰봐야 이통사가 그것을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고스란히 차익으로 챙겨버릴 것이란 불신이 있다. 이통사는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단말기 회사가 여전히 거품 가격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합의를 깬 다른 이통사가 가입자만 빼내갈 것이란 불신이 있다. 소비자는 이 둘이 소비자를 배제하고 둘이 합의하여 가격만 더 올릴 것이란 불신이 있다.

독과점을 위한 합의는 나쁜 일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소비자를 위한 합의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공격받지도 않는다.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 소비자가 함께 합의해서 시장구조를 정상화하고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려면? 근본문제인 '불신'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