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선불교 사상에 의하면 가장 쉽고 간단한 곳에 가장 오묘한 이치가 숨어있다고 한다. 사실 과학이든 문화든 그 깊은 곳을 극한까지 짚어보면 결국 가장 단순한 하나의 원리로 수렴한다고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얼마전 다음(Daum)에서 초청메일을 하나 받았다. 새로운 영상기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발표하기 위해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기능을 하는 지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보도되기 전에 밝히기 곤란하다는 메시지로 알았다.


오히려 궁금증이 증폭되어 가보기로 했다. 다음과 영상기기라니, 얼핏 생각해선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대형 스마트티비 같은 걸 만들리는 없고 게임기일 리도 없을 텐데... 아이팟 터치 같은 소형 PMP라도 만들었다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트위터를 통해 다음이 새로 셋톱박스를 만들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보게 될 기기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티비나 모니터에 장착하는 콘솔 하드웨어 형식의 기기였다. 쉽게 말하면 애플티비 2.0 과 비슷한 기기다.



내놓아봐야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과연 팔릴 거라 생각하고 만든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 애플이 개척하자 거의 모든 업체가 뛰어드는 태블릿 시장처럼 스마트티비 시장도 요란한 발표는 많다. 하지만 막상 소비자의 반응이나 시장의 판매고는 냉담했기 때문이다. 하긴 잡스가 직접 관여한 애플티비조차도 발표회의 반응과는 달리 시장판매고나 출시국가 숫자는 초라한 편이다.



하지만 막상 4월 25일 서울 한남동 다음지사에 가서 본 발표회에 가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이날은 블로거를 위한 쇼케이스 행사날이었다. 기자들에게 팩트위주로 설명하던 행사가 이미 있었는데 이날은 주로 다음의 전략과 목표를 말했다.

 



다음이 이 제품- 다음티비를 내놓으며 세운 목표는 무엇일까? 시작하면서 강조된 것이 티비는 티비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티비를 어줍잖게 컴퓨터로 만들려고 하거나 태블릿으로 만들려고 하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기능을 나열해봐야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만 가진 기기로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같은 스마트티비라고 만들어 내놓긴 해도 회사마다 그것을 이끌려는 목표와 전략이 다르다. 애플은 지능형 영상기기로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복합게임기로서, 구글은 네트워크 가전기기로서 방향을 잡고 있다. 국내 굴지의 인터넷 포털이자 모바일 업체인 다음의 전략은 무엇일까?


다음측은 크게 서비스마인드의 확립을 표방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앞세웠다.



1. 시간을 아껴주는 TV -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채널과 VOD, 검색이다. 복잡한 사용법과 쓰지도 않는 서비스를 나열하지 않는다. 엄선된 서비스만 제시해서 쉽게 쓰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다.


2. 월정액이 없는 무료 TV - 필요한 컨텐츠와 서비스는 있지만 유료결제가 필요하지 않는 부담없는 상태로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3. 어린이들에게 좋은 TV - 건전하고 유익한 컨텐츠를 모아놓아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키즈채널을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청습관을 바꾸는 깨끗한 TV로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내 생각에 현단계에서 다음티비의 핵심목표는 이 세가지에 전부 들어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소트프웨어로 뒷받침 하기 위해서는 종전에 다음이 가지고 있던 역량을 동원했다. 검색사이트를 가진 업체로서의 검색엔진, 영상 컨텐츠를 포괄한 포털로서의 인터넷 트래픽처리 능력,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 다음팟의 이식 등등 다양한 분야의 역량이 결집되었다.




다음이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하드웨어는 가온미디어와 손을 잡고 해결해갔다. 이곳저곳에서 무려 9년동안 티비관련 비즈니스를 진행하던 분이 하드웨어를 맡았다.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는 티가 역력한 이 분이 내놓은 하드웨어는 전성기 NEXT 큐브의 분위기가 솔솔 풍기는 정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 모양이었다. 가장 심플한 모양과 가장 묵직한 블랙 색깔의 셋톱 박스는 딱 10센치미터 큐브였다.



크기는 매우 작은 편이지만 기능은 확실했다. 얼핏 실내장식품이나 장난감처럼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실시간 HD 지상파 수신이 가능한 셋톱박스와 인터넷을 통한 케이블 방송, 다음티비 수신이 가능한 기기가 모두 들어있다. 영상은 HDMI로 출력하며 USB키보드 같은 것도 장착해서 쓸 수 있는 확장성이 있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이다. 일단 마치 아마존의 킨들파이어처럼 진저브레드를 기반으로 다음이 커스터마이즈해서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빠르고 안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어느정도 검증된 만큼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재미있는 건 리모트 콘트롤러이다. 모든 기능을 리모콘을 통해 구현하는 다음티비는 리모콘에 많은 기술을 도입했다. 일종의 광 트랙패드 기능과 터치스크롤 기능, 가속도 센서의 장착이 돋보인다. 특히 뒷면에 별도록 쿼티 키패드를 넣은 건 신선한 시도이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생각한 이런 시도는 애플이 아예 키보드를 없애고 음성인식 시리를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능을 없애서 편의성을 추구하는 미래적 방법도 있지만, 기능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편의성을 추구하는 현실적 방법도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다음티비의 작동방식이다. 기본적으로 다음티비는 항상 동작하는 방송수신튜너 위에서 별도로 인터넷에 연결된 다음의 플랫폼이 얹혀서 돌아간다. 오버레이 방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기다리는 동안 멈춰있는 시간이 작고 시스템 오류 가능성도 적다. 매우 좋은 방식인데 이것 역시 많은 이제까지의 시행착고를 거치며 고안해낸 시스템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연장면에서 본 화면은 부드럽고도 편리하게 보였다. 지상파 방송 드라마를 보다가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프리미어 리그 경기결과와 화면이 부드럽게 현재 화면 위에 떠오른다. 드라마도 멈추는 게 아니라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보여진다. 다음티비의 운영체제를 써서 검색과 영상을 즐기다가도 홈버튼 하나만 누르면 아주 깔끔하고 빠르게 지상파로 복귀한다. 


이런 것은 안테나를 통한 방송수신과 인터넷을 통한 방송 수신이 병렬로 이뤄지기에 가능한 기능이다. 이것을 위해 부품값과 제작단가의 상승을 각오하고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들린다. 빠르고 쾌적하게 쓰기 위해서는 랜선을 연결하는 게 좋지만 와이파이칩도 내장되어 무선으로도 작동한다는 사실도 배려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이치인데 '사용자를 배려한다' 라는 가장 좋은 생각이다. 



다음TV, 효과적 성공전략은 무엇일까?


이번 다음티비는 무려 9년간의 고심과 시행착오의 결과로 만든 결과물이다. 직접 본 느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고심과 소비자 배려가 들어갔다. 방송 수신료로 거의 돈을 쓰지 않으려는 한국 소비자 성향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했다. 기기 판매 비용인 19만 9천원 빼고는 일체의 수신료나 유료화 모델을 내세우지 않은 점이 그렇다. 또한 일차 구입 타킷으로 좋은 방송을 아이들에게 보이려는 부모를 겨냥하고 있다. 키즈채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이 점을 잘 드러낸다.




다음티비는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 같다. 그 성공전략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셋톱박스란 하드웨어를 내놓으며 용감하게 뛰어든 다음측의 시도가 과연 좋은 성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낙관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 스마트티비 시장은 그냥 기존 티비에 만족하려는 소비자와 어떻게든 새로운 방식의 티비를 유행시켜 부가가치를 높이고 돈의 흐름을 만들려는 공급자의 대결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소비자를 잘 이끌어나간다는 애플조차 큰 성공을 보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일단 내 생각으로 다음티비의 선택은 옳다. 다음티비가 가진 강점과 역량을 집중시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시도라는 면에서 이번 다음TV는 멋진 시도이다. 실제로 시연장에서 본 기능과 성능도 이제껏 본 어떤 스마트티비보다 실용적이었다. 구입하면 바로 부담없이 편하게 쓸 수 있다는 면에서도 좋다.



남은 과제는 컨텐츠의 양과 질이다. 다음티비팟을 비롯해 좋은 컨텐츠 공급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컴퓨터를 통해서 가끔 보는 경우를 상정한 영상들이다. 고화질의 스마트티비를 상정했을 때 과연 충분한 화질과 품질의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 그런 노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다음티비의 노력에 달렸다.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다음TV의 성공전략은 '좋은 컨텐츠의 지속적 제공' 이 될 것이다. 다음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다음TV에 공급될 컨텐츠 공급자는 지속적으로 협상해서 늘려나갈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듯 싶다.




어쨌든 이번 시도는 나름 충격적이었고 흥미롭다. 쇼케이스를 마친 후 다음측으로부터  다음티비의 시제품을 받았다. 앞으로 이것을 직접 써보면서 좀더 많은 점을 체험해서 의견을  올려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