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 훌쩍 지나갔다. 착한 어른이 되고 싶은 나는 그날 별다른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소방서에 불이 났다고 장난전화를 걸거나, 간첩이 나타났다고 거짓신고를 하는 건 매우 나쁜 짓이지만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한번쯤 해보고 싶은 모험(?)이기도 했다. 톰소오여의 모험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만우절도 지난 지금 시점에, 어린이도 아닌 어른이면서, 별반 모험을 즐기려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이다. 나라의 법을 좌우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4년주기를 맞이한 지금은 정치인이 그나마 최고로 국민을 떠받들어 줄 때이다. 그야말로 지금부터 총선 당일까지는 온갖 달콤한 말과 읍소, 공약이 난무한다.


그런 가운데 별반 새로울 것도 없지만 나름 눈에 띄는 IT공약 하나가 나왔다. 민주통합당이 휴대전화 기본 요금 및 제반 요금 일부를 과감히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출처)


민주통합당이 휴대전화 기본요금 및 가입비와 문자메시지 요금 폐지를 골자로 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4월 3일 ‘한명숙의 공개제안 네 번째 : 반값 생활비 시리즈1’ 제안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우선 1만1천원 상당의 휴대전화 기본요금과 2만4천원∼3만6천원의 휴대전화 가입비를 단계적으로 인하해 결국에는 전면 폐지키로 했다. 


아울러 현재 SMS 20원, MMS 30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요금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이미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동통신사의 무선인터넷(Wi-Fi)를 공용화해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됐으며 통신사간 과다경쟁을 막기 위해 마케팅비용을 매출액 대비 20% 이하로 줄이도록 한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든다. 


민주당은 통신사들이 이를 위반할 경우 초과 비용의 10배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주파수 재할당시 불이익을 주도록 할 계획이다.




정책 자체는 매우 옳다. 소비자가 평소에 원해왔던 부분이 백퍼센트 반영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아마도 내 예상으로는 이 정책이 반향을 부른다면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러 당도 경쟁적으로 비슷한 정책공약을 내놓을 듯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치적 지지성향을 떠나서 이 정책 공약은 실현성이 거의 없다. 이런 정책을 겨우 선거 기간에나 내놓는 시점도 문제지만 막상 이 정책 안에는 실현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이행장치가 전혀 없다. 이 정책을 제안하고 만든 사람은 과연 한국의 이동통신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가 의심스럽다. 다른 것은 몰라도 휴대폰의 기본요금은 절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폐지 가능성이 희박하다.


휴대폰 기본요금 폐지, 실현 가능한가?


많은 경우 외국의 이동통신사는 기본요금이란 게 없다. 문자요금도 무료이며 쓴 만큼만 요금을 낸다. 그러기에 한국도 그것이 가능할 거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이동통신 단말기 소비성향과 구조를 잘 보자.




한국에서 이동통신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통신에 대한 욕구와 비용지출이 큰 편인데다가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상당한 금액도 지불할 의사가 있다. 한국사람에게 있어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비싼 통신비 압박보다는 통신을 못해서 고립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만다는 고립감이다.


이런 성향에 편승한 이통사는 최신 휴대폰과 최신 서비스를 묶어서 현란한 광고로 지출을 확대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비싼 값에 더 많은 무료통화시간과 무료문자를 묶어서 판매해왔지만 막상 그 한정된 통화시간이나 문자를 이월시켜 쓸 수 있게 하거나 절약하면 돈으로 환급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많이 쓰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더 많은 서비스를 얻을 수 있지만 아껴봐야 몇 푼 차이가 나지도 않게 요금제를 짜서 제시했다. 덕분에 아끼는 사람만 바보가 되고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었다.




과소비를 조장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수익모델로서 떠받드는 것이 바로 비싼 기본료와 상대적으로 낮은 통화료, 정액제로 묶어야만 싸지는 요금제다. 데이터 요금을 비롯해서 많은 이통사의 요금구조는 대부분 전부 이렇다. 이동통신에 3개 회사나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어느 곳도 차이가 없다. 꼭 필요할 때만 통화하고 단말기를 하나로 5년이상을 쓰고, 문자를 주로 이용하는 등으로 아끼는 사람은 오히려 손해를 본다. 반대로 수시로 단말기를 최신 모델로 바꾸고 비싼 통화를 정액제로 펑펑 쓰고, 데이터 요금제까지 비싸게 쓰는 사람이 이익을 본다. 쓰든 안쓰든 내는 기본요금이 그 차이를 메워준다. 아끼는 사람이 손해를 보면서 듯 소비하는 사람의 단말기 비용까지 내주는 구조다.


그러니 이런 수익구조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이랴. 기본요금을 없애하고 하는 건 이런 모든 한국적 수익구조를 밑바닥부터 뒤집어 엎으라는 뜻이다. 단시간에 변하기도 힘들 뿐더러 변할 동기도 전혀 주지 못한다. 위에서 말한 과징금은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걸면서 버티면 그뿐이고, 주파수할당은 이통 3사가 뭉쳐서 보이콧하면 아무런 실효도 없다. 이 정도도 모를 정책 담당자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은 여럿이고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또한 임기는 길어야 4년이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5년이면 퇴임한다. 반대로 각 이통사의 CEO는 단 한명이며 회사는 CEO를 중심으로 잘 단결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CEO에게는 임기가 없다. 누가 더 끈질기게 자기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정치인에게 휴대전화 기본요금 따위는 선거철만 지나면 별 이해관계도 아닌 사항에 불과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누가 산술적으로 정확한 '반값 등록금'을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본 적이 있었는가?




결국 전혀 실현성도 없는 공약을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내놓는 행동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장 1표가 아쉽더라도 이건 말이 안된다. 정말로 할 생각이라면 차분하게 제대로 된 이행 단계를 수립하고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정치에 중립적이어야 할 IT 분야가 선거판에서 장난감이 된 듯 해서 기분이 나쁘다.


방향은 분명 옳다. 하지만 시행방안이 너무도 빈약한 이런 공약은 그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좀 더 한국 이동통신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을 가지고 정책을 세워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