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듣다보면 독자들의 사연이나 투고를 방송해주는 코너가 있다. 일방적인 전달 매체인 라디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코너가 있는 건 그만큼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소셜 매체인 블로그는 더욱 소통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소통이란 건 내 생각에는 단순히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아주거나 답방을 가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그런 댓글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제는 좀 무거운 것으로 해보자. 어제 올린 ‘쿼드코어 아이패드3, 무엇을 다르게 만들까?’ 에서 독자 한 분이 매우 좋은 지적을 댓글로 해 주셨다.

내용 중에 애플이 하드웨어 회사라고 하신 부분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죠. 하지만 적어도 잡스 본인은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s Apple a hardware company? - 클릭하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애플에서 소프트웨어를 빼버리면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에 설명이 불가능해지죠. 대부분의 수익이 하드웨어 매출에서 나오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소프트웨어죠. 그래서 잡스도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밝힌거고요.


여기서 링크된 동영상은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같이 나오는 토크쇼다. 여기서 사회자가 묻는 질문에 잡스는 분명히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해 사회자는 다시 말하기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많은 하드웨어에서 구동되지만 애플의 운영체제는 언제나 애플만의 하드웨어에서 구동되지 않냐고 반문한다. 다시 잡스가 대답하지만 이 문제는 그다지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잡스의 애플이 하드웨어 회사인 이유는?

그냥 애플은 하드웨어 회사이자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라고 넘어가면 되긴 한다. 하지만 굳이 한쪽으로 가르자면 애플은 하드웨어 회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애플의 창업주이자 부흥의 원동력인 스티브 잡스의 말은 중요하다. 하지만 종종 잡스는 엄밀한 진실보다는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쪽으로 의견을 강하게 표출한다. 그러니까 잡스는 애플의 비즈니즈 모델이 하드웨어 회사임에도 소프트웨어 회사로 불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애플 수익은 소프트웨어에서도 나온다. 아이튠스와 앱스토어 등 적지 않다. 하드웨어 판매고만큼의 안되어도 만만치 않은 수익구조다. 하지만 적어도 잡스의 애플이 원하는 본질은 하드웨어회사다. 

잡스가 넥스트를 개발하고 그것이 끝내 실패했을 때를 보자. 1만달러에 달하는 하드웨어 가격이 문제이던 넥스트는 끝내 실패했다. 마그네슘 케이스와 광자기디스트 등으로 무장한 하드웨어는 그 안에 담긴 미래형 운영체제 넥스트스텝과 맞물려서 판매되었다. 전세계 개발자들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어했던 컴퓨터였다.하지만 결국 넥스트라는 하드웨어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하드웨어 생산을 포기하고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을 다른 하드웨어로  다양하게 포팅해서 팔았을 때, 진정으로 회사는 좋은 수익을 올렸다. 적자의 대부분은 차지하는 하드웨어가 정리되었고 소프트웨어는 유지 보수만 하면 천문학적 수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까지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때 거의 모든 사업 의욕을 잃었다. 바라는 게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이때 오히려 재기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했다. 반대로 잡스가 애플에 넥스트스텝을 가지고 복귀했을 때 잡스는 맥의 호환기종을 만들어 보급한다는 애플의 방침을 바꿨다. 오히려 애플의 수익만 갉아먹는다는 이유였다.


분명 그 이유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그렇지만 윈도우의 성공과 넥스트스텝의 예를 보았을 때 장기적으로 맥 호환기종 정책은 유지해볼 가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단칼에 잘라버린 건 왜일까? 당장 애플의 회생이 절실했던 이유도 있지만 잡스 스스로가 자기 사업모델을 하드웨어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잡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잡스의 애플을 하드웨어 회사라고 말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잡스를 칭할 때 굳이 쓰는 ‘현실왜곡장’ 이란 말이 있다. 잡스가 일단 말하면 그게 아무리 현실성 떨어지는 일이라도 맞는 것처럼 들린다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잡스가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현실왜곡장이라고 본다. 진실과는 관계없이 잡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많은 사람들은 애플의 소프트웨어에 열광한다. 잡스는 그것을 안다. 하지만 잡스가 원하는 건 소프트웨어로 사람들을 유혹해서는 스스로가 팔고 싶은 하드웨어를 파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잡스의 애플에게 있어서 ‘미끼상품’이다. 본질이 아니란 뜻이다.


다만 이것은 잡스의 애플에게만 해당되던 이야기다. 팀쿡의 애플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부품과 물류관리의 귀재로 불리는 팀쿡이 애플을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들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P.S : 댓글로 좋은 지적과 소재를 주신 grevess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애독과 지적 부탁드립니다.