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전문화되고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렇다. 생산성을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점점 자기 분야 외의 다른 곳에 집중하지도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포드가 자동차 공장에 분업 시스템을 도입한 것처럼, 변호사는 법률만 생각하고, 의사는 의술만 생각하고, 언론인은 기사거리만 생각하는 듯 하다.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통찰조차도 부족하다.


긍정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그래야만 관련 분야의 평론가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전부 철학자가 되어버린다면 철학자는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나는 뉴스를 보면서 해석하는 내 행동이 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깊고 많은 생각을 하길 바란다. 나같은 사람이 전혀 필요없도록 말이다.

애플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 일을 했다. 바로 협력업체를 공개한 것이다. (출처) 



애플이 처음으로 부품 납품업체를 포함한 협력업체 명단을 공개했다. 애플은 그동안 ‘신비주의’ 전략으로 협력업체 이름까지 비밀에 부쳐왔다.

1월 15일 외신 보도를 보면, 애플은 최근 인권단체 압박으로 협력업체들의 노동여건·인권보호 등 의무 준수 웹페이지(apple.com/supplierresponsibility)를 개설하면서 156개 협력업체의 명단을 공개했다. 애플은 이 회사들이 애플의 자재구매·조립·생산비의 97%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애플은 이들 협력업체들을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고, 협력업체들한테도 비밀 협약을 어길 경우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압박해 왔다.

애플이 태도를 바꿔 협력업체 명단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중국 팍스콘 노동자가 잇달아 투신자살을 하고 최근 대만 혼하이정밀 공장에서도 노동환경이 논란이 된 탓이다. 최근 팀 쿡 애플 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업장의 노동환경 개선은 오랫동안 애플의 최우선 목표였고, 사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또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감시하는 워싱턴의 ‘공정 노동위원회’(FLA)에 아이티(IT) 업체로는 처음으로 가입했다.

한편 애플이 공급사를 밝힌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제휴업체의 사업환경을 담은 보고서를 보면, 애플은 229차례 감사를 거쳐 일부 업체가 임신·질병 상황의 일부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또 90개 공장에서 주 60시간 노동시간을 초과한 사실도 적발했다고 공개했다.

공개란 것은 좋은 것이다.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해서 당당하며 언제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제까지 애플이 왜 이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는지가 이상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애플이 이런 과감한 공개조치를 취한 것일까?



애플이 부품 협력업체를 공개한 의미는?

표면상의 이유는 기사 안에 있는 내용이다.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언론이 애플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애플이 이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플은 이제 리스트를 공개한 것 외에 이들 업체에 노동조건의 감독도 하기로 했다. 이로서 소비자는 애플제품을 쓰면서 팍스콘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없이 가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좋은 결말이다.

그러나 그저 기사에 나와있는 의미로 끝이 아니다. 이것은 상당한 의미로 애플의 방향수정을 의미한다. 어째서 잡스가 살아있을 때의 애플이 끝내 하지 않았던 것을 팀 쿡의 애플이 했는가를 생각해보자.



1) 그동안 애플의 국제적인 위상이 달라지고, 제품의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제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동의어에 가깝게 자리잡기도 했다. 미국에서 MP3플레이어를 무조건 아이팟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2) 이것은 애플에 대한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압박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압박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 문제를 어느정도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카리스마가 없는 팀쿡은 이런 압박에 버틸 수 없다.

3) 자재관리와 재고관리가 전문인 팀 쿡은 경영과 관련없는 고집이 없다. 따라서 잡스때 허용되지 않던 것이 지금은 허용될 확률이 높다. 즉 특별히 원가상승이 높지 않은 여러가지 사회와의 타협은 대폭 이뤄질 것이다. 환경보호라든가 독재국가의 자원을 쓰지 않는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4 ) 팀쿡은 이제 무조건 잡스의 정책을 이어가는 '유훈통치'를 끝내고 독자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번 케이스가 그 신호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애플은 직접 기부행위를 포함한 미국사회와 전세계에 일정부분을 공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팀 쿡의 애플이 보여준 중대한 변화다. 잡스는 사회공헌에 거의 신경쓰지 않고 그저 혁신제품을 내놓으면 그게 바로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혁신성이 약한 팀 쿡은 사회공헌 그 자체를 신경써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지금의 애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료하다. 팀 쿡의 애플은 보다 보편적인 기준에서 애플과 전세계를 밀착시키려 애쓸 것이다.
이것은 잡스의 카리스마를 가지지 못한 팀쿡 애플의 단점이지만, 동시에 잡스의 고집을 가지지 않은 팀쿡 애플의 장점이다. 이 차이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지 좀더 주시해보자.

P.S : 요즘은 여러가지 외부활동이 몰리는 바람에 블로그 발행 주기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의욕에 비해서 제 체력은 한계가 뚜렷하더군요. 그래도 늘 좋은 글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